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아무튼, 지방의회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지방의회의 속 이야기

by 이일우

현직 공무원 신분으로 책을 출간하다 보니 고민이 많았다. 단순 업무매뉴얼이 아니고 에세이로 쓴다면 인물과 에피소드를 어느 수준까지 공개하는 것이 좋을지 큰 숙제였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조사관으로 9년간 근무하면서 약 3,000건 이상의 민원을 조사하고 상담했는데, 문득 이 과정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규정이나 사실관계를 묻고 답하는 단순 민원도 있지만, 접수부터 조사와 상담, 내부 검토와 결재 과정까지 긴밀하게 이어지는 민원도 있었다. 일반인이 민원을 제출하는 데 유용할 것 같았다. 전문가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국민의 알권리 보장 같은 사명감 비스무리한 감정이 동시에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권익위에서 첫 책 출간 계획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조사와 상담은 좋았지만 종사하고 있는 분야는 싫었기 때문이다. 담당 업무였던 부동산, 재개발·재건축, 각종 개발사업과 같은 주택건축 분야에 워낙 관심이 없다 보니 조사나 상담업무 자체가 좋았어도 깊이 파고들고 싶진 않았다.


2015년 3월 10일 권익위에서 서대문구의회로 이직했다. 지방의회로 이직한다고 했을 때 권익위의 선배, 동료 조사관들의 반응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비슷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의 국가공무원 신분인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방의회로 왜 옮기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식이었다. 게다가 승진하면서 옮기는 것도 아니었으니 ‘굳이?’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권익위 선배·동료들의 그런 시큰둥한 반응과 상관없이 나는 즐겁기만 했다. 그동안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수년간 국회 보좌진을 꿈꿨고 심지어 마음만은 정도전과 같은 유능한 참모가 되고 싶었으니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이직 후 거의 매일 ‘현타’였다. 지방의회 그중에서도 구의회와 임기제 전문위원의 현실은 지방자치 교과서 내용과 전혀 달랐다. 매일 마주하는 구의원과 사무기구의 행정직 공무원들은 ‘이론’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현실’이자 살아서 꿈틀대는 ‘현장’이었다. 권익위 때와 똑같은 임기제 공무원 신분이었지만 구의회 전문위원의 역할과 책임은 조사관과 사뭇 달랐다. 매번 임시회 때마다 작성해야 하는 안건 검토보고서에 대한 압박감이 가장 컸다. 기존 행정직 전문위원들과 다르게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그러다 보면 수십 명의 구의회 공무원 사이에서 나 혼자 ‘굴러온 돌’과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 권익위 때부터 좋아하던 저자강연이나 북토크, 글쓰기 강좌에 자주 참석했다. 권익위 때와 달라진 내 일의 의미, 차별성, 전문성을 계속 고민했다.


2022년 6월 말 첫 책 《나는 지방의회에서 일한다》를 출간하고 독자들로부터 많은 의견을 들었다. 부끄럽지만 단순 오탈자에 관한 지적도 있었고, 지방의회의 현장을 알기 쉽게 전달해 줘서 고맙다는 진지한 감사 인사도 받았으며, 내부자가 쓴 참여관찰 연구라는 과분한 칭찬도 들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책을 요모조모 살피고 활용해준 독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지방의회에서 일한다》를 출간했던 시기는 그해 1월 13일부터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시행되던 때였다. 시장·군수·구청장이 행사하던 지방의회 사무기구의 직원에 대한 인사권이 의장에게 넘어왔고, 지방의원 2명당 1명씩 정책지원관이 채용되어 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좌하게 되었다. 지방의회가 변화하고 발전하는 도약의 시기였다. 욕심 같아서는 이런 지방의회 현장의 변화된 모습을 첫 책에 자세하게 담고 싶었지만 이미 출판사와 약속한 출간 예정일이 코앞이었다. 결국 30년 만에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으로 인한 지방의회의 변화 그중에서 기초의회의 현실을 아쉽게도 담지 못했다. 첫 책 출간 후 아쉬웠던 점은 더 있다. 워낙 시민들에게 오해와 편견으로 저평가된 지방의회의 역할과 지방의원의 활동을 알리려다 보니 책의 컨셉이 건조한 정보 전달에 치우쳤다는 점이다. 출간기획안을 준비할 때만 해도 소소하면서 담담하게 지방의회에서 겪은 경험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실제 집필을 시작하자, ‘너무 딱딱하고 공무원스러운 것 아닌가’하는 염려가 들 정도로 작업이 쉽지 않았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두 번째 책은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후의 모습 등을 에세이로 써보리라 마음먹은 이유이다.


그러던 중 계획에 없던 변화가 생겼다. 건강상의 문제로 서울시의회를 사직하였고 자의반 타의반 1년이 넘게 ‘셀프 안식년’을 보낸 것이다. 18년 공직생활 중 처음으로 출퇴근 굴레에서 해방됐다. 어차피 부양가족도 적고 자동차도 없으며 평소 고가의 취미를 즐기는 것도 아니니 설마 굶기야 하겠냐는 핑계로 과감하게 구직활동도 접었다. 처음 몇 개월은 아침, 저녁으로 혼잡한 시내버스를 타지 않는 것도, 아무 때나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는 것도, 가고 싶은 곳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것이 마냥 좋았다. 긴 휴가를 내기 어려워 신혼여행을 경주로 다녀온 터라 아내와 처음으로 다녀온 외국여행인 이탈리아는 꿀맛 같았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는 광고 문구를 몰랐다면 나는 아마 죄책감에 짓눌렸을지도 모른다.


