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 3사 중 하나인 현대백화점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미술’이라고 답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2020년 11월 코로나로 한창 시끄러운 시기에 개장한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스페이스 원>부터이다.
현대백화점에서 운영하는 아울렛은 해당 지점이 위치한 지역명을 넣는 것이 원칙이었다. 가령 김포에 위치한 지점은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김포점’으로 짓는 식이다. 하지만 남양주에 위치한 해당 지점은 이를 깨고 지역명 대신 <스페이스 원>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사용하며 차별화의 시작을 알렸다.
건축계획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곳은 다른 지점들과 구조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 중정을 둘러싸는 ‘ㅁ’자 형태를 따라 3층 규모의 아웃도어(실외형) 매장들이 배치되어 있는 전형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다만 야외 전시를 위해 중정의 규모를 키우고, 바로 앞에 이곳을 상징하는 팝업 큐브가 세워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실 외부에 배치된 조형물은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 중 극히 일부로, 큐브를 통해 3층으로 올라가면 아예 작정하고 만든 무료 전시공간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작가 이름을 따서 지은 <하이메 아욘 가든>으로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의 작품들이 곳곳에 전시된 실내 정원이다. 그 옆에는 어린이를 위한 <MOKA Play>도 마련되어 있다.
하이메 아욘은 모국인 스페인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산업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이다. 그는 반드시 실용성을 띄어야만 하는 가구나 제품을 디자인하며 본인만의 고유한 언어로 표현하고 이러한 요소들을 조화롭게 녹여낸다. 또한 오브제의 범위에서 벗어나 공간까지도 디자인하며 작품 영역을 확장하였다. 단순히 눈으로만 감상하는 작품이 아닌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의 엉뚱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작품은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들은 마치 동화 속 세계에 온 듯 흥미로운 얼굴로 이곳저곳을 탐험하고, 어른들은 이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꼭 가족단위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인증샷을 소셜 미디어에 게시한다. 이렇듯 지속적인 비용 지출 없이도 바이럴 마케팅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누군가에게는 해당 전시 자체가 아울렛의 방문 동기가 되곤 한다.
사실 이렇게 많은 방문객 중 평소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 미술에 대한 지식이 전무할 것이다. 이로 인해 작품 감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관람비에 대한 부담으로 미술관 방문을 껴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쇼핑을 위해 방문한 곳에서 무료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옆에서 들리는 대화를 통해 세계적인 작가의 전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에 무지하고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발길을 향할 것이다.
사실 하이메 아욘의 작품은 스페이스 원을 비롯한 다른 지점에도 전시되었다. 더현대 서울과 현대백화점 판교점에는 <YP HAUS>를, 더현대 대구에는 <더 포럼>을 조성해 많은 호평을 받았다. 또한 현재 리뉴얼 중인 <커넥트 현대 부산>에서는 그의 작품이 전시된 <MOKA 어린이책 미술관> 이미지가 공개되며 그와의 협업을 알렸다. 서울과 판교의 YP HAUS는 VIP 라운지로 운영되어 접근이 제한적인 반면, 부산의 MOKA는 누구나 이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또 한 번 화제가 되어 수도권에 비해 부진하고 있는 부산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고 타 백화점의 매출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하지만 이곳을 끝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하이메 아욘과 현대백화점의 협업은 막을 내릴 수도 있다. 고객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가기 위해 다른 유명 작가를 섭외하거나 신진 작가들을 발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느 방향이든 앞으로도 미술을 향한 진정성 있는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판단되며 미술계에도 막대한 영향력에 끼칠 수 있을지 많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