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피 Apr 08. 2024

수많은 에밀리들

I love my job, l love my job

요즘 내 감정은 너무나 요란하다.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 중 나를 제일 샘나게 하는 것은 본업을 잘 하는 사람들이다. 요즘 이 생각에 하도 사로잡혀 있다보니 그런 사람들을 비추는 영화마저 피하고있다.


그러던 중 지난 금요일 밤 가볍게 틀었던 영화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였다.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영화, 그 속에서 내가 몰입한 캐릭터는 주인공 앤디가 아니었다. 오래된 비서 에밀리였다. 업계 1위의 상사를 둔 에밀리는 칭찬 한마디, 인정하는 리액션을 한 개라도 더 받기 위해 매일 매일을 고군분투한다.



영화의 결말은 모두 알다시피 에밀리에게 잔인한 구석이 있다. 오랜 기간 그 무자비한 상사를 견뎌왔으나 굴러온 돌처럼 등장한 앤디에게 자리를 빼앗겨버리고 만다. 보는 내내 마음이 따끔따끔했던 것은 아마도 나 역시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기보단 뒤로 밀려난 경험이 더 익숙해서일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영화 후반부, 에밀리가 자기최면을 걸듯 ‘I love my job, l love my job’ 되뇌는 순간은 가볍게 보기 힘들다. 마치 좀처럼 잘 할 수 없는 일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마냥 떼쓰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런 그녀가 애틋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자리를 향한 열정이 남다르기 때문. 그토록 원했던 자리를 얻어내기 위해 강제로 밀려나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감수하는 그녀다. 담보된 것은 아니니 또 밀려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임에도 굳건한 그녀의 태도는 응원 안 하기가 어렵다. 고백하자면 그것은 나를 변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미 그녀에게 나를 투영함으로써 본인을 위로하고 있으니까.


물론 단기간 한 분야의 높은 자리를 얻어내는 앤디 역시 훌륭하다. 그 역시 재능과 운 만으로는 일궈내기 힘들다. 허나 영화의 결말을 고려한다면, 앤디 또한 그 자리가 제일 갖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진정한 결실을 위해 그 자리를 포기하는 모습은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두 번째 이유다.



그렇기에 수십 번 돌려보게 된다. 이들의 여정은 넷플릭스에서 편히 찾아볼 수 있으나 이외에도 거울 속 우리네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92년 양띠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