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방의회 실패담

사람들은 보통 옳은 사람보다 좋은 사람 말을 듣는다

by 이일우

"전문위원님, 좌석 배치를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국장님, 의장님과 운영위원장님도 허락하셨습니다."

"아니, 정말로 그렇게 할 거예요?"

"네……"


휴대전화기 너머 의회사무국장 S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2019년 12월 말 OO구의회는 임시청사에서 신청사로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정식 입주를 앞두고 신청사의 전문위원실 좌석을 마음대로 배치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의회사무국장 S는 그게 잘못됐다며 두 번이나 전화를 걸었고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일을 저질렀다. 6급 별정직 전문위원이었던 나는 왜 두 계급이나 높은 상관의 좌석 재배치 요구를 거절했을까? 돌이켜보면 내 행동은 '이불킥'을 할 만했다. 위법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공직사회에서 그냥 지나칠 만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고 수개월 후 나는 5년간 일한 곳을 떠나 다른 구의회 임기제 5급 전문위원으로 이직했다. 내겐 승진의 의미가 컸지만 전문위원실 좌석 배치 사건이 이직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부인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나는 그 사건으로 오랫동안 부대낀 행정직 공무원과의 갈등에 정점을 찍은 줄 알았다. 아뿔싸! 갈수록 태산이었다.

나는 왜 별것도 아닌 사무실 좌석 배치에 연연해했을까? 그깟 좌석 배치가 뭐라고. 짧게 변명하자면 찻잔 속 태풍일지언정 행정관료 위주의 판을 흔들어 보고 싶었다. 신청사에는 의회사무국 사무실이 1층에 있고 개별 의원실과 전문위원실은 3층에 마련됐다. 신청사 입주 며칠 전 임기제인 동료 직원과 전문위원실을 둘러보던 나는 책상을 어떻게 배치할지 가장 먼저 고민됐다. 전문위원실 좌석 배치는 전문위원실 구성원들이 협의하면 될 뿐이지 윗선의 결재를 받을 사항은 아니다. 지극히 사소한 일이니까. 당시 의회사무국의 정원은 32명. 그중 전문위원실에는 5급 행정직 전문위원과 5급 임기제 전문위원이 모두 공석이었으므로 구성원은 6급 별정직 전문위원인 나와 6급 임기제 입법지원관, 7급 행정직 주임 2명이 전부였다. 신청사 입주 시점이 2019년 12월 말이고 2020년 1월 초중순이면 공무원 정기 인사발령에 따라 구청에서 구의회 사무국으로 5급 행정직 전문위원이 올 예정이었으며, 5급 임기제 전문위원은 채용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관행대로 직급이 가장 높은 5급 전문위원 2명의 좌석을 출입구에서 가장 멀게 배치하고, 차례차례 나와 임기제 입법지원관의 좌석을 둘 것인가 아니면 '의회만의 기준'으로 좌석을 새롭게 배치할 것인가가 내겐 고민이었다. 여기서 '의회만의 기준'이란 구청이 아니라 의회에서 채용돼 오래 근무한 직원을 우대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상대적으로 의회에서 가장 오래 근무했고 의원들의 인정을 많이 받았던 내가 가장 안쪽에 앉고 그다음 좌석부터 차례대로 5급 행정직 전문위원, 5급 임기제 전문위원, 6급 임기제 입법지원관 순으로 배치한 것이다. S 국장이 발끈했던 이유다. 6급이 감히 가장 상석에 앉은 셈이니까. 철저한 계급사회인 관료조직에서 이런 좌석 배치는 그야말로 쇼킹한 일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대로 밀어붙였다. 의회를 중심에 놓고 일한다는 전문위원실의 의지를 그렇게라도 강조하고 싶었다. 조직의 당연한 반발을 예상해 가장 먼저 의장과 운영위원장을 따로따로 만나 좌석 배치 계획을 설명하고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행정직 공무원들의 욕을 먹을 게 분명한데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나는 상석에 앉으려 했을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기존 행정직 전문위원들에 대한 분노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당시 내 행동에 대해 직원 대부분은 부정적이었지만 의원 다수는 적극 동의했다. 하지만 이 좌석 배치는 필자가 다른 구의회로 이직하자마자 고참인 5급 행정직 전문위원이 가장 안쪽 책상에 앉는 식으로 즉시 원상 복귀됐다. 17년의 임기제 공무원 경력 중에 처음 해본 '또라이짓'은 그렇게 삼일천하(三日天下)로 끝났다.


