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맣게 타버린 토스트
이 글은 2020년 뉴욕에 살던 제가 코로나에 걸린 후 한국으로 간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2020년 3월, 뉴욕에서 절망같던 나의 하루는 지독히도 평범하게 시작했다. 뉴욕시 부르클린 베드스타이 3층 짜리 브라운스톤 아파트 꼭대기 층에 친구와 살던 나는, 피곤한 눈에 햇빛이 비추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직 잠들어 있는 두 다리와 반쯤 감겨 있는 눈을 힘겹게 부등켜 앉고 거실로 향한 나는, 매일 아침 나의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 커피머신으로 나의 첫 음료를 내리기 시작하고 한 조각의 빵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최근 즐겨먹는 아침은 Egg-in-a-hole, 간단하게 식빵 가운데 동그라미 조각을 오려내고 그 공간에 계란을 넣어 후라이펜에 요리한 간단한 음식이다. 빵이 천천히 타닥 거리며 구워지는 소리와 커피머신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가 방을 가득 채우는걸 들어가며, 나는 창문 바깥을 바라보았다.
중국에서 올해 초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고 전세계가 패닉상테에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 무심코 킨 TV에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출연하여 이 상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토론을 하고 있었다. 스위스에 본부가 있는 국제보건 기구에 일하던 나의 생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동아프리카, 스위스, 동남아시아, 그리고 남아메리카에 있는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 일을 주로 하던 나는 재택근무에 익숙해져 있었고, 오히려 월가 쪽에 있는 뉴욕 오피스에 시끄러운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아침 9시 부터 끊임없이 지속될 온라인 미팅들을 생각하며 멍을 때리던 나는,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공중을 스르륵 이동하는 그림자는 연기의 형태를 갖고 있었고, 천천히 연기의 꼬리를 따라갔더니 방금 후라이펜에 놓은 토스트가 까맣게 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나는, 몇분동안 얼어붙은채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깨달음을 얻고 마침내 가스를 끄고 토스트를 쓰레기 통에 버렸다. 창문을 열어 연기를 내보내고, 나는 냉장고를 열어 라임 주스, 핫소스, 마요네즈 등 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것을 꺼내 내 코앞에 놓아 보았다.
내가 후각을 상실했던 것이다.
패닉에 빠진 나는 핸드폰을 열어 코로나19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고 시작했고, 이윽고 COVID-19 환자들에게 보고된 냄새 상실인 전체/부분적 냄새 상실인 는에 대한 여러 기사가 나타났다. 방에 어둡게 연기가 가득 찼던 나의 거실에서 불신과 웃음이 울려 퍼졌다. 생각해보니, 나의 룸메이트 데빈은 일주일 전 쯔음에 열이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바이러스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나눴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의 투베드 아파트에서 머무르고 밖으로 나갈 때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그건 단순한 감기일 거라고 확신했다. 빠르게 뛰는 내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나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 온라인 미팅에 참석했다.
점심시간에 일을 마치고 숨을 돌린 나는, 동료의 제안을 받아 나는 COVID-19 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 확인 하기 위해서 원격진료를 예약했다. 불행하게도, 의사를 통해 내가 받은 정보는 세계 보건 기구나 언론에서 읽은 지침과 다르지 않았다. 핸드폰 화면속으로 지쳐보이는 의사는 내가 발열, 호흡 곤란, 피로감 및 질병과 관련된 모든 다른 증상이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내가 후각을 상실한 것을 알면서도 코로나 검사는 불가능 하다고 말했다. 이 당시만 해도, 뉴욕에는 코로나 검사 키트는 구하고 힘든 상황이었고, 그나마 있는 제고는 중증 환자들에게만 제공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력함을 느낀 나는 원격진료를 마치면서 힘없이 천장을 올려보았다. 심각한 증상은 없었지만, 나는 2주 후에 친형의 결혼식에 참려하러 한국에 갈 비행기표를 끊어 놓은 상태였다.
며칠이 지나가면서 나는 일어나서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의 대부분을 온라인으로 해결책이나 치료법을 찾아가며 보냈다. 뉴욕에서 코로나 검사 받을 방법을 찾아보면서 바삭하게 튀긴 요리, 달달한 쿠키,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자극적인 음식들을 입에 끊임없이 집어 넣으며 맛을 느낄수 있는지 확인 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효과가 없었다. 복잡한 심경에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뉴스에 따르면 대부분의 경우 1~2주안에 코로나 증상이 사라지고, 대부분 문제 없이 회복한다는 얘기를 믿으며 한국여행 계획을 계속 하였다. 도착하면 어떻게 입국처리를 해야 되고 자가격리를 해야 할지 매일 부모님과 논의하면서 머리 속에는 질문들이 돌았다. 그들은 공항에서 나를 데리러 오는 차에 앞과 뒤에 플라스틱 방패를 놓을 준비를 시작했다. 심지어는, 아파트안에서 직접적인 접촉을 피할 수 있도록 동선을 준비하고 모든것을 철저히 계획했다. 한켠으로는 내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독감에 걸린건가? 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했지만, 내 마음 한켠에는 내가 혹시라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한국에 퍼뜨리고 부모님을 감염시킬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맴돌았다.
한국에 가는 비행기를 타기 며칠 전,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에 입국하든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의무적인 코로나 검사를 발표했다. 다행히도, 한국의 코로나 감염 환자들은 하루 10명을 넘지를 않았고, 이 낮은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서 더 방역체제를 강화하기로 한것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던지 몰랐던 나는, 드디어 검사를 받고 입국을 할수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편안해지고, 검사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두가지 시나리오가 있다는걸 깨달았다:
1. 음성 판정을 받고, 14일 동안 부모님이 지내시는 아파트에서 14일동안 자가격리 후 일상 생활 복귀
2. 양성 판정을 받고, 음성으로 재검사를 받을 때까지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생활치료센터에서 머물기
처음으로 증상이 발현하고 14일이 넘는 시간이 지낸걸 고려하면, 나의 후각과 미각이 돌아오지 않았더라도 음성이 나올것이라 생각했고, 혹시나 양성이 나오더라도 생활치료센터에서 몇일 시간을 보내면 빠르게 회복을 하고 퇴원하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형의 결혼식에 가서 축하해주고 가족과 함께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기에, 긴장과 희망이 섞인 마음으로 나는 4월 2일 목요일에 JFK로 향했다.
이 희망적인 마음은 한국에 도착함과 동시에 절망의 쟃빛으로 뒤덮이었고, 나는 47일 여간의 시간동안 작은 방에 갖혀있는 신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