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 12년째, 다시 글을 써보려고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한 나는, 대학교를 미국으로 진학하기 전까지는 인생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생활을 하였다. 초등학교 때에는 아무 걱정 없이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운동장에서 매일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축구를 하며 집에 까진 무릎을 절뚝거리며 돌아갔고, 중학교 때에는 처음 가져보는 핸드폰에 설렘을 느끼며 버디버디와 네이트온을 이용해서 친구들과 사춘기를 공유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외고에 진학하여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딴짓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영어로 공부를 많이 하긴 하였지만 나의 생활은 다른 야자에 지쳐있는 고등학생들과 큰 차이는 없었다.
현재는 스위스에서 일본인 아내와 1년이 아직 안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커가는 자식의 언어, 정체성, 그리고 문화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제네바에 사는 외국인 가족들 중에는 서로 다른 국적 출신의 커플들이 꽤나 많고, 자식에게 2~3가지의 언어를 바꿔가며 사는 집들이 실수 없이 많다. 그중에는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이 포함되고, 자식 관련 이야기를 하며 언어에 대해서 물어보면,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으며 너무나도 빠르게 커가는 아기가 부모의 언어를 배우고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대화를 나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제네바 같은 경우 프랑스어를 쓰는 Swiss-French 지역의 일부이기에 대부분의 스위스 사람들, 그리고 이곳으로 온 많은 외국인들이 프랑스어를 쓸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보육원과 학교에서도 불어를 주로 쓰는데, 우리가 아이를 보내는 보육원도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불어를 주로 쓰신다. 처음으로 보육원에 아기를 보내기 전에 오리엔테이션 비슷하게 선생님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는데,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고 빠른 불어로 나와 아내에게 얘기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거울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내 얼굴은 멍청한 표정을 지고 있음이 뻔했고, 천천히 말해달라고 간절히 불어로 말하던 나의 모습도 우스꽝스러웠을 거다.
다행히도 지금은 생존 불어를 배워서 보육원 한정으로 불어를 할 수는 있지만, 아기가 언제 일어났는지, 밥은 언제 얼마나 먹었는지, 그리고 기저귀는 언제 갈았는지 말할 수 있는 것이 전부다. 공립 보육원에 아기가 들어갈 수 있게 된 게 너무 기쁘고 다행스럽지만 (제네바에서 공립 보육원에 들어가기는 정말로 어렵다), 이 환경에서 계속 자라난다면 나의 아이는 한국어와 일본어는 제쳐두고 봉쥬르부터 말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아이가 한국어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나지만, 나 스스로도 한국어에 대한 자신감은 점점 떨어져 가고 있다. 대학원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는 나에게 '넌 나보다 한국에 오래 살았으면서 왜 외국인 같아?'라고 물어보았고, 새로운 직장을 시작하면서 만나게 된 외국인 동료들은 나를 코리안 아메리칸인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내가 한국말을 하기 시작하고 서산에서 태어나고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낸 토종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납득하지만,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대부분의 시간을 영어와 조금의 불어를 쓰는 나는, 이제 10개월이 된 아들에게 최대한 한국어로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가족같이 3~4가지의 언어를 쓰는 다른 부모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의 경우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자의 언어로 아이들에게 말을 하는 걸 추천을 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혼동을 줄 수 있고 언어를 배우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는 있지만, 이렇게 해야지만 자유롭게 부모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이제는 혼자 땅을 짚고 일어서는 경지에 접어든 나의 아들은 지난주부터 "아바바 아바 아빠!" 그리고 "어머 어머 엄마아"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너무나 귀엽고 신기하였지만 점점 아이가 어떤 방식으로 언어를 배울지에 대해서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나조차도 한국어로 글을 쓰고 편하게 구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데, 어떻게 점점 커가는 아이를 가르친다는 말인가.
이런 식의 걱정을 할 때마다, 계획을 세우고 해결책을 찾는 걸 좋아하는 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없고 불편하면 계속 시도해 보고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영어를 공부할 때처럼, 그리고 프랑스어를 천천히 배울 때처럼,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반복을 하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
커가는 아이를 보며, 나는 한국어로 글을 쓰고 계속 연습을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