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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테일 랩 Aug 06. 2024

몰링: 끝없는 유혹의 거리

몰(mall)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몰'이라는 독립된 단어보다는 쇼핑이라는 단어와 결합된 쇼핑'몰'에 더 익숙할 것이다. 몰은 산책로와 같은 ‘거리’를 뜻하기에 쇼핑과 몰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때 고객들이 쇼핑몰을 거닐며 탐험하는 행위를 몰링(malling)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왜 백화점에는 거리라는 뜻이 붙지 않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오래전 상점들은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형성되었고, 이것들이 모여 초기 시장과 같은 형태의 상업가로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이 발전하여 현재의 쇼핑몰이 등장하기까지 일부 집합상가를 제외하곤 구조적으로 큰 변화를 겪진 않았다. 차이라면 그곳이 인공적으로 조성된 실내형 가로로 대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교적 근래에 등장한 백화점은 길보다는 최대한 많은 매장 확보를 중점으로 계획된다는 차이점에서 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단순히 길을 따라 상점을 배치한다고 해서 쇼핑몰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후방이나 막다른 길에 위치하여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존재한다면 해당 위치의 매장은 사실상 생존이 불가하다. 이는 임대가 나가지 않는 등 쇼핑몰 전체 매출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그렇기에 유통사들은 이러한 인공가로를 조성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고민한다. 어떤 컨텐츠와 MD가 들어오는지도 함께 말이다.


쇼핑몰에 방문한 사람들이 오로지 쇼핑에만 전념하고 지갑을 열게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계획하여야 할까? 당연하게도 상점이 몰려있는 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스레 진열된 상품들을 끊임없이 구경하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불필요한 갈림길은 최소화하여 조금이라도 망설이거나 의도치 않은 길로 빠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특히 고객 눈앞에 막다른 길이 나타나는 것은 업계에서 금기시되고 있다. 그들에게 끝이 보이는 순간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구조는 바로 자동차 경주장에서 볼 수 있는 순환형 트랙이다. 이를 표방하여 동그란 형태의 순환동선을 조성하는 구조를 <레이스 트랙, Racetrack> 타입이라 칭하며 대부분의 쇼핑몰이 선호하는 형태이다. 처음 출발하는 위치나 방향과 무관하게 빠지는 부분 없이 모든 곳을 둘러보고 제자리로 돌아오기에 위에서 언급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된다.


그림 1. 레이스 트랙 타입 (스타필드 수원점)


하지만 대지의 형상에 따라 레이스 트랙을 채택하기 어려운 경우가 존재한다. 이 경우 불가피하게 양 끝단에 막다른 길이 생기는 직선형 동선을 조성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길을 약간 굽혀 끝이 보이지 않도록 하고, 끝부분을 둥근 형태로 조성해 자연스레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동선을 조성한다. 이는 양 끝단이 두꺼운 아령과 비슷하여 <덤벨, Dumbbell> 타입으로 불리며, 대표적으로 스타필드 고양점 등이 있다. 다만 레이스 트랙에 비해 단점이 많기에 제한적으로 사용되며, 둘을 적절히 혼합한 하이브리드 타입을 채택하기도 한다.


그림 2. 덤벨 타입 (스타필드 고양점)


한편 이러한 구조와는 별개로 동선이 너무 길어지거나 같은 모습이 반복된다면 사람들이 걷는데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평면적으로는 가장 끝부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SPA 혹은 스포츠 브랜드 매장을 크게 배치하고, 중간중간 팝업매장이나 이벤트 홀 등을 조성해 호기심을 유발한다.


또한 너무 높은 곳에 매장이 있을 경우 1~2층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능한 3층 이내로 층수를 최소화하고, 최상층에 영화관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시설이나 전문 식당가를 배치하곤 한다. 이러한 전략 MD를 <키 테넌트, Key tenant> 혹은 <앵커 테넌트, Anchor tenant>라 지칭한다. 이와 더불어 가능하다면 몰 중간중간에 거대한 구멍인 <보이드>를 조성해 위아래 매장과 사람들이 잘 보이도록 한다. 스타필드 수원점의 경우 이례적으로 7층 규모로 개발되었는데, 4층에 별마당을 배치하여 대규모 집객을 유도하였다. 이로써 4~7층을 1~4층과 같이 작동하도록 하였고 예견된 문제점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이렇듯 치밀하게 짜인 구조 덕분에 사람들은 아름답게 진열된 상품들이 끝없이 펼쳐진 거리를 거닐며 무의식 중  빠져들게 된다. 결국 몰은 고객들이 적극적으로 소비하도록 끊임없이 유혹하는 일종의 건축적 장치인 것이다. 나를 포함한 건축가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하는 거리를 만들며 희열을 느낄 것이다. 우리들 입장에서의 몰링은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쇼핑몰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위에서 언급한 것들을 바탕으로 색다른 시선으로 둘러보길 바란다.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고 이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가미돼 더욱더 몰링에 매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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