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도 벌써 중순을 넘어서고 있는데 작년 말부터 시작된 조직개편의 혼란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올해는 특히 최고경영자가 바뀌게 된 터라, 한동안 당연하다고 여겨 졌던 여러 조직의 헌법들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권불십년 - 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권불5년? 전임 최고 경영자와 코드가 잘 맞고 출신이 같았던 기세등등하던 모 임원은 간신히 자리 보전을 위해 어느 주목받지 않는 국내의 작은 부서로 발령이나고, 세대교체란 이름하에 나이가 지긋하시던 몇 분은 아무런 맥락없이 보직에서 면 되고, 새롭게 바뀐 대표이사의 경영방향과 취향은 도대체 어떠한 것인지 다들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이럴때 마다 횡행하는 것이 조직개편. 조삼모사라는 고사를 보며 황당하다고 웃어 넘겼지만, 파워포인트 안에 슥슥 조직도를 이렇게 그리고 저렇게 그리고 똑같은 사람을 다른곳에 위치시키고, 새로운 팀을 만들며, 아침의 3개와 저녁의 4를, 아침의 2와 저녁의 5로 만들며 갑자기 30이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을 보면.. 아 회사란 정말 기본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중요하구나. 비즈니스 모델이 탄탄하다면 정말 웬만하게 이상한 변화를 주어도 끄떡없구나 생각이 든다.
나의 회사 생활을 보면 3가지 다른 힘들이 작용하고 있는것을 본다. 우선 나의 의지 - 하고 싶다와 하기 싫다. 그리고 능력 -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당위성 - 해야 한다와 하면 안 된다. 내가 속해 있는 한국의 일반적인 기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건 당위성 이다. 해야 한다는 회사의 목표를 세우는 과정에서 능력과 의지는 별로 고려되지 않는다. 한번 목표가 세워지고 나면 모두들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존재하지 않는 능력이 마치 있는 것처럼, 하지 않을 투자를 마치 할 것 처럼 구체적인 전략을 세운다. 회사의 목표에 나의 의지를 일찌감치 동화 시켜서, 마치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것처럼 몰입하지 않으면 대번에 가장 듣기 싫은 그 질책 - 너는 남의 일처럼 일을 하냐? - 가 떨어진다. 성경말씀에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 했는데, 조물주는 믿음의 결과에 따라 신의 의지에 따라 응답이 오지만, 회사에서의 믿음은 시간이 지나 교주가 사라지고 나면 다른 믿음으로 대체될 뿐이다. 사실, 냉정한 경쟁의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능력 이다. 남들 보다 잘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남들 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더 좋은 제품을, 더 좋은 서비스를, 더 잘 알리고, 더 잘 팔면 되는 것이다. 능력이 없이 운이 좋아 한순간의 티핑포인트를 만날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 준비되지 않는 기회는 금방 사라지고 만다. 당위성은 어찌 보면 한국식의 외부로 부터 주입된 강제적인 동기부여로 보인다. 국가로 부터 주어진 해야 한다는 목표. 사회에서 주입되는 성공의 기준. 군대에서 강요되는 까라면 까라는 문화. 의지와 능력의 균형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스스로 결정할 겨를도 없이 강요된 해야 한다의 당위성은 그 목표와 어긋난 의지와 능력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을 짓뭉개며 어딘가로 굴러가고만 있는 것 같다.
(사족인데.. 군대에서 했던 신기한 경험이다. 간부가 병사들에게 부대 훈련장 옆에 화장실을 만들으라고 작업지시를 하는데, 아무런 재료와 충분한 도구를 주지 않는것이 아닌가. 뭉특한 삽 몇자루를 가지고 기어코 화장실을 만들어낸 병사들에게 물어보니. 삽으로 땅도 파고, 나무도 자르고, 못도 박았고.. 재료는 산에서, 버려진 건물에서 구했다고 한다. 다른 나무에 박힌 못을 뽑아서 잘 펴서 다시 쓸수 있다는걸 이때 처음 알았다. 당위성의 힘이다. 몇일이면 무너질지언정 무에서 유를 만들어 냈으니)
능력은 어떻게 개발되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나의 의지와 연결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할때, 전문성과 능력이 점점 발전되는 것이다. 타인의 의지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것을 하며 사회의 경제적 일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다양한 Platform 이 더욱 활성화 되길 기대해 본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해도 충분히 인정받고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각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과 능력을 꽃피운다면,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무한하게 성장하려고 경쟁하지 않아도 될 수도 있다. 자신만만하고 똑똑하고, IT 기술적인 인사이트가 충만하신 젊은 경영자들이 많이 나서서 더욱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기회가 온다면 내 온힘을 다 해서 그들을 지원하고 조언하리라.
모쪼록 아직 완료되지 않은 회사의 조직개편이 나의 의지와 능력에 크게 반하지 않기를 바란다. 새로오신 대표님과 임원들이라면 당연히 그들만의 거창한 해야 한다 를 주장해야만 하겠으나 부디 이 땅에서 오늘을 근근히 살아가는 우리 직원들의 일상과 소망과 너무 동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 필요한 일을 하면서, 스스로의 능력을 개발하고, 작은 성공을 거듭하고, 동료들과 협업하며, 한달에 한번 급여일에만 간신히 느끼는 물질적 만족이 아닌 일을 통한 보람을 경험할 수 있다면, 아직 우리 아이들이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기까지 남아 있는 10년 넘게 남아 있는 나의 "일 해야만 하는" 시간이 그래도 견딜만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