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나는 어디서 살 것인가?>

by 지니

집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어떤 공간을 만들어서 쉬는 곳 정도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도 담기고, 가족도 담기고, 추억도 담기는 곳입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집도 또 하나의 식구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집은 마치 어떤 생명체처럼 사람과 함께 자라고, 이야기를 담고 시간을 담습니다.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임형남, 노은주 지음



아이들은 컸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는 먹어가고 몸은 예전 같지 않으니 나도 이젠 노후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특히 집은 중요한 문제라서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꼭 한번 깊게 생각해볼 문제이다.

내가 살고 싶은 곳이 지리적, 위치적인 문제뿐 아니라 금전과 직결되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드니 바로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앞으로 어디서 살고 싶어요?”

“시골 가서 살고 싶구나! 시골이 뭐 좋냐? 나는 시골에서는 안 살고 싶은데. 한 달에 한두 번 시골 가도 오히려 답답해. 교통도 힘들고 병원도 너무 멀고, 문화생활하기도 힘들잖아.”

“아니 교통은 자동차 있고, 병원은 매번 가는 것도 아니고, 문화생활은 거의 지금도 즐기지 않는 것 같은데 라고 말하려다 말을 삼켰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얘기를 한번 한적 있지만 남편과 나의 생각은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시골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내가 자란 전라북도 완주는 우리나라 최대의 평야인 호남평야를 안고 있다.

동진강 유역의 드넓은 평야를 보고 자란 데다, 집 앞마당에는 작은 텃밭을 일구어 철마다 밭에서 자라는 싱싱한 야채를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이렇게 자연은 나의 생활 속에서 늘 함께 있었다. 반면 도시에서 자란 남편은 귀농이나, 시골생활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을 뿐 아니라 아예 작물을 키우고 느끼는 정서에는 관심이 없다.

캠퍼스에서 어리고 순진한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해서 25년을 살아왔다. 남편과 백년해로를 약속하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같이 살기로 했으니 공통의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아이들은 결국 제 갈 길을 떠날 것이고, 남은 삶은 둘이서 같이 살아가야 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살고 싶은 나의 집은 가장 먼저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이 잘 드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넓은 전원주택처럼 창문을 열면 바로 잔디가 드넓게 깔린 마당이 있으면 바랄 게 없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지 못하다면 남향에 위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햇볕이 잘 드는 집이면 좋겠다. 아이가 셋이라는 이유로 아파트 1층에서 거의 10년을 살았다. 거실에서 줄넘기를 할 만큼 세 아이가 신나게 뛰고 소음문제로 이웃에게 고통을 주진 않았지만, 1층이라 햇볕이 잘 들지 않아서 환한 등으로 대체하며 지내왔다.

분양받아 이사와 10년 넘게 살고 있는 이 집도 2층이다. 물론 1층보다 빛이 들긴 하지만 완전한 남향은 아니어서 거실에 해가 머무는 시간이 짧다. 자연이 주는 바람과, 햇빛을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맞이하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두 번째 바람은 나의 꿈을 담을 수 있는 나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가 얘기한 나만의 구체적인 공간이 있는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만의 멀티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방이 있는 집을 원한다. 거기엔 빠르게 부팅되는 성능 좋은 컴퓨터와,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기록하고, 나의 생각을 글로 쓰며 갇혀있기도 할 나만의 공간, 언택트 시대에 맞추어 다양한 소통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조용한 나만의 방을 가진 그런 집을 원한다. 식탁 위에 캘리그래피를 위한 화선지를 접었다 펼쳤다를 안 하고 편히 쓸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어렸을 때 자란 시골집처럼 텃밭을 가진 집이다.

며칠 전 광명시에서 진행한 ‘에너지 카페에서 기후위기와 시민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몇몇 사람이 모여 영화를 관람하고 토의를 했다.

상영된 영화는 파머 컬처라는 영화였는데, 파머 컬처(permaculture)는 영구적(permanent)이라는 말과 농업(agriculture)의 합성어다. 이 개념은 사람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가치를 지니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다.

