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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우 Mar 13. 2024

참을 수 없는 운의 가벼움

도시의 천덕꾸러기, 홈리스 이야기

A씨는 근처 편의점에서 얻은 종이 상자 몇 개를 바닥에 적당히 펴고 익숙한 듯이 그 위에 철퍼덕 앉았다. 서울역 앞 지하도 한 켠은 이미 삼삼오오로 모인 사람들로 만원이다. 푹푹 찌는 한여름 지상의 더위도 이 지하도에선 견딜만 했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나오는 서울역 대합실이나 패스트 푸드점은 출입제한을 둔 지 오래됐다.


거리 생활자에게 한여름은 한겨울 다음으로 고역이다. 무더위로 생긴 땀을 제때 씼지 못해 냄새가 악취로 변하는 건 금방이다. 체취, 땀내는 물론이고 술김에 어딘가에서 묻었을 소변 냄새까지 뒤섞인 자신들을 향한 혐오와 경멸의 눈빛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바캉스의 계절로 불리는 여름이 노숙인에게는 작열하는 태양만큼 따가운 시선의 시기이다. 있어도 없는 것 같은 도시의 천덕꾸러기이다.


낯익은 얼굴의 B씨와 C씨가 어느새 A씨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예전에 잠자리 구하기와 무료 급식 줄 서기를 서로 도왔던 터라 아직 얼굴을 잊지 않았다. 50대 초반인 B씨의 오른손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왼손에는 피우다 만 담배꽁초가 들려있다. 꽁초를 집고 있는 B씨의 손가락에 보이는 손톱은 때가 끼어 끝부분에 검은 줄이 가늘게 그어져 있다. 열흘은 감지 않아 제멋대로 흐트러진 머리의 B씨는 의기양양하게 비닐봉지에서 주섬주섬 소주와 컵라면을 꺼냈다. 이미 어디서 1차로 술을 마셨는지 B씨는 거나하게 취한 말투로 반갑게 말을 걸었다.


"아이고, A형. 반갑심더. 한잔 하이소."

"됐다마. 오늘은 그럴 기분 아이다."


인상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 40대 후반 C씨도 몸을 움직이며 B씨를 거들었다. 움직일 때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냄새 뭉치가 A씨의 코를 때렸다. 거리 생활자의 처지를 보여주는 고유한 냄새였다. B씨와 C씨는 주거니 받거니 연거푸 소주를 한 모금씩 나눠 마셨다. 뜨거운 물을 붓지 못한 컵라면은 늘 그렇듯이 안주 삼아 그냥 부숴 먹었다. 이들보다 열 살이나 많은 A씨는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B씨와 C씨 그리고 지하도를 오가는 행인들을 번갈아서 쳐다봤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A씨의 입술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인생 스토리는 몰라도 B씨와 C씨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은 익히 들었다.


10년의 노숙 생활을 정리하고 활동가 일을 시작한 지 벌써 2년째. A씨는 현재 코레일과 수원시, 노숙인지원센터가 협력하여 하루 3시간, 20일 환경미화 작업 등을 하면서 월 85만원을 받는다. A씨는 그 돈으로 주거비와 교통비를 감당했다. A씨도 노숙생활 처음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도, 잠자코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임시거주시설인 노숙인쉼터는 하지 말라는 규제가 심해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술에 의존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 갔다. 그럴수록 A씨의 몸은 악화일로였다. 노숙인 대부분은 이런 악순환을 반복한다.


가끔 술에 취해 도로변 건물 2, 3층 창문에 큼직큼직하게 붙어있는 헬스장이나 필라테스 간판은 거리 생활자에게는 낯설 뿐이었다. 정기적으로 시간과 돈을 내서 몸을 만들고 건강을 유지하는 일조차 누군가한테는 언감생심일 수 있다. A씨에게는 최소한의 생계와 주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영양제조차 괜한 사치처럼 보였다. 몸이라고 다 같은 몸이 아니었다.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엄연하게 몸도 몸 나름이었다.


천만다행으로 A씨가 조금씩 활력을 찾은 것은 노숙인 인권을 위해 일하는 활동가들을 만나면서였다. 주거지원을 통해 나만의 주거공간을 가졌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아무리 열악해도 거리 생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쪽방이라고 불리는 그곳을 밑천으로 직접 내 손으로 돈을 벌고 싶었다. 일정하게 거주할 곳이 있다는 것은 주민등록법상 주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사회복지 서비스 대상자로 편입되는 아주 기본적인 조건임을 처음 알았다.


주거공간이 확보되고 쥐꼬리만한 수입이라도 생기면서 A씨는 비로소 평범한 일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지내는 사람을 우연히 마주할 때면 예전 동료 노숙인들 얼굴이 어른거렸다. 누추하더라도 각자 손바닥만한 보금자리로 자립하도록 돕고 싶었다. A씨가 노숙인 인권을 위한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게 된 이유이다. 아시아의 유명 대학 경제학과에 재직하는 K 교수는 인생의 성취 대부분을 좌우하는 것이 ‘운’이라고 했던가. 신기하게도 똑같은 주장을 우리나라의 유명 대학 심리학과의 K 교수도 강조했다. 만일 운이 없었다면 여전히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A씨는 자신이 다른 홈리스에게 작은 운이라도 되길 희망했다.


A씨는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질환 상담을 지원하는 의료기관과 연계해서 활동할 계획이다. 부디 B씨와 C씨가 장차 최소한의 주거공간을 터전으로 자립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한참 동안 이어진 술자리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향하는 A씨의 뒤통수 너머로 혀가 잔뜩 꼬부라진 B씨의 목소리가 점점 사그라졌다. “잘 주무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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