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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돌핀 Jul 16. 2024

현장은 실전이다

내 인생의 첫 현장

안산 건설기능학교에서 40일 형틀목공 과정을 마치고 일할 수 있는 현장을 찾기 시작했다.

기능학교 마치면서 함께 교육을 들었던 동료들과 이제 갈쿠리로 돈을 쓸어 담을 일만 남았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워낙 건설 경기가 안 좋다는 이야기를 그전부터 뉴스에서 많이 접했는데

막상 그게 나의 일로 다가오니 무게가 달랐다. 현장은 일용직 노동자에겐 생계의 절대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핸드폰 어플 목록엔 ‘가다’, ‘일다오’, ‘일가자’ 등 건설 현장 구직 어플이 가득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위해 수시로 어플에 접속해 본다.


40일 과정을 마치고 배운 것을 까먹지 않으려면 바로 구직을 해야 하는데

마침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10분 거리에 있는 서초동 현장이 하나 올라왔다.

대부분 기능공이나 준기능공을 뽑거나 그마저도 없거나 아니면 지방에 가야 일을 할 수 있는데

나름 서울에 초보도 뽑아준다고 하니 냉큼 가겠다고 하고 월요일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다.


내가 속한 팀은 중국인이 대부분인 팀이었다. 그래도 팀장님도 그렇고, 팀원들도 한국말을 잘하셔서 어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은 사치였다. 일을 하는 게 중요했고, 경험을 쌓고 실력을 쌓는 게 새로운 출발을 하는 나에겐 더 우선순위였다.


현장은 신세계였다.

기능학교 40일 과정을 가기 전에 보통인부(일명 잡부)로 아파트 현장에서 일을 해보긴 했지만 그건 골조가 올라간 상태에서 청소 위주의 일이었다면

형틀 목수 일은 골조를 세우는 일이 주된 일이라 철근이며, 거푸집이며, 용접이며 등등 현장이 정신이 없었다.

엘리베이터실 벽체 작업중


출근과 함께 사수 반장님(건설 현장에서는 서로를 반장님이라고 부른다) 밑에서 조수로 일을 시작했다.

조수 일은 다른 게 없다. 뭐 찾아와라, 뭐 잘라와라 하면 그대로 해서 가져다주면 된다.

어떤 사수 반장을 만나는가가 관건이다.


계단실 옆 엘리베이터 쪽 구간에서 일을 했는데 반장님이 스킬(전기톱)로 이것저것 제작해 오라고 하고, 찾아오라고 하는데

이건 뭐 적응할 시간도 없이 바로 실전이었다.

현장에서 쓰는 용어는 일본어가 많다.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미리 용어들로 훑어보곤 왔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모르는 말 투성이었다.


반장님이 ‘기스리’ 좀 구해와라고 했는데

‘잉? 기스린 뭐지 처음 들어보는데’하며 다시 물어보기도 하고

반생 뜨라고 했는데 막상 하려니 잘 안돼서 허둥대고


첫술에 배부르랴 하지만

그래도 잘하고 싶은 맘과는 다르게 뭐 하나 맘처럼 되지 않아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가던지.

첫 작업물. 합판에 제작할 것을 그려주면 그대로 제작한다. 합판은 목수에겐 더할나위 없는 작업 노트다.


그래도 기능학교에서 배운 것들 떠올리며 그리고 이것저것 찾아다니면서 배웠던 것들이 현장에선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빠르게 눈으로 스캔하며

현장을 파악하려고 감각기관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첫날이 어떻게 지나간 줄 모르게 퇴근시간이 됐고, 입고 있던 작업복은 땀으로 범벅이 됐다.

위에 합판으로 제작된 부분이 콘크리트를 타설할 구멍이다.


지하층 작업도 이렇게 땀이 줄줄 나는데, 완전 여름이 되면 야외에서 작업하는 건설 노동자들은 얼마나 더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누군가의 사무공간, 누군가의 집을 짓기 위해

지하에서 야외에서 정말 누구보다 부지런히 정직하게 일하는 노동자들을 ‘건폭’이라고 매도하는 언론과 정치세력에 대한 화도 났다.

당사자가 되어보니 보이는 게, 느끼는 게 달랐다. 일터의 반장님들은 허투루, 대충대충이 없었다. 참 먹는 시간에도 후딱 먹고 다시 각자 맡은 작업 공간으로 가서 일을 하기 바쁘다.

존경심이 절로 생긴달까.


어느덧 이 현장에서 일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곧 형틀목수가 하는 일은 끝난다. 그다음 공정에 필요한 노동자들이 이 현장을 책임질 것이다.

건물하나가 올라가기까지 무수한 공정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든다는 것을 글이나 티비 화면이 아닌 직접적인 경험으로 느끼는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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