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원래 어려워
글쓰기를 가르치려고 애쓰는 인간과 그를 지켜보는 고양이의 기록 1
고양이는 기억력이 좋다. 특히 나쁜 기억은 오래 남는다. 밥을 늦게 준 날, 꼬리를 밟은 발, 약속을 잊은 손. 나는 그런 일들을 쉽게 잊지 않는다.
인간도 마찬가지인 거 같다. 집사도 그렇다. 그는 오랫동안 잊지 못한 기억들로 글을 쓰는 인간이다.
나는 그가 노트북 앞에 앉는 순간을 매일 목격한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북북 긁으며 찡그린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 올리며 모니터 앞에서 열중한다.
그때마다 나는 묻는다.
“글쓰기가 그렇게 힘드냐옹?”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응, 글쓰기는 원래 어려워.”
나는 꼬리를 천천히 흔들며 그를 본다. 인간은 참 이상하다. 괴로워하면서도 계속 쓴다. 그건 생존이자 습관이다. 인간은 잠들지 못할 때 글을 쓰고, 견디지 못할 때도 글을 쓴다. 나는 그런 모습을 오래 보아왔다.
집사는 마흔둘, 글쓰기를 가르치는 인간이다. 한때 소설가였고, 지금은 무명 강사이자 고스트 라이터다. 그는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다. 강의는 그의 일이고, 글쓰기는 여전히 숙제다.
그 외에는 매달 한 번, 한 선배의 연줄로 얻은 사보 칼럼을 쓴다. 주제는 ‘글쓰기에 대하여’. 대부분의 달은 마감 이틀 전까지 쓰지 않는다. 마감 날이면 커피 냄새와 한숨이 방 안을 채운다.
“묘선생, 오늘은 뭐부터 써야 할까?”
나는 대답 대신 눈을 반쯤 감는다. 그는 결국 쓴다. 쓰면서 중얼거린다.
“아아, 내 작품을 써야 하는데.”
그 말은 한탄이라기보다 주문에 가깝다. 자신이 아직 작가라는 걸 확인하려는 주문.
우리 집 아래층에는 작은 글쓰기 교실이 있다. 낮에는 어른들이 찾아온다. 퇴직자, 육아 중인 사람, 진로를 바꾸려는 사람. 모두 다른 이유로 글을 배우지만, 결국엔 한 가지를 묻는다.
“선생님, 글쓰기가 너무 힘들어요.”
집사는 늘 비슷하게 대답한다.
“글쓰기는 원래 어렵습니다.”
그러면 수강생은 웃는다. 자기만 힘든 게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안도의 웃음이다.
나도 속으로 웃는다. 어려운 걸 알면서도 배우려는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한 웃음이다. 그건 조금 멋진 일이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를 나는 안다. 인간은 글로 자신의 마음을 번역하려 들기 때문이다. 마음을 세상의 언어로 옮기는 일. 그 사이엔 항상 틈이 생긴다. 그 틈이 고통이고, 동시에 가능성이다. 인간은 그 틈을 견디며 문장을 만든다.
고양이라면? 그냥 잔다.
인간은 잠 대신 문장을 택한다. 안쓰러운 일이다.
집사는 학생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한다.
“글쓰기는 공감의 기술이에요. 쓰기 전에 읽기, 읽기 전에 타인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말이 교실 안을 돌면 나는 귀를 움직인다. 인간의 언어는 공기보다 무겁게 떨어지지만, 가끔 향기를 남긴다.
무엇보다 집사는 활자중독자다. 무엇이든 읽고, 무엇이든 해독하려 든다. 읽을 것이 없으면 간판이라도 읽는다. 활자의 냄새를 맡지 않으면 하루가 끝나지 않는다. 나는 그가 글을 읽을 때의 표정을 안다. 약간의 그리움, 약간의 집중. 그는 세상을 읽는 척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해독하고 있는 것이다.
밤이 되면 교실의 불이 꺼지고, 우리는 함께 위층으로 올라간다. 그는 노트북을 다시 켜고, 낮의 말을 정리한다. 글을 가르친다는 건 결국 자신을 복습하는 일이다.
오늘도 그는 중얼거린다. “그래도, 오늘은 썼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언제나 같은 말을 덧붙인다. “아아, 내 작품을 써야 하는데.” 나는 그 옆에서 몸을 둥글게 말며 생각한다. 인간은 늘 무언가를 미루면서도, 결국엔 쓴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 방식이다.
오늘의 기록 끝.
작성자: 묘선생 ― 글쓰기를 가르치려 애쓰는 인간과 함께 사는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