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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Mar 15. 2023

진흥왕 순수비

에세이 

초등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인가는 확실치 않다. 신라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차지했고 그걸 기념하기 위해 북한산 꼭대기에다 비석을 세웠다고 배웠다. 비석 이름이 ‘진흥왕 순수비’라는 것도 배웠다. 별 감흥 없었다. 

 그로부터 십 몇 년 후에 우연히 북한산 비봉에 올랐다. 그저 등산이었다. 그런데 꼭대기에 거대한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푯말을 보니 그게 진흥왕 순수비였다. 하지만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진짜 비석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고 씌어 있었다. 그러니까 신라시대 때 여기에 비석이 세워졌고, 나중에 그걸 떼어다가 박물관에 갖다놨고, 대신 여기에 모조품을 세워놨구나. 천년도 훨씬 더 전에 신라인들이 바로 이 자리에 비석을 세웠구나.. 정도의 감흥이 있었다. 

 다시 그로부터 십 몇 년 후에 국립중앙박물관을 구경가게 됐다. 지어진 지 얼마 안되는 웅장한 건물을 보는 것 외에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자기 것을 지키지도 남의 것을 빼앗아오지도 못한 우리 나라 문화재 자산의 빈약함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박물관 정문으로 들어서면서 퍼뜩 진흥왕 순수비가 머리를 스쳤다. 맞다. 그걸 이제야 비로소 볼 수 있겠구나. 그 오래된 진품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보기 전부터 큰 감흥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5분 후에 문제의 비석을 마주했다.      

 사전 감흥이 실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경이로웠다. 비석이 만들어진 게 서기 555년이니까 무려 1500년 전 인간의 흔적이 이 땅에 남아 있다는 게 기적 같았다. 비석의 앞면에 음각으로 새겨진 흐릿한 글씨들. 세월의 힘이란 바로 저런 것이구나. 돌에 새긴 글씨도 흐릿하게 만드는, 수 년 수십 년으론 엄두를 못 내는 힘. 내용은 진흥왕이 얼마나 위대했고 그를 도운 신하들은 누구누구가 있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비석의 측면을 봤다. 얼마 전에 새긴 듯한 선명한 글씨가 있었다. 앞면과 확연히 달랐다. 이건 뭐지 싶어 설명을 보니, 추사 김정희가 19세기에 비석을 판독해서 그것이 진흥왕 순수비라는 것을 밝혀냈다는 내용이다. 추사 김정희면 역사적으로도 유명인사고 당시에도 분명히 어떤 권위자였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뭔가 뚱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비석이 세워진 게 555년이고 김정희가 그걸 해독한 게 1812년이니 그때 기준으로 무려 1257년 전 유물을 정확히 밝혀낸 건 훌륭하다. 당시의 고고학 기술이 아니라 김정희 개인의 쾌거였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가 그걸 해냈다는 걸 꼭 1257년 된 유물에다가 굳이 새겨넣었어야 했나? 종이 많잖아. 그리고 요즘 시대에 산속의 바위에다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빨간 글자를 파 넣는다고 그게 수백년 후에 지금의 민간 신앙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게 아니잖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흥분한 척 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부당하다는 인식은 확고하지만 그게 감정적 분노로 가는 길은 끊겨 있다. 시간이란 존재의 무책임한 치유력, 면죄의 마술을 경험한다. 아무리 치열했던 역사도 훗날의 시선으론 그저 스토리에 불과한 셈. 내가 지금 바리케이트를 뚫고 들어가 경비원에게 붙들리기 직전까지 비석에다 드릴로 내 이름을 새긴다 해도 아마 먼 후손들은 기꺼이 날 용서할 것이다.      


 진흥왕 순수비로부터 몸을 돌리니 로봇이 날 보고 있었다. 박물관에 오신 걸 환영하며 안내가 필요하면 말씀하시라고 하길래 안내 필요없다고 조그맣게 속삭여줬다. 로봇은 대답없이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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