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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출내기 Oct 18. 2023

북유럽 크루즈 여행

 근 10년을 유럽 근방에서 지내다 보니 이젠 어지간한 유럽의 유명한 곳은 대부분 돌아볼 수 있었기에. 이제 비슷 비슷한 광장과 교회가 아닌 색다른 여행을 다녀보고 있다. 독일에온 첫해에는 아이슬란드에서 캠핑카를 몰고 섬을 한바퀴 돌았고, 얼마전 여름에는 초대형 크루즈를 타고 북유럽을 다녀왔다. 아직 생생한 그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몇자 글을 남겨 본다. 

(크루즈 여행 정보에 대한 글은 아니므로, 일정, 예약 방법 등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실 배를 타는 것을 좋아 하지 않는다. 어렸을때 아버지와 함께 낚시 통통배, 동해에서 극동 러시아로 가는 유람선, 그리스에서 산토리니 섬에 가던 쾌속선, 나폴리에서 포치타노 앞바다 요트 등등 항상 힘들었다.  주기적으로 끝없이 꿀렁거리는 그 참을 수 없는 연속적인 불쾌감! 하지만, 무려 6,327 명의 승객이 탈 수 있는 거대한 이 크루즈는 정말..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이토록 큰 구조물이 물위에 떠 있을 수 있다니. 

 

유럽의 대부분 관광지에 가면 숙소와 주차의 문제와 마추치게 된다. 오래된 구 도심은 거미줄 처럼 좁은 도로로 이어져 있고, 사방에서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와 골목에 들어선 순간 여기에 내가 차를 왜 가지고 왔지 후회하게 된다. 하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으니 결국은 다시 자동차 여행으로 돌아가곤 한다. 관광지가 가까운 도심지 숙소는 비싸고, 주차장이 없고, 외각으로 나가면 도심 관광지까지 또 다른 교통수단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하지만 크루즈 여행에서는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묵고 있는 거대한 호텔이 둥둥 떠서, 광광지 바로 앞의 그 항구에 딱 멈춰선다. 그날 여행에 맞는 간단한 옷차림과 채비를 하고 배를 나서면 관광 시작이고, 다시 돌아오면 바로 숙소에서 휴식 시작이다. 하루에 두번씩 완전히 깨끗하게 정리를 하는 우리 방은 여행에서 돌아오면 늘 완벽한 처음 모습 그대로 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분위기 좋은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상당기간 동안 불가능한 일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빡빡한 육아의 환경과 시간과 분위기에서 총체적으로 벗어나 자유를 맛보는 것은 어렵다. 잠시 분위기를 내 본다고 해도, 금방 깨어지기 마련이다. 크루즈의 저녁 만찬장에서는 치렁 치렁한 드레스에 귀걸이, 목걸이를 늘어뜨리고, 조그만 카우치를 손에 든 엄마 옆에 턱시도를 차려 입은 아빠가 팔짱을 끼고 같이 걸어 간다. 늘 챙겨야 했던 아이는 그 나이에 맞는 배안의 또래 아이들 클럽에서 신나게 놀고 있고, 풀메이크업을 하고 방을 나서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바로 클럽이다. 그 분들에게는 얼마만의 나들이 였을까? 

 

배 안에는 수영장에 4개나 있다. 하나는 갑판 가장 넓은 곳에 일광욕을 할 수 있게 준비된 가장 넓은곳, 한곳은 배 앞에, 또 한곳은 배 뒤에, 또 한곳은 실내에. 수영장 주변에는 따뜻한 물이 거품과 함께 나오는 자쿠지 욕탕이 있어서, 수영을 하다가 나와서 몸을 덥힐 수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9시가 넘은 시간, 누군가는 파티를 즐기고, 누군가는 하루를 마무리 하는 그 시간, 수영장이 문을 닫는 11시가 되기 전까지 한적한 수영장에 둥둥 떠서 하루를 마무리 한다. 밤이 되어 하늘이 깜깜해 지면 실내수영장 위의 유리 천장에 수영하는 내 모습이 거울처럼 비친다. 수영을 하다가 수건으로 몸을 감고, 한 층 내려가면 바로 내 방이 나온다. 

 

이런 꿈과 환상의 움직이는 초 호화 호텔을 지탱하는건.. 역시 돈 이다. 

