가만히 있을 것
여왕과의 첫날밤이 지나고
내 머릿속에는 여왕과의 수많은 긍정적인 미래세계들이 생성되었다 사라졌다.
나는 최선의 행동을 알고 있었다.
이른 새벽
잠시 그녀의 곁을 떠나
고독의 시간을 가졌다.
그녀와의 최적의 미래를 설정한 나는
그녀에게 돌아가 그녀에 충성맹세를 하겠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퀸
모르는 게 없다.
그녀는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었다.
나는 어떤 시점부터
여성을 완전한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나를 증명하기 위해
나를 비우기 위해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생의 반인 40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여자는 이미 존재로써 존재를 증명한 존재다.
시시콜콜한 일상이야기와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손에 책을 한 권 들면서
자기 지인이 번역한 카뮈의 책이라며 설명했다.
그녀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나는 가장 최근에 읽다 포기한 책이
바로 카뮈의 이방인인데,
처음 부조리와 자살에 대한 생각에 꽤나 공감이 가 앞부분을 쉽게 읽어나갈 수 있었으나, 어떤 시점부터는 도저히 읽어 내려갈 수 없었다.
에피소드를 들은 여왕은 말했다.
우울증 환자의 일기일 뿐이야
역시 여왕의 혜안은 훌륭했다.
그녀의 가정에 찾아가 식사를 한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치밀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뱉지 않는다.
그녀가 초대할 때까지..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성을 상대할 때 겪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다.
대게 아름다운 여성 앞에 선 남자는 거의 이성이 날아간 상태로 시간을 보낸다.
미인의 시공간 안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며, 이 세상에는 천국과 천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알게 된다.
이성이 마비된 남성들은 돈과 명예,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여왕에게 구애한다.
여왕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왕국을 건설해 줄 왕자님
혹은 왕의 사주를 가진 남자를 느긋하게 기다릴 뿐이다.
어떤 시기가 오면, 그녀는 자신의 왕국의 스케치를 다 끝내고, 그것을 건설해 줄 왕자님을 자신의 시공간에 초대한다.
그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남성은
이미 왕국이 있거나
게이들 뿐이다.
우리는 부조리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것이 부조리하다.
삶은 불공평하고, 날이 가면 갈수록 힘들고 피곤하고 지친다. 예전에는 사람이 좋았는데, 이제는 점점 싫어진다. 예전에는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좋았는데, 이제는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
내가 꿈꾸던 삶과는 멀어진 지금의 삶
부조리
나를 평생 사랑해 줄 것만 같고
매일매일 사랑이 넘칠 것 같았던 신혼 초의 가정의 모습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여자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남자들의 삶을… 왜냐면
여자들도 치열하게 생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돌볼만한 여유는 없다.
그래서 남자들의 삶을 간략히
여자들 그리고 여왕이 되지 못한 공주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남자의 삶은 단순하다.
사랑과 욕망.
사랑과 전쟁.
사랑과 우정.
사랑과 성공.
아가페적 사랑이 여자의 패시브라면
로맨스적 사랑은 남자의 몫이다.
그래서 난 한때
나를 떠나가던 공주들을
사랑을 모르는 동물취급할 때도 있었다.
불혹이 돼서야
그들도 나를 왕자감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주들은 이 장군감과 같이 왕국을 건설할 상상을 했을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많이 청혼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왕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으나
경험이 부족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으나
어떻게 하는지
왜 하는지는 몰랐다.
일단 증명해야 하니 증명의 연속이었다.
남는 건 약간의 명예와 자존심. 그리고 빚
난 왜 공주들이
떠나갔는지
이해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2026년
난 또 다른 여왕을 모실 준비를 마쳤다.
그녀는
어떻게 이른 나이에 여왕이
될 수 있었을까?
나는 분자단위로 쪼개지는 시간 안에서도
겨우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저 가만히 있을 것
그저 대기하다
하사하신 은총과 사랑을
어떻게 세상에
나눌지 고민한다.
다른 남자들이 다들 여자를 정복하려
쇠를 들고, 화장을 하고, 술을 마시고, 옷을 사고,
말을 공부하고 할 시간에 나는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비디오를 생성하고,
삶의 진리를 탐구하고, 왕국을 건설할 준비를 한다.
보통 남자들에겐 찾아오지 않는 이 기회를
놓친다면 난 정말
미쳐버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