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거 아니? 감수성이 유대감이 되는 거!

by 지니

#1

감수성이라는 것이 다른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이라면 나의 감수성은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70년대를 살았던 어린 시절은 시골에서 볼만한 책이 없었다. 다행스럽게 아버지가 새마을지도자인 덕에 무료 ‘어린이 새농민’이라는 잡지를 매달 볼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린이 새 농민 잡지 안의 만화들을 좋아했다. 특히 김우영의 오성과 한음이라던가, 신문수의 촐랑이 같은 만화를 기다리다 읽었고 이때부터 나는 읽는 즐거움을 맛보았던 것 같다.

중학교에 가서는 하이틴 로맨스나 순정만화 ‘유리의 성’이나 ‘말괄량이 캔디’등을 미친 듯이 읽었다. 읽는 게 너무 즐거워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공부에는 관심 없고 학교 수업시간에 교과서 사이에 소설책을 끼고 몰래보다 선생님께 들켜 머리도 맞고 자주 책도 뺏겼었다. 읽는다는 것이 현재의 내가 아닌 다른 차원의 내가 존재하는듯한 느낌으로 매일 살았던 때였다. 그때 학교 친구 절친 네 명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매일 학교 앞 서점으로 달려갔다. 책을 사서 나눠 보고 또 다른 신간 책을 기다리며 초조해하기도 했었다. 신데렐라나 멋진 왕자님 같은 책의 주인공에 대해 얘기할 때는 신나 떠들고 친구 얘길 들어주다 손뼉 치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 2

책을 읽는 것도 좋아했지만 여전히 감수성 예민했던 20대. 대학에 와서는 친구와 함께 자주 찾은 곳이 ‘동시 상영 영화관’이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에는 학교 근처에 동시 상영 영화관들이 있었다. 영화 한 편이 극장에 걸릴 때 가장 먼저 개봉관이 시내 중심 그러니까 종로 근처 단성사, 피카디리, 명보극장 등에서 개봉을 한다. 그다음 개봉 후 일정 시점이 지나고 나면 영화는 시 외곽의 재 개봉관으로 넘어가고, 또 몇 주나 몇 개월이 넘어가면 동시상영관으로 오게 된다. 한편 값으로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데다, 무료한 주말의 긴 시간을 영화 좋아하는 우리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시간들이었다. 아침 먹은 후 둘은 영화관으로 들어가 가장 보기 편한 자리에 착석해서 두 편의 영화를 본 후, 늦은 점심을 먹고 또 다른 동시 상영관을 찾아 다른 영화를 보는 것이다. 결국 하루 4편의 영화를 본 후 우리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집에 가서 남은 찬밥으로 김치볶음밥을 해 먹거나 라면을 끓여먹으며 영화 본 느낌을 낄낄대며 떠들어 댔다.


#3

그러다 스물여덟에 결혼을 했다. 나와 남편과는 감수성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 묻는다면 글쎄다. 성격도 다르고 책과 영화를 보는 취향도 너무 다르다. 그러면 누군가 얘기할지도 모른다.

“어머! 비슷하게 생각하고 대화도 잘되고 느끼는 게 같아서 결혼하신 거 아녜요?”

“아니 남편과 무슨 대화를 해요? 대화는 친구들과 하는 거지요! 느끼는 게 같다니요! 그걸 기대한다면 너무 꿈이 크신 거 아녜요?”

“그럼 왜 결혼하셨어요?”

“글쎄요. 한마디로 딱 얘기할 수는 없는데... 그때의 상황과 감정과 환경. 그건 감수성이라는 표현보다는 가치관이라고 해야 할까, 정직하고 성실하고 안전하고 소박하고 뭐 이런 표현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남편은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실상 우리에겐 공통점이 없습니다. 아이들 문제와 경제적 문제 빼고는요. 개인의 감수성이라는 것.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인정해주고 간섭 안 해요!”

“인정이라고요? 그건 무심함의 다른 표현 아닌가요?”

“글쎄요!”


#4

지금은 개인의 감수성보다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유대감이라는 표현이 좀 맞을 것 같다. 부부와 자녀를 포함한 가족의 유대감. 가족의 유대감을 넘어 친척들, 친구들. 친구를 넘어 각각 소속된 집단의 유대감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특별히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소개하면 바로 '황씨가족'과의 관계이다. 유쾌한 형부의 이름은 황**이고 따뜻한 언니의 이름은 앞으로 해도 이남이 뒤로해도 이남이


그래서 ‘우리가 남이가?’ 가족이다.서로 피를 나눈 형제도 친척도 아니지만 4인, 5인 구성의 가족들은 1층과 19층을 사이에 두고 17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웃사촌 관계로 살아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 부모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서로 두 번의 이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집은 해마다 여행을 같이 가고 명절과 행사 때마다 동고동락을 같이 하며 긴 시간을 공유했다. 두 집이 한집처럼 다섯 명의 아이가 같이 목욕을 하고 책을 읽고 고민하고 꿈을 꾸고,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그런 때가 엊그제 같은데 정말 세월이 유수처럼 흘렀다. 지금은 모두 성장하여 멋진 군인이 되고, 대학을 졸업한 사회인이 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대학 신입생이 된 막내 녀석은, 19층 형 집을 형도없는데 아저씨 보러 간다고 자기 집 드나들 듯 수시로 놀러 갔다 형 침대에 오줌똥을 쌌던 흑 역사의 기억을 얘기하며 매번 우리를 웃음에 빠뜨린다. 살면서 힘내라고, 하다 안 되는 것을 붙잡고 끙끙 댈 때는 욕심내지 말고 손을 펴서 놓으라고, 별 거 없다 가르쳐 주는 지혜를 서로 토닥이며 우리는 응원했다. 그리고 그런 날은 맛있는 삼겹살을 구워 다 같이 먹고 잊어버렸다.

사랑스러운 다섯 아이들. 성인이 되고 삼사십, 오십 대가 되어온 우리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모습을 천천히 서로 지켜보았다. 아홉 명의 유대감을 그 무엇으로 바꿀 수 있으랴. 생각하니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없어서 가슴이 뭉클해진다.

같은 책을 읽고 대화하며 영화를 같이 보며 공감할 수는 없어도 나의 남편은 한결 같이 나의 생일이 되면 매번 꽃다발과 카드를 챙겨준다. 내용의 전반부는 반성문 같은 어조와 환골탈태할 자신의 다짐이지만 그러면서 하는 말은 “내 곁에 그리고 아이들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이다. 아마도 이것은 나만이 가졌던 감수성보다 더 깊고 진한 유대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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