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기계가 잠시 멈추거나 화면이 지지직거리며 깨지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글리치(Glitch)'라고 부른다. 보통은 고쳐야 할 고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깨진 화면 속에서 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 마음도 가끔은 이 기계처럼 '글리치'현상을 일으키곤 한다.
영화 <블랙 스완>의 주인공 니나가 겪는 과정은,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한 인간의 마음이 예술을 위해 이토록 아름답고도 슬프게 망가져야 하는지(글리치 현상)를 잘 보여준다.
"착한 아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 속 니나는 평생을 '화이트 스완'처럼 깨끗하고 실수 없는 모습으로 살아야 했다.
마치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엄마의 기대, 발레단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본능이나 감정 같은 것들을 '오류'라고 생각하며 꾹꾹 눌러 담으며 버틴다.
하지만 누르면 누를수록 마음속의 압력은 커져만 가기 마련이다.
영화 속에서 니나가 환각을 보거나 몸에 깃털이 돋아나는 기괴한 장면들은, 사실 그녀의 마음이 "나 너무 힘들어서 이제 곧 고장 날 것 같아!"라고 보내는 일종의 경고 신호, 즉 '글리치'다.
망가져야만 완성되는 슬픈 예술!
흥미로운 건 니나가 '블랙 스완'으로서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는 순간, 그녀의 정신은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마치 화면이 화려하게 깨지면서 멈춰버리는 기계처럼 말이다.
블랙 스완 (Black Swan, 2010)
감독 : 대런 아로노프스키
완벽함을 강요받는 예술가가 겪는 정신적 붕괴와 환각(글리치 현상)을 다룬 영화.
시스템이 요구하는 '완벽'에 도달하기 위해 자아가 파괴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훌륭하게 표현했다.
영화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우리는 이런 모습을 자주 본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설리 같은 스타들이 대중의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정작 그 이면에서는 마음의 병을 앓으며 힘겨워했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처음에 대중은 이해하지 못했다. 저토록 사랑받고 완벽한 스타가 일탈이나 치기 어린 모습에 실망하고 비난하기까지 한다.
세상은 그들이 '완벽한 인형'이기를 바라지만, 인간은 인형이 아니기에 결국 어딘가에서 '글리치(오류)'가 터져 나오기 마련이었다.
대중은 때로 그들이 망가지는 모습조차 하나의 '볼거리'로 소비하곤 하지만, 그건 사실 한 인간이 지르는 마지막 비명과도 같았다.
니나는 마지막 순간 "It was perfect." (완벽했어)라고 말하며 무대 아래로 추락한다. 하지만 그 완벽함은 스스로를 파괴함으로써 얻은 너무나 비싼 대가였다.
글리치는 시스템의 실패가 아니라, "나는 기계가 아니라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결함이 있고, 가끔은 마음의 고장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글리치'를 무조건 고쳐야 할 버그로만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받아들여 줄 수 있는 따뜻한 시선이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하지 않을까?
영화 속 니나를 보고 있으면, 문득 우리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한 팝스타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바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다.
그녀 역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전 세계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미국의 인형'으로 길러졌다. 대중은 그녀가 언제나 밝게 웃고, 완벽한 춤을 추며, 티 없이 맑은 '화이트 스완'의 모습으로만 남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인간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기에, 누군가 짜놓은 코드대로만 살 수는 없다. 시스템이 그녀를 억압하고 사생활이 낱낱이 파헤칠수록, 그녀의 삶에는 조금씩 글리치(오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갑자기 머리를 삭발하거나 파파라치를 공격했던 그 충격적인 사진이 찍히던 순간들 말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단지 "미친 행동"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제발 나를 한 명의 인간으로 봐달라"는 처절한 비명과 몸짓이었다.
영화 속 니나가 검은 날개를 달고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망가져 갈 때 관객들이 환호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도 브리트니가 고통받는 모습을 하나의 자극적인 뉴스거리로 소비하곤 했다.
사랑받기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새 사랑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감옥이 되어버린 셈이다.
결국 브리트니나 니나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아티스트에게 기대하는 그 '완벽함'이라는 것이,
혹시 한 사람의 영혼을 깎아 먹으며 만들어진 슬픈 환상'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커질수록 그녀의 진짜 목소리는 작아져만 갔다. 예쁜 옷을 입고 정해진 춤을 추는 인형의 삶은 화려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정작 그녀가 원했던 건 자신의 발로 땅을 딛고 서서 서툴게나마 자신의 인생을 그려가는 자유였는지 모른다.
세상은 그녀를 쇼윈도 속의 정교한 인형처럼 다뤘지만, 그 유리창 안에서 그녀는 숨이 막힐 듯한 외로움을 견디며 평범한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제2의 브리트니나 설리가 나오지 않도록, 우리가 만든 '시스템'을 스스로 고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법이라는 울타리가 튼튼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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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브리트니 사건을 계기로 아티스트의 재산과 삶을 누군가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게 감시하는 법안들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어린 아이돌이 충분히 잠을 자고 공부할 권리를 법으로 정하고, 소속사가 아티스트의 마음 건강을 의무적으로 돌보도록 강제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방패도 생겨났다. 무차별적인 비난의 장이었던 포털 사이트의 연예 뉴스 댓글 창이 사라진 것이 대표적인 변화다.
비난의 말들이 아티스트의 영혼에 '글리치'를 일으키지 않도록 최소한의 보호막을 친 셈이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우리의 시선'이다. 이제 팬들은 스타를 무대 위의 인형으로만 보지 않는다.
아티스트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대책은 근사한 법안보다 "스타이기 전에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라고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따뜻한 배려와 관심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깨진 픽셀을 구경하는 관객이 아니라, 시스템을 함께 수리하는 동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글리치 없는 기계가 아니라, 조금 서툴러도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길 진심으로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