에너지 사용을 어떻게 하면 줄이고 효율화해서 낭비를 없애고 재생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을까? 그런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그중 특히 인상적인 것은 건물의 옥상에 거대한 숲을 이룰 만큼 150여 종 이상의 식물을 재배하는 것을 보며 감동을 받았다.

식물을 좋아하는 나는 우리 집 베란다에 30여 종의 다육이 식물과 화분을 키우고 있다.

처음엔 먹을 수 있는 다양한 먹거리들을 심어보았다. 하지만, 햇볕과 바람이 부족하니 시들시들 죽어버리거나 잘 자라지 못했다.

결국 파머 컬처는 아니더라도, 텃밭의 경험으로 약간의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과 키우는 재미를 맛본 나에게, 노년의 내가 살고 싶은 집이라는 개념은 농작물과 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식사를 하며 ‘내가 살고 싶은 집’에 대하여 남편과 직접 얘기를 했다. 이미 나의 취향과 의도를 알고 있다는 듯 귀 기울여 들어주던 남편의 한마디.

“당신! 걱정 마! 첫 번째 햇볕 잘 들고, 바람 잘 들어오는 곳 내가 알아 놨어.”

역세권의 아파트인데 남향에 46층 고층이야. 그리고 당신만의 공간 충분해. 남아! 남아! 첫째 취직해서 다른 곳에 가고, 둘째, 셋째 군대 가니 방이 남아. 하나는 캘리 방, 하나는 고독 방 맘대로 해도 돼. ㅎㅎ 그리고 광명시에서 운영하는 텃밭 가꾸기 내가 일찌감치 신청해 놓을게. 내년에도 부지런히 농사지어봐! 자! 모두 해결됐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을 다 터놓아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다.

“아. 그러네!” 심사숙고해서 살고 싶은 집을 생각했는데 너무 쉽게 대답하는 남편의 말에 긍정 아닌 긍정을 하게 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뿐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도 다 해결됐어. 교통편도 그곳은 강남 순환 고속도로 생겨 강남도 20분 만에 가고, 병원과 대형 마트도 바로 걸어갈 수 있고, 문화생활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센터와 당신 좋아하는 도서관도 단지 내에 들어온다 하고,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시골집은 내가 고치고 수리해야 하는데, 안 해도 되고, 아파트라 안전하고 편하고..,” 신이 나서 떠드는 수다맨처럼 남편은 신이 나서 침 튀기며 얘길 한다.

“당신 참 똑똑하다. 둘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이긴 하네. 그런데 굳이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조금 외각 쪽으로 빠져서, 대지가 넓은 집을 사면, 풀벌레 소리 나는 한적한 데서 마당에 텃밭을 일구면 더 좋을 듯한데....” 듣고 있던 남편은 피곤하다는 듯 소파 위에 드러눕는다. 나도 수다맨의 아내처럼 계속 나의 생각을 떠들어 댄다.

“귀여운 둥이(지금 우리 집 강아지 이름) 새끼를 풀어놓기도 하면 더 좋을 것 같지 않아?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고, 당신과 내가 발로 푹푹 밟아 빤 이불을, 장대로 받친 긴 빨랫줄 위에 널어놓기도 하고, 텃밭에서 키운 감자나 고구마를 캐서 당신과 아이들이랑 캠핑 화로에 구워 나눠먹기도 하면서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그러면 안되려나?” 나 또한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수다스럽게 재잘거렸다.

남편의 얼굴을 봤다. 소파 위 남편 얼굴을 놀래서 빤히 쳐다보자.

옆에 있던 아들이 한마디 한다. “엄마 아빠 주무시는데요! 침까지 흘리시는데요! ㅎㅎ”

“아니! 저 인간은 드러누우면 금세 잠을 자네!

”오늘도 남편의 거부권 KO 승리이다.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서로의 생각을 알고 있긴 하지만, 서로의 말이 언제든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린 서로 알기에 계속해서 의견을 맞춰가야 한다.

‘나는 과연 어디서 노후를 살게 될까?’ 나 자신조차도 궁금하다.

<자연과 어우러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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