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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Mar 10. 2023

인어아저씨

nonfiction

 오래 전 고3 여름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입시 준비가 지긋지긋했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 내 주변의 모든 입시생들이 그랬다. 어느날 친구 하나가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을 했다. 나와 몇몇 친구들이 문병을 갔다. 야간 자율학습 도중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온 친구 앞에서 우리 모두는 신이 나 있었다. 우정. 야자 땡땡이, 일상의 균열, 죽을리없는 친구.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통증이 가시고 빠른 속도로 회복중인 환자 녀석은 불치병 환자나 시한부 인생 흉내를 내며 우리에게 말했다.


“나 바다 보고 싶어.”


 그 말이 근사하게 들린 우리는 주저없이 환자를 병원에서 빼돌려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그렇게 다섯 명이서 강릉으로 달려갔다. 도착은 했지만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가진 돈을 모아 어묵과 컵라면을 사먹었고 경포대 모래사장에서 불꽃놀이를 했다. 남은 시간은 해수욕장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 밤바다와 피서객들을 구경했다.

 새벽이 됐고 우리는 첫차를 타고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난 이대로 돌아가기가 억울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작별을 하고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혼자 있으나 친구들과 함께 있으나 딱히 할 일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대신 마음껏 생각할 수 있었다. 입시생이란 굴레를 잠시 던져버리고 평소에 안하던 생각들을 했다. 오른쪽으로 끝없이 펼쳐친 바다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에 너무 좋은 배경이었다.

 사람들이 바다 바다 하는 건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바다가 아니라 그저 바닷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잡아도 바닷가에 서서 바라보는 수평선까지. 딱 그만큼의 범위 안에서 낭만을 즐기고 시도 쓰고 힐링도 하는 것이리라. 그것을 넘어가면 아마도 인간은 감당을 못할 것이다. 생명의 기원, 인류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 혹자는 우리가 우주보다도 바다를 모른다는데 에이, 설마 바다를 우주보다 모르겠어? 크기 차이가 있는데. 그런데 우린 사람 마음도 잘 모르잖아. 사람은 각자 안에 우주를 품고 있다는데 그럼 관계가 어떻게 되는거지? 우주. 사람 마음. 그리고 바다.

 강릉에서 주문진 지나 양양 방면으로 걸으면서 두서없이 계속 생각을 했다. 바다. 태풍. 포세이돈. 심청이. 인당수. 용궁. 근데 용궁이 정말 있을수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미지의 세계니 까. 그럼 인어 공주는 공주니까 용왕의 딸이겠지? 근데 인어는 돌연변이가 아닌 이상 엄마 아빠가 있을 거고 남자 인어도 있지 않을까?

 정확히 그 생각을 하던 시점은 아니었다. 해변의 커다란 검은 바위 위에 작은 바위가 올려져 있었다. 무심히 지나치는데 올려진 바위가 꿈틀 움직였다. 놀란 나는 걸음을 멈췄다. 자세히 보니 바위가 아니라 사람 크기의 동물이었다. 온통 검은색이고 물에 젖은 꼬리 지느러미가 있었다.

 20년도 안 살았지만 한국에 저런 동물이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약간의 공포도 있었지만 난 확인차 다가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바다를 향해 앉아 있던 그 동물은 인기척이 느껴지자 뒤를 돌아봤고 난 실소가 터졌다. 사람이었다. 나보다 열 몇 살 많아보이는 30대 아저씨. 스쿠버용 검정색 스킨을 입고 있었고 하필 물갈퀴 달린 다리를 가지런히 뒤로 뺀 채 뒤돌아 앉아있는 바람에 영락없이 하체 지느러미로 보였던 것이다. 그의 앞에는 은박접시 위에 올려진 종류를 알 수 없는 조개와 소주병과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안 좋은 일이 있었어. 그래서 잊는 중이야. 난 나쁜 일 겪을 때마다 바다에 오거든.”


뭐하고 계시냐는 내 물음에 그가 한 대답이었다.


“그럼 잊혀지나요?”


“설마 잊혀지겠어. 핑계대고 오는 거지.”


“직접 잡으신 건가요?”


“응. 같이 먹을까?”


 난 아저씨가 썰어준 조개와 소주 한 잔을 얻어먹었다.


“난 바다가 참 좋아. 이렇게 맛있는 것도 나눠주고. 학생은 혼자 왔어?”


“예.”


“뭐하러?”


“그냥요.”


“그냥 오는 사람도 받아주지. 바다는 그런 거야.”


“받아줄 뿐이지 뭘 해결해주는 건 없네요?”


“해결은 본인이 해야지. 바다가 무슨 해결사도 아니고.”


 그러면서 그는 웃었다. 난 아저씨와 헤어진 뒤 양양 속초 지나 고성까지 걸었다. 그러면서 짧았던 아저씨와의 대화를 내내 곱씹었다. 이제 미지의 바다를 어쩔 것인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마다 마음 속에 자신만의 바다가 있다. 이 단순한 진리를 아저씨가 깨우쳐줬다. 특히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뻔한 말도 좋았다. 간성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너에게 바다란 무엇이냐고 자문을 했고 <인어아저씨가 있는 곳>이라 자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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