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선생의 터치터치
인간이 글을 쓰는 걸 보면 늘 신기하다.
먹을 것도 있고, 따뜻한 자리도 있고, 잠도 잘 자면서 굳이 글 앞에 앉아 고생을 한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서 지켜보았다.
사실 궁금해서 지켜본다기보다 재밌어서 본다. 고뇌하는 표정이 아주 일품이다.
오늘 수업은 바로 그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여러분은 왜 씁니까?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있을거에요. 각각.”
집사는 칠판에 몇 단어를 적었다.
슬픔, 분노, 기록, 재미, 생존.
그리고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글쓰기는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예요. 마음이 흘러서 글이 되는 거지, 쓰기 위해서 억지로 짜내는 건 재미도 감동도 없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눈을 반쯤 감았다.
원래 늘 졸립기도 하고(우리 종족은 하루 18시간은 자야 한다) 또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
우리 고양이는 마음이 흘러도 일단은 잔다. 그러다 배가 고프거나 응가가 마려우면 몸을 움직인다.
아 물론 재밌는 사냥 놀이도 나를 움직이게 한다.
인간은 마음이 흐르면 글을 쓴다고 한다. 물론 인간나름이겠지만, 그 차이가 어쩌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로 입을 연 사람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잊고 싶어서 써요. 왠지 써버리면, 그 다음엔 더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될것 같아서요.”
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어떤 마음은 오래 들고 있을 수 없어요. 글로 쓰는 건 그 마음을 식혀서 안전해지게 만드는 거죠.”
두 번째 사람은 말했다.
“저는 반대로… 잊지 않기 위해 써요.”
집사는 웃지 않았다. 그는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기억은 계속 흐려져요. 그대로 두면 모양을 잃어요. 글은 그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해요."
집사는 말을 덧붙였다.
"맞아요. 기억을 붙잡으려는 사람들은 모두 기록자가 되죠.”
인간이 기록을 남기는 걸 보면 나는 가끔 외로움을 본다.
고양이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털만 날리고 사라지면 그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자기 존재가 흐릿해질까 봐 두려운 것 같다.
그래서 기록한다.
‘내가 그때 그곳에 있었다’고. '이런 마음이었다.'고.
세 번째 사람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냥 재미있어서 써요. 쓰면 기분이 좀 살아나는 것 같아서.”
집사는 환하게 웃었다.
“맞아요. 재미 때문에 쓰는 사람도 있어요. 누군가는 말을 잃은 자리에서 쓰지만
누군가는 말을 찾는 자리에서 써요. 둘 다 아주 좋은 이유입니다.”
나는 이 대답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고양이가 숨을 고르기 위해 낮잠을 자듯, 인간은 숨을 고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일 테니까.
재미란 단순히 웃기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그 감각이 사라지면 인간은 글에서 멀어진다.
집사는 칠판을 지우고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글쓰기는 얼려둔 마음을 녹이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나는 그 침묵을 좋아한다. 마음이 움직이기 직전의 묵직한 온도.
“어떤 마음이든 바로 들여다보면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요. 슬픔도, 분노도, 기쁨도. 그래서 바로 잡을 수가 없어요. 시간이 조금 지나 얼어붙으면 그때야 비로소 모양을 볼 수 있어요. 글쓰기는 그 얼음을 천천히 실온에 두는 일입니다.”
집사는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그 녹은 것들을 망연히 바라보고 정리하는게 글쓰기의 본질이죠. 어쩌면 잊고 싶었던 것들, 그러나 꼭 기억해야하는 일들이 거기 있습니다."
나는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고양이는 슬픔을 얼리지 않는다. 바로 울고, 바로 잔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의 마음은 너무 복잡하고, 너무 순해지기도 하고, 너무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얼려두었다가 다시 꺼내어 천천히 녹여야 한다.
그 과정이 바로 글쓰기다.
수업이 끝날 무렵,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를 가지고 가방을 챙겼다.
잊기 위해 쓰는 사람,
잊지 않기 위해 쓰는 사람,
살기 위해 쓰는 사람,
재미있어서 쓰는 사람.
나는 그들의 등을 보며 생각했다.
이 이상한 종족은 마음 하나를 처리하는 데 이렇게 다양한 방식이 필요하구나.
교실 불이 꺼지고 모두 돌아간 뒤 나는 집사의 의자 위로 올라갔다.
따뜻한 자리를 찾아 앉으며 오늘을 정리했다.
인간은 왜 쓰는가?
내 대답은 여전히 단순하다.
살아남기 위해.
고양이는 이따금 털을 갈고,
인간은 이따금 마음을 갈아낸다.
그 차이가 글을 만든다.
그때 전화가 울렸고, 이야기를 나누던 집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야옹~
나는 집사의 표정을 보고 달려가 종아리게 얼굴을 비볐다. 일그러진 얼굴에는 헤드번팅이 특효니까.
오늘의 기록 끝
#슬픔얼리기 #글쓰기 #기록 #직면 #왜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