9년 가까운 시간 동안 구의회에서 행정직 전문위원 12명과 한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그들은 주로 퇴직 준비라는 명분으로 검토보고서 작성과 같은 전문위원의 고유 업무보다는 화분 돌보기, 경제TV나 바둑TV 시청하기, 의회사무국(과) 고참 팀장들과 노닥거리기, 공인중개사나 주택관리사 자격증 시험공부 등으로 근무 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것 같았다. 정년퇴직이 1∼2년 정도 남은 5급 행정직 과장들은 의회사무국(과)에 발령받기를 선호했다. 고참 직원을 구의회 전문위원으로 보내는 이런 인사 관행은 압도적인 집행기관 우위의 구도를 보여주는 구청 간부와 구의원의 합작품인 셈이다. 나는 의회 신청사 입주를 앞두고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성경 말씀처럼 이제는 전문위원실이 구청에 휘둘리지 않고 의회 입장에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것을 집행기관 등에 보여주고 싶었다. 당연히 관료조직의 보수적인 서열문화는 익히 알고 있었다. '계급이 깡패이고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처럼 조직에서 직급은 권한과 책임의 크기다. 우스갯소리로 공무원들은 식당으로 갈 때도 직급이 높은 순서대로 삼삼오오 이동한다고 하지 않는가.


가장 높은 직급인 과장이 출입문에서 먼 사무실 가장 안쪽에 자리를 잡으면 팀장은 창문을 등진 채 책상을 두고 팀원들은 그 책상을 기준으로 서로 마주 보게 책상을 배치하는 식이다. 전국의 어느 구청·시청·군청의 어떤 부서에 가든 그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누구인지 책상 배치만 보고도 금방 맞힐 수 있을 정도다. 나는 이런 책상 배치 관행이 못마땅했다. 실제 업무능력과 별로 상관이 없이 권위주의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최소한 전문위원실은 흔한 관료조직과 다르게 의회만의 고유한 기준을 적용하길 바랐다. 하지만 조직문화는 나 혼자 바꾸고 싶다고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문위원실 책상 배치 과정에서 소위 관료조직의 '역린'을 건드린 형국이 됐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다. 내 편인 줄 알았던 의원 중에는 행정직 공무원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가며 일방적으로 나를 훈계하는 분도 계셨다. 사면초가가 따로 없었다. 나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극복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조직의 소소한 불문율을 어긴 일도 있다. 도봉구의회에서 일한 지 1년 몇 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사무국장 L이 나를 찾았다. 서둘러서 사무국장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당시 사무국장은 집행기관의 과장으로 이미 여러 차례 대면했던 터라 익숙했다. 목소리의 톤이 나보다 몇 계단은 높았고 늘 어딘가를 분주히 다녀서 그런지 165센티미터가 안 되는 키에 가냘픈 체형을 가진 여성 공무원이었다. 사무국장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전문위원님, 어떻게 나를 무시하실 수 있으세요?”

“네?”

공이 울리자마자 갑자기 라이트 훅을 맞은 사람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리 의회마인드로 일한다지만 내가 상관을 무시했을 리가 있을까. 내가 그럴 리 없다고 말하자 국장의 구체적인 지적이 이어졌다.

“출장, 조퇴할 때 어떻게 전자결재만 딱 올려놓고 나한텐 말 한마디 없으세요? 그게 나를 무시하는 거지 뭐예요?”


L 국장이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뭘 잘못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으니 내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복무 결재도 없이 무단으로 출장이나 조퇴한 것도 아니고 단지 직접 구두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을 무시했다고 발끈한다고? 이게 그럴 일인가? 나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했다. 공무원 생활을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권익위나 서대문구의회에서 지금과 똑같이 했어도 아무도 뭐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L 국장의 상기된 감정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급기야 난생처음 이상한 말을 듣고 말았다.

“이일우 전문위원은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예요!”


졸지에 나는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당시 L 국장이 말하는 ‘기본’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른다. 조직생활에서 아랫사람의 예의, 처세 뭐 그런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본인은 기본을 잘 알아서 다른 과장들보다 일찍 국장으로 승진했다는 자부심의 표현일까. 한바탕 호통의 따발총을 맞고 만신창이로 국장실을 나오면서도 내 머릿속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우습게도 이 궁금증은 몇 개월 후 내가 서울시의회로 이직하고 나서 풀렸다. 내가 소속된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실은 의안팀과 의사팀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입법조사관들로 구성된 의안팀이 안건 검토를 위주로 한다면 의사팀은 회의시나리오부터 후생복지와 서무업무까지 지원업무를 담당한다. 구의회 전문위원은 결재권도 없고 관리할 직원도 없다. 반면 서울시의회의 상임위 전문위원은 팀장 역할을 맡으면서 결재권이 있다. 시의회 수석전문위원이 상임위의 과장이라면 전문위원은 입법조사관 5∼6명을 이끄는 중간관리자이자 의안팀장의 역할과 책임이 있다. 그래서 팀원인 입법조사관들의 각종 복무 결재를 전문위원이 직접 한다. 구의회 전문위원 7년 동안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다. 업무 시간 중에 수시로 입법조사관이 내 자리로 와서 다음날 휴가를 내겠다거나 오후에 조퇴하고 싶다거나 하는 말을 할 땐 처음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전자결재로 상신하기 전에 미리 결재권자인 내게 직접 구두로 언질을 주고 결재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그들에겐 관행인 것이다. 그렇게 결재권자가 되고 보니 도봉구의회에서 L 사무국장이 대뜸 화를 냈던 일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전자결재와 별개로 미리 구두 보고하는 것이 규정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랫사람이 따로 와서 미리 말해주는 것이 기분 나쁜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결재권자들은 그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결국 도봉구의회에서 나는 성문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불문율을 눈치없이 어긴 셈이었다. 처음 구의회로 이직했을 때만 해도 의회 전문위원이라면 집행기관 직원들은 물론이고 의회사무국의 행정직 공무원들과도 가깝게 지내면 큰일이라도 날 것만 같았다. 당시는 의회의 인사권이 지금처럼 독립되기 전이었고 의회사무국이 구청의 산하 조직인 것처럼 여기던 때여서 의회마인드를 중시한 나로선 더 예민했는지도 모른다. 구청에서 발령받은 사무국장과 식사라도 한다면 마치 내가 그러지 말아야 할 사람과 야합이라도 하는 것 마냥 찝찝했다. 특별한 용무가 없다면 가급적 사무국장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권익위와 서대문구의회에서 하던 대로 출장, 휴가 등의 복무도 더욱더 온라인 결재를 위주로 받았다. L 사무국장과의 일은 그렇게 조직의 관행 또는 상관의 마음을 모르고 벌어진 오해였고 해프닝이었다. 이제는 나도 전자결재의 상신 전에 구두로 먼저 보고한다. 막상 해보니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다 덜 사무적인 것 같아서 좋다. 아무튼 기본을 강조하며 승승장구하던 L 국장은 3선의 구청장 임기 후 퇴직하더니, 다른 정당의 구청장이 취임하고 정책실장으로 컴백하여 후배, 동료 공무원들을 놀라게 했다.