이미 크루즈 여행과 숙박을 확정할때 상당 금액을 결재하고, 배에 탑승하지만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추가 결재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망망 대해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한 기기당 하루에 20유로를 내야 하고, 유튭 같은 스트리밍 지원이 되는 패키지는 더 높은 금액을 필요로 한다. 4식구가 핸드폰 연결을 각각 다 하면 거의 하루에 100 유로. 24시간 부페 식당을 통해서 음식은 계속 제공되는데, 음료를 주문하려면 별도로 비용을 내야 한다. 개인당 하루에 50 유로 정도 낸다면 음료 무제한 패키지가 있는데, 이것도 일반 소프트 드링크인지 알콜 포함인지에 따라 차등 적용이 된다. 여행지에서 내리면 크루즈 도착/출발 일정에 딱 맞는 여행상품들이 준비 되어 있는데, 개인당 200 ~ 300 유로의 비용이 든다. 이런 모든 비용을 4인 가족 기준으로 하면, 금새 처음 전체 여행 일정을 계획했었던 예산을 훌쩍 넘어가게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다행스럽게도 여행 기간동안에 시급을 요하는 급한 업무가 없었던 터라 인터넷은 육지에 올라왔을때 로밍을 사용해서 이메일 확인을 할 수 있었고, 식사때 따로 주문하는 한잔씩의 음료로 충분했으며, 그동안의 유럽 여행 경험과 약간의 운을 보태서 즉흥적이었지만 성공적으로 도착한 곳에서의 여행을 잘 할 수 있었다. 

물론 크루즈 면세점에서의 쇼핑으로 배에서 내일때 상당히 긴 인보이스를 받아야만 했지만, 수많은 유혹속에서 추가적인 지출을 하지 않을 수 있게 옆에서 붙잡아준 아내와 잘 참아낸 스스로를 칭찬한다.  

크루즈 안에서는 다음 크루즈 일정과 상품을 소개하고, 심지어 6개월 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세계일주 프로그램까지 홍보하고 있었다.  정말 나중에..  시간이 정말 많고, 돈은 걱정이 없을때 이런것이 가능하겠지 싶다. 저기 보이는 백발의 기품 있어 보이는 노 부부가 혹시 그런분들은 아닐지.

 

크루즈는 유럽식 럭셔리 여행이다. 잔잔하고, 편안하고, 느리고, 단순하고, 오래 걸린다. 최소한의 변화속에서 아주 약간씩의 새로움이 등장한다. 일관되고 종합적인 서비스가 제공된다. 준비된 여러 가지 서비스들을 각자 취향에 맞춰서 선택하고, 각자의 시간을 즐긴다. 아마 예전 귀족의 여행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여러 수행원들을 데리고, 다른 유럽 나라의 여행지에 가서 파티를 즐기고, 잠깐의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고, 시간적 제약 없이, 전체적인 경로를 부유하듯 미끄러져 나가며, 머물렀다가, 쉬고, 다시 이동하는 그런 여행. 

 

짧은 시간안에 전투적으로 즐기는 여행과는 사뭇 다르다. 새벽 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일분 일초도 헛되게 버려지지 않도록 요소 요소의 명소를 콕 찝어서 상세한 동선이 계획된다. 정해진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쇼핑을 하고, 같이 이동한다. 그러다 보니 거기 다녀왔다 는 정복 기억과 인증과 체험이 뒤섞인 여행이다. 이런 여러 명소를 이렇게 짧은 시간과 적은 비용으로 다녀왔다는 감탄과 힘든 여정을 끝까지 완수 했다는 성취감이 가득한 여행이다. 개인의 취향이 각각 다르기에 여행에도 정답은 없다. 단, 무엇이든 한번에 모든것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 학창시절에 들었던 잔소리가 떠오른다. 공부 못하는 녀석들이 꼭 국어 시간에 수학문제 풀고, 수학 시간에 사회 공부한다고. 


 크루즈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시기를. 천천히, 가볍게, 배안에 준비된 시설을 즐기고, 적절하게 지갑을 열어 준비된 서비스들을 만끽해 보시길. 항구에 정박하면, 인증샷을 위한 관광 명소에 급하기 달려가기 보다 갈매기 날아 다니는 작은 마을 산책을 하며 곳곳 마다 다른 분위기를 느껴보고, 멋진 슈트와 드레스와 화려한 장신구들도 챙겨서 와인을 곁들인 정찬도 즐기고, 아이들 걱정이나 택시 타고 바쁘게 집에갈 걱정 없이 밤새워 파티에도 참석해 보고, 가격 확인하지 않고 메뉴에 나와 있는 칵테일들 하나씩 다 먹어보고, 아무도 없는 실내 풀장에 누워 밤하늘 별속에 비친 내 모습도 구경해 보고, 전신 마사지가 포함된 SPA 도 즐겨보고, 크루즈 안에서만 특별히 팔고 있는 물건들도 쇼핑해 보고, 여행이 끝났을때 이제 작별해야 하는 거대한 바다 위 호화 리조트에 대한 아쉬움도 느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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