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미친 3인방

달리밴피카소

by Vittra

낙동강 하류에는

달리 밴 피카소가 있다.


그들은 낙동강 하류의

맑은 물을 먹고태어나


예술가의 운명을 타고난 자들


난 그들을

페인터


혹은


그림쟁이라고 부른다.


반 고흐부터 소개를

하겠다.


그는

창원에서 가장

유명해질

청년작가로


이미 낙동강하류는 다 먹었다.

진짜 다먹었다.


창원의 청년예술의 길은 사림153

밤나무로 통한다.


창원미술 페이커


사림 153


나는 사림 153이라는 비평모임의 1기 멤버였고, 우리는 우리의 활동을 아카이브하는데 그쳤지만, 그는 우리의 이름을 이어받아 단초전이라는 전시를 기획했고, 그 전시는 어떤 유한인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게 되었다.



그의

그림스타일은

마치


모네와 반고흐가

환생한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내동생과 동갑으로 4살차이가 났으며


죽이

아주 잘맞았다.


대학시절 무료해진 어느날

우리는 붓과 연필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그때만해도 시내에는

프리허그니 프리드로잉이니 하는

사랑을 나누는 행사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볼수 있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정을 나눌줄 알았고, 사랑을 나눌줄 알았다.

우린 행복한 시절이었고,


지금과는 달랐다.


우리는 길거리의 행인들을

무작위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이벤트를 몇달간 매주 지속하였다.


여러번 마주한 사람들과는 반가운 인사를 나누거나,

우리가 그림을 그려주면,

사람들은 먹을거리나 용돈 등을 우리에게 제공했다.


내가 상상한 예술가들의 도시란

그런식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큰돈이나 큰건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에겐 그저 사랑을 나누는 방법만

알면 되는 문제였다.


나는 약간의 희망을 맛본뒤

그들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기업이니 뭐니 하는 국가사업의 도움을 받아 여러해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무엇인가 만들어보려했으나


높은 관료의 벽, 역사가 없는 나라, 예술가가 없는 나라에서 겨우 젊은 청년 한명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바꿀수 없다는 사실만 배우게 되었다.


좆같은 국가사업의 실태를 제대로 경험했다.


제대로 돌아가는게 하나도 없었다.


세금이 진짜 존나 아까웠다


난 욕을 잘 안하는 편이지만,

정말 이때 고생을 많이했다.


이때 차라리 이 에너지로 다른 사업을 했다면,

난 이미 성공한 사업가 였을것이다.


그러나 난 사업가가 아닌 혁명가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나도 이때 당시 페인터라는

이름에 걸맞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모든 미디어를 다루는 예술가가 되었지만,

이때는 그림의 본질은 무엇인가 라는 화두에 몰입해 있었고, 그때 교류했던 페인터들이 지금의 달리, 밴, 피카소이다.


서울엔 없다. 오로지 낙동강 하류에만 존재하는 자들.


그들은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


자 그림에 미치면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 해드리도록 하겠다.



그림에 미친자들


보통 사람들은 그림그리는 것을 어려워한다.

자신이 상상하고, 개념화 하는 것을 글로 옮기거나, 그리거나, 멜로디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를 이해하는 과정임을 우리는 다 알고있다.


전쟁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비트겐슈타인은 진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진리 = 우주

우주 = 수

음악이 수와 가장 가까우며

음악 >미술>문학 등의 순서로 우주의 진리에 가깝다.


이것은 3차원에 존재하는 우리에게 한정된 진리다.


그래서 진리를 알고 싶어하는 자들은 언제나 예술을 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예술은 계속해서 진리의 단서를 제공해나가며, 진화한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림은 진리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그림의 시작은 관찰이며,

관찰은 이해의 시작이고, 수용의 시작이다.

수용이 시작되면 우리는 진리에 가까워진다.


그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물성이다.


3차원으로 인지하는 세상을 2차원으로 표현하면서 생기는 시간과 공간이 한 물성에 담긴다.

그림이 가치가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압축되어 평면으로 표현된다.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일찌감치 이를 이해하고 수용했다.


아마 그의 3학년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의 사고회로와 나의 사고회로는 거의 비슷한 흐름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포스터시리즈를 제작중이었고, 그도 이미지에 텍스트를 집어넣는 작업들을 진행했다.


둘다 욕심이 어마어마해서, 동급생들은 흉내도 못내는 사이즈를 척척 그려냈다.

그리고 내 뇌리에 박혀버린 그림하나가 있다.


그 그림의 제목은


‘우리는 섹스말고 무엇을 생각하는가?’ 라는 텍스트를 이미지화해서 캔버스에 옮겨놓은 작품이었다.


그는 그림으로 시작한 관찰이 인간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는 도구로써 완전히 활용되었음을 증명했다.

ㅡㅡㅡ



대학시절 교양수업때 겪은 일화다.


인터넷뉴스를 소개하는 자리였는데,

학생들이 한명씩 나와 기사를 읽으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공유하는 자리였다.


우리나라에는 이우환이라는 걸출한 미니멀리스트 페인터가 한명 존재한다.


그의 그림은 몇십억에 거래되며,

예술인으로써 한국인의 위상을 떨쳤다.


그는 대표적인 일본유학파 예술가로, 아주 정제되고 미니멀한 작품을 구사한다.


그의 작품은 여러사조와 스타일로 불리지만, 유밀무이한 푸른색 회화는 그냥 이우환그림이라는 수식어가 제일 잘맞다.


어떤 학생이 나와

나도 그릴수 있을 것 같다는 이 그림이

몇십억에 팔린다는 뉴스를 보고


기가차다는듯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을 지금 기억할까?

그는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일어나서 반박했다.


다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작품에는 예술가의 이야기가 담긴다고 설명했다.


난 사실 이때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때부터 모든 것은 정해져있는 것이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라는 것을


그러나 그것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실천하기까지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나는 그에게 예술작품이 왜 비싼지에 대해서 설득하지 못한 것이 너무 서러웠다.


난 예술병에걸린 예술학도였고,

정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급한 마음과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만


그 기회를 놓지고 말았다,


그러나 기회는 다시 왔고,

난 그 기회를 놓지지 않을 것이다.



낙동강 하류의 페인터들 중 가장 어리고 빛나는 존재

인간의 본질을 일찌감치 이해하고

무의 길로 들어선 자.


이름마저 자연인


그의 이름 밤나무


그는 반 고흐의 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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