셀프 안식년 동안 몸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지내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운 좋게도 간간이 지방의회 몇 곳과 공무원인재개발원 등에서 업무 관련 강의를 했다. 자연스레 지난 8년간의 전문위원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행정직 공무원인 ‘늘공’(늘 공무원)과 나 같은 임기제 신분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정지우 작가의 《사람을 남기는 사람》의 부제 ‘삶을 재구성하는 관계의 법칙’처럼 관계를 중심으로 임기제 전문위원 생활을 재구성해봤다. 그러던 중 2024년 9월 서울시 동작구의회 전문위원(임기제지방행정사무관)으로 임용됐다. 오랜 공백 끝에 다시 일하게 된 구의회 전문위원 업무는 의미가 각별했다.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가까운 지인에게 하는 말이 있다. 동작구의회 전과 후로 임기제 전문위원 경력을 시즌1과 시즌2로 나눌 수 있다는 것. 시즌1의 시기가 주로 지방의회에 대한 나의 신념으로 좌충우돌했다면 시즌2 시기에 비로소 신념 외에 ‘사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집행기관, 늘공과의 관계에서 적대적이기만 했던 태도가 조금 더 포용적으로 달라졌다. 사람은 모두 다르고 생각도 각양각색이다. 전문위원의 본래 역할에 충실하되 동료들과 원만히 지내자고 다짐했다. 동작구의회 전문위원 채용 면접시험 때 조직생활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는 면접위원의 질문에 나는 논어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답변했을 정도였다.


동작구의회에 임용되면서 약 1년 6개월 만에 현장으로 복귀해 지내다 보니 문득 두 번째 책을 쓰고 싶어졌다. 지방의회에 대한 나의 단편적인 지식은 첫 책에서 얼추 쏟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더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첫 책에서는 주로 구의회의 법적 권한이나 역할과 같은 ‘숲’을 설명했다면 이번엔 구의회에서 부대끼며 느낀 에피소드인 ‘나무’를 말하고 싶어졌다. 사실 책을 쓰고 싶은 이유를 뭐라고 하든 첫 책과 마찬가지로 더 많은 주민들이 지방의회를 친숙하게 느끼고 관심을 가지기를 바랄 뿐이다.

두 번째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우연히 신문 칼럼을 읽다가 무릎을 친 적이 있다. 글항아리 출판사 강성민 대표의 글인데, 셀프 안식년을 보낸 내 심경을 마치 옆에서 엿들은 사람처럼 써서 놀랐다.


“인간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A영역이라고 해보자. 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 B영역이라고 해보자. 나를 부정한다는 건 A에서 B로 옮겨간다는 뜻이다. 되든 안 되는 일단 옮겨간다. 그러면 A가 보일 것이다. 기존에는 보이지 않던 A가 보인다. A에선 절대 A의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이건 A가 옳다는 것보다 더 자명한 진실이다. A에선 A의 일부와 B의 전체가 보일 뿐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B로 옮겨갔을 때도 B가 보인다는 것이다. 이때 보이는 건 B의 내밀한 영역이다. 전체로서의 B를 봤기 때문에 나는 B의 세부에서 얻은 정보와 B의 전체적인 그림을 융합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나는 A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B에 쉽게 동화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B의 일부를 공감할 수 있는 감각이 생긴다. 그런 다음 다시 A로 건너간다. 그런데 혼자 가는 것이 아니다. B에서 사귄 친구를 데려간다. 그렇기에 B와 너무 멀리 떨어진 곳으론 가지 못한다.

이로써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뜻이 아니다. 중요한 건 막혀 있던 기혈이 뚫리듯 내 안에서 진정한 소통 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어제까지 '적'으로 생각하던 것을 명단에서 제외할 수 있는 판단력이 생긴다. 적에게 곧장 뻗어나가는 공격성은 날카롭지만 그 예각이 금세 무뎌진다. 하지만 적에게 뻗어나가는 칼날을 나에게 되돌리면서, 그 환차손으로 생겨나는 예각은 훨씬 더 날카롭다. 휘어서 두드려 편 것이기 때문에 담금질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그 예각이 깊이를 만들어낸다.”(출처 : 2025. 1. 31. 매일경제, [강성민의 문화이면] 고통을 반기는 태도)


성철 스님의 저서로 유명해진 말씀이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했던가. 내게 지방의회의 이모저모가 달리 보이듯이 많은 주민들이 지방의회를 전과 다르게 바라보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더도 덜도 말고 전국의 지방의회가 지방자치 관계 법령대로만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시장·군수·구청장이 중요하다고 해도 정작 지방의회가 바로 서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반쪽짜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방의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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