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그녀와 헤어지고 돌아와 불 꺼진 자취방에서 혼자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그땐 뭐가 그렇게 슬펐던 건지 잘 모르겠다.
남자와 여자가 눈이 맞아 연인이 되면 언젠가는 헤어지기 마련인데, 왜 그게 그렇게까지 슬펐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도 꽤 억울했었던 것 같다.
내가 먼저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게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그녀가 나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 게, 정말 나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와 헤어지던 날을 기억한다.
자취방 근처의 작은 카페였다.
그녀는 평소에 즐겨 입던, 흰색 바탕에 불규칙한 검정과 보라색 무늬가 들어간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긴 생머리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까지 고작 2~3분 정도였을 텐데, 그 짧은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종업원이 커피를 내려놓고 간 뒤에도 우리는 잠시 커피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건 그녀였다.
“미안해, 선배.”
“……”
“이렇게 헤어질 생각은 아니었는데, 선배가 싫어져서 헤어지는 건 아니야.”
“그럼 왜지?”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생겼어.”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그럼, 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져 버렸다.
깜짝 놀란 듯 종업원이 우리 쪽을 힐끗 쳐다봤지만, 곧 고개를 숙이고 다시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냥, 두 사람을 동시에 계속 만날 수는 없으니까. 선배한테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나 하나로는 부족한 거야?”
“그런 문제가 아니야.”
나는 더 이상 그녀와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몹시 불쾌했고,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언제부터 만났는지, 나보다 뭐가 더 좋았던 건지 따위는 묻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그만 헤어졌으면 좋겠어.”
“후회 안 해?”
“응. 후회해도 어쩔 수 없지 뭐. 다 내 잘못인데.”
그날 내가 커피를 다 마셨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발라드였는지 재즈였는지도 기억에 없다.
우리가 그날 카페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 같이 나갔는지 혼자 나왔는지, 날씨가 어땠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그녀가 울었는지, 울지 않았는지도 이제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나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 같은 거 빨리 잊고, 선배한테 더 어울리는 사람 꼭 만나길 진심으로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