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씰룩씰룩, 인간은 망설망설
"오늘은 글쓰기의 작은 준비운동에 관하여 얘기해볼까 합니다."
대체 글쓰기는 언제 가르칠 건가. 저번엔 글쓰기는 원래 어렵다는 다 아는 얘기를 하더니, 이제 준비운동을 말한다. 하긴 인간은 시작하기 전에 꼭 한 번 더 망설인다.
글도, 사랑도, 여행도, 심지어 낮잠도.
나는 집사의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것은 도망일까, 아니면 들어가기 위한 몸짓일까.
오늘도 집사는 글을 쓰기 전 작은 소란을 일으켰다. 책상을 치우고, 먼지를 털고, 갑자기 책꽂이를 정렬하고,
결국엔 물컵을 씻으러 갔다가 과자만 들고 돌아왔다.
나는 이 모든 일이 글을 피하는 척하면서 글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는 걸 안다.
인간은 움직임을 빌려 마음을 설득하는 동물이다.
집사는 이렇게 말을 잇는다.
“여러분, 글을 쓰기 전에 하는 의식 같은 게 있죠? 그거 정말 중요해요.”
그리고 이어 설명했다.
“마음을 바로 글로 데려가는 건 어렵거든요. 그러니까 몸을 먼저 데리고 오자는 거예요. 파블로프의 개처럼 ‘아, 이걸 하면 나는 곧 글을 쓰는구나’ 하는 신호를 자기 자신에게 주는 거죠.”
나는 맨 뒤 책상 위에서 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 생각보다 단순해서가 아니라, 몸이 마음보다 현명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고양이라면 시작하기 전에 하는 준비는 단순하다.
사냥감을 보면 궁둥이를 씰룩거려 균형을 잡고, 점프하기 전 등줄기를 둥글게 말았다가 펴서 척추의 스프링을 확인한다.
끝이다.
생각하다 늦으면 사냥감을 놓치니까. 우리 고양이는 시작의 타이밍을 몸으로 배운다.
인간은 다르다. 시작이 두렵기 때문이다.
시작에는 책임이 따르고, 책임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노력들은 힘들고 또 작은 상처들이 들러붙는다. 그러니 인간들은 시작 앞에서 오래 숨을 고르는 것도 이해 못 할 건 없다.
내가 인간이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 기억은 물감처럼 번져 희미하지만 시작 앞에서 괜히 괜찮은 척하던 마음은 느껴진다.
수강생들은 저마다의 리추얼을 고백했다.
“저는 노트북을 열기 전에 꼭 책상 모서리를 한번 닦아요.”
“저는 창문을 열어요. 한 번 열고 닫아야 글이 써져요.”
“저는 타이머를 켜놓고 10분 동안 그냥 앉아 있어요. 앉아 있기만 해요.”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고양이의 씰룩임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작은 준비운동들.
"연필 깎기의 정석이라는 책을 보면, 연필을 깎을 때도 준비운동을 합니다. 연필 깎기 전의 몸풀기 체조랄까요?"
정말 특이한 사람이 많아... 인간을 모조리 이해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해도,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을 때는 요?”
누군가 물었고, 집사는 웃으며 묘책처럼 말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전, 그럴 땐 오히려 글을 쓸 수 없는 곳으로 가요. 목욕탕이나 연극이나 콘서트홀 같이 글을 한 줄도 쓸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거죠. 노트북도 메모장도 쉽게 꺼낼 수 없는 곳.”
수강생들이 웃는다. 대체 뭔 소리야? 하는 느낌이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문장이 와글와글 몰려와요. 금지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욕망 있잖아요.”
나는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들어가지 말라면 더 들어가고 싶은 마음. 그건 인간의 마음이자 고양이의 마음이다.
"그러면 필사적으로 쓰고 싶은 걸 외우게 되죠. 그곳을 벗어나서도 마음에 각인된 문장이, 바로 제가 그날 쓸 글인 거죠."
확실히 고양이의 의식은 인간에 비해 단순하다. 햇빛이 바닥에 네모를 만들면 그 위에 몸을 눕히고,
앞발을 포개고, 호흡을 느리게 만들 뿐이다. 그러면 나는 자연스럽게 잠이라는 나만의 글쓰기로 들어간다.
인간의 의식도 그렇다. 작은 행동 하나가 문이 되고, 반복이 길을 만든다.
길이 만들어지면 마음보다 몸이 먼저 들어가는 것이다.
“여러분, 글쓰기의 시작은 첫 문장 이전의 마음가짐, 그리고 그것을 위한 첫 움직임입니다.”
나는 그 말에 조용히 꼬리를 흔들었다.
맞다.
시작은 언제나 마음이 아니라 몸에서 온다.
수업이 끝나면 모두들 자신의 작은 준비운동을 찾으려 애쓸 것이다. 또 그중 몇몇은 오늘도 망설일 것이다.
괜찮다. 망설임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시작의 그림자이니까.
나는 난로 옆에 둥글게 몸을 말았다.
인간에게 망설임은 고양이의 씰룩임과 같다.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균형을 잡는 몸짓.
오늘의 기록 끝.
준비운동이 끝났다면, 이제 아주 작은 한 문장을 쓰면 되겠지. 다음 문장은 자연히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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