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고양이

묘선생의 타치터치

by 묘선생


가끔은 나는 어쩌다가 이 고뇌의 글 쓰는 인간과 살게 됐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웃긴 건 집사가 원고를 펼치기만 해도
내 꼬리 끝에서 작은 전기가 지나가는데,
그건 좋아하는 사람을 봤을 때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대체 그 이유가 뭘까.
당연히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
낮잠과 낮잠 사이 어딘가에서 오래된 기억의 조각이 불쑥 떠올랐다.

—나, 전생에 작가였던 것 같다.

“다음 생에는 뭘로 태어나고 싶습니까?”

벌, 인간, 고양이.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고양이를 골랐다.
그때도 고양이를 좋아했나 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인간으로 사는 게 꽤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부분은 흐릿하지만, 마음 한쪽이 살짝 시려진다.

나는 부잣집에서 우아한 페르시안 고양이로 태어날 줄 알았다.
하얀 털에 금빛 눈동자, 부잣집 소파 위에서
과자 냄새 맡으며 졸고 있을 고양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겨울 골목에서 물웅덩이 냄새와 함께 시작됐다.
배고픔이 먼저였고 따뜻한 품은 없었다.

그러다 집사를 만났다.

그날 집사의 발걸음은
내가 본 어떤 인간보다 조심스러웠다.
눈으로 보기보다
체온으로 나를 알아보는 사람.
손끝이 살짝 떨렸는데,
그건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라
오래된 상처를 조심스레 만지는 떨림이었다.

나는 그 손을 따라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 손에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잉크인지, 종이인지,
아니면 전생의 내가 붙잡고 있었던 마음의 냄새인지.

집사는 나의 은인이 되었고,
나는 집사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책상 앞에서 고개를 싸매는 자세가
어딘가 익숙했다.
아아, 그건…
전생의 내가 하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전생의 기억은 점점 흐릿해지고,
이름도, 문장도 거의 잊혀 가지만
집사가 문장을 쓸 때마다
내 발바닥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하나다.

아마도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잊지 못해서일 것이다.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 건 분명 나였는데,
이제는 그 이유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하나는 확실하다.

내가 다시 글 옆에 놓이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집사는 나의 은인이다.

전생에서 문장에 골몰하던 작가였다면 지금은 작가 옆에서 문장 같은 고양이로 살아가고 있다.


냐오옹.


어쨌든 나는 인간을 벗어나 고양이가 되었다.


묘생은 무조건 성공이다.

나는 내가 고양이인 게 좋으니까 옹!!!




#글쓰기 #묘선생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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