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한 핑계
한 살 더 먹었다고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안 나던 곳도 발견되고 있다. 아차싶었다.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산다고 말했지만, 뇌출혈 이후를 돌아봤을 때 진짜 그러했는가.
머리를 말리는데 옆머리 쪽에 흰머리 길쭉한게 보인다.
정수리 쪽에 몇 개 보인지는 꽤 되었는데 이쪽은 못 보던 거다. 아까 낮에도 회사 동료가 여기 흰머리 있다며 잘라줬는데.. 며칠 전에는 선배가 내 정수리를 보고 머리가 갑자기 왜이렇게 세었냐며 놀랐는데..
그러니까, 스물일곱에 쓰러졌는데 올해로 서른넷이다.
병원 퇴원하고 복직한 무렵부터 내 신조는 오늘만 열심히 살자였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몸상태도 얼만큼 좋아질지 모르잖아. 기대도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기대하면 실망하니까, 계획하면 못 지키니까.
그렇게 3년이 더 흘러 발병한 지도 6년이 넘었다.
오늘만 산다는 말로 보기 좋게 포장했지만, 직면하기 두려워 외면해 왔음을, 사실은 귀찮아서 미뤄온 것임을 인정해야 했다.
이런건 오늘만 사는게 아니잖아. 알고 있잖아. 그냥 생각하기 힘들어 도망친 거잖아. 현재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 보기 좋게 들리니까. 언젠가는 다 눈뜨고 직면할 수밖에 없는 '내 문제'인데.
나에게 닥친 문제는 재활만이 아닌데, 그런 것들도 다 부딪히며 사는 게 오늘을 사는 것일 텐데. 그러면서도 온전하게 일상을 즐기는 게 오늘을 사는 건데.
흰머리를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재활을 1순위로 두는 것이 오늘을 사는 건 아니야. 이제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어. 병행해야해. 즐기는 것도, 골치 아픈 문제를 직면하는 것도.
...오늘은 일단 잘까..
아니나 다를까 미루기 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