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끈

by 이일우

"전문위원님, 이 많은 자료를 어떻게 봐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답답하네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너무 힘드시죠. 이렇게 저렇게 하시면……"


내 설명을 듣던 A 의원의 눈가에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상임위 회의장에는 어색한 침묵만 가득했다. 첫 티타임 자리였던 터라 나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이 여성 구의원은 왜 초면에 가까운 전문위원 앞에서 눈물을 흘렸을까.


그날은 구의원의 4년 임기를 시작하고 맞이한 세 번째 임시회 기간의 끝 무렵이었다. 상임위 회의가 끝나고 회의장을 정리하던 나는 시무룩하게 앉아 있던 A 의원에게 차를 마시겠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상임위 회의 내내 별다른 발언도 없었고 표정이 어두워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임위 회의장 한 켠에 마주 앉았다. 상임위에 상정된 안건의 쟁점부터 구정질문 준비요령, 민원처리 절차까지 A 의원의 질문은 의정활동 전반으로 이어졌다.


8년 간 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A 의원처럼 원내 의정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걱정하는 구의원을 많이 만났다. 여기서 '원내 의정활동'이란 의회 안에서 각종 안건을 심사하거나 상임위나 본회의에서 발언하는 것을 말한다. 외유성 해외연수만 다니는 불량스러운 지방의회의원만 있는 줄로 안다면 지방의회에 대한 큰 오해이다. 언론에서 단골로 나오는 천박하고 함량 미달인 지방의원도 더러 있지만 국회나 정당에서 다져진 오랜 경험으로 원내 의정활동에 진심인 노련한 지방의회의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차갑게 식어갈수록 A 의원의 질문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평소 초선의원에게 하듯이 내가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는 동안 A 의원의 표정에는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의원님, 초선의원일수록 원내 의정활동을 낯설고 어려워하세요. 너무 겁먹지 마시고요. 제가 1년 조금 안 되게 검정고시학원에서 영어과목 강사를 한 적도 있거든요. 언제든 편하게 물어보세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A 의원의 표정이 갑자기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아, 검정고시학원이요? 정말이요? 실은, 저 이거 다른 의원들한테도 아직 말하지 못한 건데, 저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마쳤어요. 지역에서 정당 활동한 지는 십 년이 넘었지만 집에서 살림만 해봐서 모르는 게 많네요. 구의원 공천도 주변에서 하도 추천해서 어쩌다 보니……. 전문위원님한테 별 얘기를 다 하네…….”


그러면서 A 의원은 잠깐 동안 한편의 ‘인간극장’을 펼쳐놓았다. 20대 때 강원도 산골에서 서울로 상경한 집안 얘기며, 우연히 사업하는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키운 얘기, 이제는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가 된 과정까지 A 의원의 말은 빠르게 이어졌다. 말을 하는 중간중간 A 의원의 눈은 빨갛게 충혈됐고 빈 종이컵은 A 의원의 한숨과 눈물로 채워지고 있었다. ‘학력 콤플렉스였겠구나. 이분이 다른 초선의원보다 원내 의정활동에 유난히 자신이 없었던 이유가.’ 검정고시학원 강사 시절 주경야독하는 학생들을 드물지 않게 만났다. 비인가 대안학교를 졸업하는 바람에 학력 인정을 받으러 온 수줍은 10대 소녀도 있었지만 노래방 사장으로 일하면서 낮에는 중학교 검정고시 과정에 다닌 160센티미터쯤의 키에 머리숱이 적었던 아저씨, 옷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대학생이 되는 꿈을 키우는 20대 중반의 아가씨도 있었다. 가장 인상에 남은 학생은 의사인 남편한테 중졸 학력을 속이고 고졸 검정고시반에 다니던 어느 중년 여성이다. 삼삼오오 친한 학생들과 검정고시를 시작한 계기를 얘기하는 자리였다. 자존심 때문에 검정고시학원에 다니는 것조차 남편한테 말하지 못했다며 연신 눈물을 닦던 그 50대 여성 앞에서 30대 초반에 미혼이었던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물론 의정활동에 대한 고민은 초선의원만 하는 건 아니다. 재선, 삼선 구의원 중에도 조례안, 예산안, 결산안 심사를 앞두고 자료를 어떻게 분석하고 질의할지 몰라 끙끙 앓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박사과정을 수료한 초선 여성 구의원, 석사졸업 학력의 50대 남성 초선 구의원도 비슷한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표현하느냐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상대적으로 서울시의원은 그런 모습이 적었다. 100명이 넘는 서울시의원 모두를 조사해본 것은 아니지만 다선 구의원 출신이 워낙 많다 보니 원내 의정활동에 이미 익숙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기초의회에 비해 광역의회 정책지원 인력의 질과 양이 월등히 좋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선출직 정치인은 대통령부터 시·군·구의원까지 다양한데 왜 유독 시·군·구의원이 원내 의정활동의 어려움을 호소할까? 필자의 경험상 원내 의정활동을 잘할 수 있는 능력있는 인재라 하더라도 지역구 국회의원의 눈 밖에 있으면 결코 기초의원으로 공천되지 못하는 현실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우여곡절 끝에 공천을 받아 당선되어도 기초의원의 원내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정책보좌 인력의 부족도 중요한 문제이다.

첫 티타임 이후 곧바로 시작한 A 의원과 일대일 과외는 내가 다른 의회로 이직할 때까지 이어졌다. 워낙 삐딱하게 보는 눈이 많다 보니 과외는 의회 주변 커피숍에서 거의 매주 1회씩 2시간 내외 정도로 진행했다. 구정질문 원고나 5분 발언 원고 작성과 리허설, 안건의 쟁점에 대한 설명과 질의 요령까지 원내 의정활동 전반을 다뤘다. 과외비는 매번 커피값과 밥값을 A 의원이 부담하는 정도였지만 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서울시의회와 달리 보좌인력이 워낙 부족해 개인기에만 의존하는 구의원을 개별적으로 도우면서 그 변화를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기 초반의 우려와 다르게 학습 능력과 열의를 갖춘 A 의원의 원내 의정활동은 임기 중반쯤엔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도대체 가방끈이 뭐길래. 흥미로운 점은 스스로 학력이 변변치 않다고 여기는 이가 열등감에 빠지기 쉽다면 반대로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도 내세울 만한 성취가 학력뿐인 사람도 의외로 많다. 가방끈은 가방을 이루는 주요 요소이지만 결코 가방 전체를 대신할 순 없다. 무엇보다 ‘가방끈’이 길든 짧든 서울시의회든 구의회든 누구나 주민들을 위해 일하고 싶을 때 원내 의정활동이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리고 좋은 전문위원이 되고 싶다면 의원의 수다나 넋두리를 들을 때 ‘대나무숲’이 되려고 노력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것은 꼭 전문위원만이 아니라 지방의회 직원이라면 갖춰야 할 직업윤리이기도 하다. 우연히 들은 의원의 이런저런 속내를 집행기관이나 의회사무기구 직원, 심지어 다른 의원에게 말한다면 그는 더 이상 지방의회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