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어공주 속 마녀 이야기

인어공주의 빌런, 마녀의 속사정_브런치X저작권위원회

by 재은

깊은 바다 속, 인어 나라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오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어린 인어야, 어린 인어야,

바다 위는 위험하단다.

일렁이는 빛을 따라가다보면, 넌 물거품이 되겠지.


저는 그 노래를 처음 부른 존재를 만났었습니다. 그 존재는 마녀였습니다.

마녀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저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마녀에게로 헤엄쳐갔습니다.


“이 노래를 왜 마녀님이 불러요?”

“내가 만든 노래니, 내가 부르지.”

“노래를 정말 잘 부르시네요! 들었던 거랑은 달라요!”


마녀는 눈을 움찔하고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어요. 약간은 허탈한 듯, 바람 빠진 코웃음을 쳤습니다.


“아가, 내가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게 된 이유를 알려줄까?”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녀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어요.




나는 어릴 적부터 듣기 좋지 않은 목소리를 지녔었어.

쇠를 긁는 것만 같은 목소리는 날 다른 인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만들었지.

인사만 하면 다른 인어들은 날 마치 괴물 보듯 쳐다봤고,

난 인어들을 피해 홀로 있게 되었어. 난 목소리를 바꾸고 싶어서 마법을 공부했지.

여러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나쁘지 않은 목소리를 갖는 걸 성공했어.

그래도 여전히 인어들은 날 꺼려하더라고.


어느 날인가 난 늘 가던 길을 지나치다가 노랫소리를 들었어.

맑고 청아한 목소리였지.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다가갔어. 그곳에는 막내 인어공주가 있었어.

멍하니 그 아이를 바라봤지. 그 아이의 목소리는 정말 아름다웠어.

그 후로 난 막내 인어공주와 우연히 마주치기를 바랐어. 가끔은 왕국 파티에 몰래 들어가 인어공주의

노래를 듣기도 했지.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


그러던 어느 날, 인어공주가 날 찾아왔어.

눈을 반짝이며 날 찾아온 공주는 바다 위 육지를 걷고 싶다고 말했어. 순간 나는 얼어 붙어버리고 말았지.

심장이 막 쿵쿵거렸어.

‘이 아이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났어.

난 한참을 고민했지. 그리고 생각했어.


아, 공주의 목소리를 대가로 가지면 영원히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겠구나.


난 공주에게 다리를 줄 테니 대신 목소리를 달라고 했어. 공주는 잠깐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어.

거래 성립이었지. 난 공주의 목소리를 갖고, 공주는 육지로 올라갔어. 모두가 행복해진 거지.


근데, 난 행복하지 않았어. 공주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심장이 뛰거나 즐겁지가 않았어.

그래. 그 아이가 자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듣는 게 나의 행복이었던 거야.

그걸 깨달은 난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어. 공주가 물거품이 될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으니 말이야. 그리고 그 아이의 언니들이 공주를 찾아다닌다는 소식이 내 귀에 닿았어.


난 그 언니들을 불렀어. 공주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제안을 했지.

너희들의 머리카락을 주면 막내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노라고.

공주의 언니들은 망설임 없이 머리카락을 잘라서 나에게 주었어. 난 그것으로 칼을 만들었지.


공주의 언니들은 육지에 있는 막내 인어공주를 찾아갔어. 난 공주의 언니들을 몰래 쫓아갔지.

공주의 언니들은 칼로 왕자를 찔러 죽이라고 말하며 막내 공주에게 칼을 건네주었어.

언니들이 다시 바닷속으로 돌아가고, 난 바다 위에서 막내 공주를 지켜봤어.

그 아이는 계속해서 망설이다가

결국, 칼을 바다로 던져버렸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 공주는 물거품이 되었지.




마녀는 그걸 끝으로 입을 떼지 않았어요. 마녀는 울고 있었어요.

저는 마녀에게 말을 더 걸지 못하고 그저 힐끔힐끔 마녀를 훔쳐봤어요.

마녀는 눈물을 닦아내고는 저를 쫓아냈습니다. 저는 그 뒤로 다시 마녀님을 보지 못했어요.

전에 만났던 곳을 가도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어디선가 계속해서 인어공주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요?


어린 인어야, 어린 인어야,

바다 위는 위험하단다.

일렁이는 빛을 따라가다보면, 넌 물거품이 되겠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검은 사제들>과 <사바하> 속 선악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