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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민 Sep 29. 2022

하루 종일 화장실에 한 번도 못 갔다

제목 그대로 오늘은 일하는 동안 화장실에  번도 가지 못했다. 아침 8 30분에 출근해서 저녁 6 30분에 퇴근할 때까지,   번도.


화장실에 가고 싶은지 어쩐지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걸 느낄 시간조차 나에겐 주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하려나.


내 업무는 정해진 근무시간보다 앞서, 사람들로 붐비는 출근길에서부터 시작된다. 여느 때와 같이 배가 아프다, 열이 난다 하며 학교를 가지 못하겠다는 아이들의 연락에 하나하나 답을 하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학교에 도착했다. 조회 시간에 군데군데 아이들의 빈자리를 보면서 ‘졸업 때까지 우리 반 전원이 등교를 하는 날이 있을까’라는 자조 섞인 물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잠깐 생각에 잠길 겨를도 없이 오늘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레가 월말이고, 출석부와 결석계를 교무부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전산에 입력한 9월 출결현황이 정확한지 꼼꼼하게 점검하고 수십 장의 출석 관련 서류를 챙기느라 빠르게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종이에 파묻혀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에 학부모님의 전화번호가 떠올랐다. 오늘 아침에 배가 아파 학교를 못 가겠다던 학생의 어머니였다. 어쩐지 좀 이상하다 싶긴 했다. 이 아이가 꾀병을 부릴 아이는 아닌데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신 걸 보니 많이 아픈가 보다 하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얘기를 하신다. 자세한 내용을 여기서 말할 순 없지만 아주 큰일이 생겼다. 어떻게 해결을 하면 좋을지 도저히 나 혼자서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 그런 일이.


전화를 끊고 여러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하고, 상황 파악을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관련된 학생들을 불러 면담을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오늘 수업이 3시간 있었는데 교실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온종일 사건을 수습하다 문득문득 ‘교실에 남아 있는 아이들은 어쩌지? 나 없는 사이에 또 다른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이 계속 찾아왔지만 내 몸이 몇 개로 쪼개질 수는 없기에 급한 불을 먼저 끄러 다닐 수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무슨 정신으로 아이들을 하교시켰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다만 선생님들이 모두 퇴근한 텅 빈 교무실에 혼자 앉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 녹음기를 켜 놓고 2시간 동안 여러 사람들과 통화를 하고 나니, 그제야 내가 오늘 화장실에 단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 또한 초과근무 수당은커녕 저녁조차 먹지 못했다는 것도.


불 꺼진 복도를 지나 홀로 교문을 나서는데 엄마에게서 문자가 와 있는 걸 발견했다.


저녁 먹었니?”

순간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응 먹었지” 하고 짧게 답장을 보냈다.


하루 종일 화장실도 가지 못 하고, 밥도 먹지 못했다는 걸 차마 엄마에게 얘기할 수는 없어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삼키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기에 속시원히 어디다 말을 할 수도 없어 너무나 외롭고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지금도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깨어 글을 쓰고 있는데 제발 올해엔 더 이상은 힘든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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