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는 나라, 성별, 인종을 불문하고 12~17세 사이의 청년기에 겪는 성장통이며, ‘나’라는 자아와 환경의 괴리가 만들어 내는 병(病)이고, 그 당시 아이만 겪을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이 때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되고, 자신의 환경에 대한 객관화로 인해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이 배양 될 수 있다. 물론,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는 있으나, 그 환경적인 요인이 개인이 자아를 성찰하는 요인보다 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매일같이 혼란과 마주친다. ‘왜 우리 집은 이렇게 사는 거지?’,‘도대체 부모는 나한테 해 주는게 뭐지?’,‘공부는 왜 해야하는걸까?’ 등과 같은 수 백 가지의 질문이 그들의 머릿속을 휘졌고 다닌다. 이런 혼란한 시기에도 학교에 가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까지 하니, 당시 사춘기 소년⸱소녀들이 겪어야할 사고의 폭과 깊이는 당시를 살았을 어른들조차도 지금기준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의 주인공 콜필드의 사례로 보자면, 그는 유복한 환경에서 좋은 학교에 다니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 당시 아이들이 겪어야하는 사춘기를 보내며, 반항아가 된다. 그런데 그의 반항은 마치 올챙이 주제에 개구리처럼 대접받고 싶어 하는데 어른이 되고 싶은 떼쓰는 아이같이 굴어버린다. 자기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사회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그가 어른처럼 행동할수록, 자신의 어린면이 자꾸 드러난다는 점이다. 기숙사 룸메이트가 자기랑 알던 여자아이(나는 콜필드가 이 여자아이를 좋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와 데이트를 간다고 했을 때 그가 느꼈을 감정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결국 데이트가 끝난 룸메이트와 주먹다짐을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든 뒤에 학교를 그만두는 자충수를 두고, 집으로 가는 기차역에서 학교 동기의 어머니에게 추파를 던지고, 집에 들어가면 혼날 것을 알기에 이도저도 못하며 술집에나 전전하다가 자신이 원하는 어른대접은커녕, 바보 같은 일들만 되풀이한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콜필드의 행동은 반항이라는 아름다운 명칭으로 포장되어 ‘이 시대의 반항아’의 타이틀을 갖는다. 하지만 콜필드의 반항은 사춘기 소년⸱소녀의 그 것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고 본다. 마치, 영화 「나홀로 집에」의 주인공 케빈처럼 돈 만 많은 경험 없는 어린애라고 생각한다. 결국, 콜필드는 거짓 반항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럼 진짜 반항은 무엇일까? 사춘기 소년⸱소녀들은 한 참 뛰어 놀고, 많은 경험을 해야 하는 시기지만, 그 경험들을 거부하고, 몇 시간씩 책상에 앉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다면, 그 앉아있는 시간 자체가 자신들에 대한 역행이고, 나는 그 역행을 건강한 반항이라고 생각한다.
사춘기는 일생에 한 번만 온다. 그 한 번을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따라 삶이 결정된다고 앞서 생각했다. 무엇이던 처음은 낯설고, 혼란스럽지만 가만히 앉아서 차근차근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면, 그 어떤 시련과 고난이 와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외견이 멋져 보일 수(?)있는 거짓 반항 보다는 정말 ‘나’를 찾을 수 있는 건강한 반항을 한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