『주역의 눈』의 저자 이선경은 『주역』을 공부하는 목적이 “지금 이 시간과 공간에서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잘 아끼고 사랑하는 힘을 기르는 게 ‘역의 사유’이자 『주역』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건강상 이유로 뜻하지 않게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셀프 안식년’ 소위 백수 세월을 보내면서 이 『주역』의 관점에서 임기제 전문위원 생활을 진지하게 돌아볼 기회가 많았다. 또한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과 생각을 같이하지는 않지만 이들과 화목할 수 있는 군자의 세계를, 밖으로는 같은 생각을 가진 것처럼 보이나 실은 화목하지 못하는 소인의 세계와 대비시켜 군자의 철학을 인간이 추구해야 할 덕목이라고 공자는 주장했다. 물론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쉽지 않은 경지이다. 단순히 좋은 게 좋다는 식의 현실 타협이나 기회주의는 더더욱 아니다. ‘부드러운 직선’처럼 형용모순으로 들리지만 그만큼 내적으로 높은 경지가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늘공을 인간적으로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지방의회가 무시당하고 외면받는 것이 어디 공무원들만의 잘못이겠는가. 원내 의정활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공천한 전·현직 국회의원과 정당의 공천시스템에 가장 큰 책임이 있지 않은가.

2024년 여름 어느 날, 집 근처 횡단보도를 건너다 도로 건너편에 서 있던 S 국장과 우연히 마주쳤다. 전문위원실 좌석배치 소동 이후 내가 2020년 6월 00구의회를 떠나고 나서 처음 봤지만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그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국장님. 저 이일우 전문위원입니다.’ 그는 내 얼굴을 1∼2초쯤 보다가 웃는 낯으로 인사했다. ‘아, 예……’ 예전보다 조금 야위어 보이는 그와 짧게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았다. 1년 전쯤 퇴직했고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걸어 다니다 보니 살이 많이 빠졌다고 했다. 나는 뻔한 얘기 말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감정을 툭 하고 꺼내놓고 싶었다. ‘저, 국장님. 그때 죄송했습니다. 전문위원실 좌석배치 건이요. 제가 좀 서툴렀어요.’ 그러자 그는 정색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뭘 그런 걸 가지고. 다 이해합니다. 그땐 어쩔 수 없었죠…….’ 채 10분도 안 되는 순간이었고 우연한 길거리 만남이었지만 난 S 국장에게 지난날의 무례를 진심으로 사과했다.


요즘은 '늘공(늘 공무원, 직업 공무원)'과 '어공(어쩌다 공무원, 임기제 공무원)'의 이분법을 경계한다. 동료를 이해하는 데 참고는 될지 몰라도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중이 작긴 하지만 늘공 중에도 승진과 무관하게 직업적 본분에 충실하려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어공 중에도 영향력이 있는 의원이나 간부 공무원만 챙기며 사내 정치(社內 政治)에 열중하는 비전문가도 적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간혹 행정실무 경험도 없는 어공 전문위원이 집행기관의 업무를 알면 얼마나 알겠냐는 식의 뒷담화를 들으면 반문한다. 꼭 경찰이 살인을 저질러봐야 살인사건 수사를 잘하냐고. 사람의 내면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늘공이냐 어공이냐 하는 것만으로 상대를 규정할 수는 없다. 기회든 불운이든 모두 사람을 통해서 온다. 결핍투성이 개인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는 이유이리라. 2015년 최규석 작가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송곳>에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사람들은 (보통)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내가 만일 새로운 조직에서 일한다면 꼭 기억하고 싶은 말이었다. 이젠 옳다고 믿는 일을 화이부동(和而不同) 하면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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