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찾아온 '장애'와 함께한다는 건

"남들 하는 건 다하고 싶어.", 평범함을 꿈꿨다는 욕심쟁이

by 안네


내 어릴 적 이상은 평범한 삶이었다.

평범함에 넉넉함을 조금 가미한, 남들 하는 것 정도는 하면서 사는 삶.

그래서 부단히 노력했다. 내 기준에 학비가 부담되어 진로를 바꾸는 건 평범하지 않았으므로.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매 학기 장학금을 탔다. 그 덕분에 성적이 좋았고, 남들이 부러워한다는 대기업에 취직도 비교적 수월했다.


평범함을 꿈꾼다는 말로 점잖은 척했지만, 실은 그냥 남들 하는 건 다 해보고 싶은, 뒤쳐지고 싶지 않았던 욕심쟁이였는지 모른다.


회사에서는 나름 인정받고 있었고, 경제적 여유도 생겼다. 이만하면 내가 꿈꾸던 삶에 안착한 듯싶었다.

나의 노력들이 모이고 적절한 운때가 맞아, 언젠가부터 내 인생은 평범했고 때로는 '특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오만하게도.


중학교 가정시간이었나, '나의 인생곡선 그리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철없는 내가 20여 년 전에 그렸던 인생곡선은 작은 굴곡들을 무시하면 끊임없이 우상향하고 있었다. 그 어느 시점에도 '장애'는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미래의 어느 순간에도 나는 주인공이었다.




2018월 11월 27일. 갑작스런 동정맥기형 파열로 인한 뇌출혈, 그리고 오른손잡이에게 오른쪽 편마비로 나타난 뇌병변 장애. 그 이후로 7년.



재활병원에 2년 넘게 입원해 있으면서, 때때로 그런 생각을 했다. 6인실 병상 다닥다닥 붙은 병실. 침대 옆에 딸려 있는 간이침상. 침대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의자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누우면 여유 공간도 없어 몸을 뒤척이는 것도 쉽지 않은 그곳에서 번갈아가며 매일같이 잠을 청했던 가족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그들일 것 같았다.


뇌출혈과 함께 오랜 우울증이 동반되었다.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울었다.

'왜 울어. 울지 마.' 위로에도 눈물은 하염없었다. 우울증 약을 안 먹어보려고 부정해 봤지만, 끝내는 약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눈물이 멎지는 않았다. 이유 없는 우울감은 약이 고쳐줬지만, 이유있는 슬픔은 약도 소용없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걸까. 나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한테.'

나는 이 변화에도 아무렇지 않게 의연할 수 없었다. 억울함이었다.

이런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은 휠체어를 떼고 혼자 걸어 다니기 시작할 무렵이던가, 복직을 하고 인생을 제법 다시 꾸려나가기 시작해서인가, 아니면 더 이상 비관하는 게 신물나서인가.



당시에 동공이 열렸을 정도로 출혈이 컸는데 죽지도 않았고, 말도 하고, 인지능력도 멀쩡하고, 외형적인 변형도 거의 없다. 직장을 잃지도 않았고, 그 덕에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막막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된건가? 회사 구내식당에서 식판도 내가 못드는데? 매끼, 매사, 도움줄 사람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재활도 어느덧 7년 여. 더한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 몇 년이면 되는걸까? 되기는 하는걸까? 보장도, 기약도 없다.

이젠 이런 생각이 들어도 크게 감정의 동요도 없다. 기대하면 필히 실망하니까. 기대를 없애버렸다. 순간순간 눈앞에 놓인 '어제보다 나아짐'에 집중할 뿐.


그렇게 스물일곱에 멈추었던 나의 인생시계는 다시 돌아가고 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얻은 것도 많이 생겼다. 등가교환같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불행이 불행이듯, 다행은 다행일 뿐이었다.




내게 일어난 일들이 꿈이 아님을 실감할 무렵부터 일기를 써왔다. 갈 곳 잃은 분노와 원망을 일기에 쏟아냈다. 처음에는 감정 쓰레기통이었으나, 재활과 회복의 기록이었고, 어느 장애인의 감정 변화의 기록이 되었다. 신체적 자유를 잃었으나, 잃은 만큼 사색했다.

그리고 그 일기가 나를 브런치 작가가 되게 해주었다. 이 공간 안에서 만큼은 내가 완전히 주인공이다. 수많은 작가님들 사이에서 완전하게 평범하다.



나는 여전히 뒤뚱뒤뚱 위태롭게 걷고, 오른손은 쓰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병 후에 내가 다시 쌓아온 것들이 소중해서, 다른 건강한 몸의 인생과 바꾸고 싶냐고 물어도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내 인생은 다시 평범해졌고 때로는 '특별'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