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30분에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창밖은 이미 해가 떠오르려는 듯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최근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간밤의 뉴욕 증시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부엌으로 갔다.
커피 캡슐을 넣고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아메리카노 향이 집 안으로 퍼져 나갔다.
고개를 돌려 베란다 밖을 바라봤다.
사물을 또렷이 식별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간밤에 내린 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버렸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첫눈이었다.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눈이라니…’
오늘은 거래처와의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이라 평소보다 출근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항상 막히는 출근길이지만 오늘따라 정체는 더욱 심했다.
차들은 제 속도를 거의 내지 못한 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루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었고, 라디오에서는 간밤에 내린 기습적인 폭설로 제설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소식과 함께 운전자들의 안전운행을 당부하는 아나운서의 무미건조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갓길에는 사고가 난 차들과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 군데군데 보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네, 좋은 아침입니다.”
“간밤에 눈이 엄청나게 내렸어요.”
“그러네요. 오늘 하루 종일 치우셔야 할 텐데 힘드시겠어요.”
“뭐 괜찮습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나저나 오늘 차가 엄청 막히네요.”
“그러게요. 다들 제시간에 출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평소보다 서두른 덕분에 사무실에는 정시에 도착했다.
팀원들이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눈은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거래처 인원들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 시간을 오후로 미룰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건 그쪽 사정이지 우리 문제가 아니었다.
괜히 나설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건물 아래에서는 꽉 막힌 도로 위의 차들과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듯 종종걸음으로 출근하는 사람들로 어수선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제 곧 연말인데, 이번 인사이동에 지방으로 발령이 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됐다.
하지만 내가 걱정한다고 결과가 달라질 리는 없었다.
그냥 운에 맡기기로 했다.
‘가라는 데로 가야지, 별수 있나.’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쯤 지나서야 회의가 시작됐다.
거래처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요구했고, 우리가 제시한 가격이 국내 최저가라는 설명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동안 준비한 제품의 우수성과 시장 전망에 대해서는 들으려 하지 않고, 오직 가격만 낮추겠다는 태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며칠씩 야근하며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어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양쪽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회의는 한 시간 반을 넘겼고, 나는 잠시 휴식을 제안했다.
“오늘 좀 심한 거 같은데, 살살 좀 해.”
“너도 알잖아. 우리도 상황이 썩 좋지 않아.”
“알지. 그러니까 하는 말이잖아. 이런 식이면 결론이 안 난다고.”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거래처 대표로 온 대학교 동창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나저나 어떻게 지냈냐?”
“나야 뭐, 그날이 그날이지.”
“제수씨 건강은 좀 어떠셔?”
“항암이랑 방사선치료까지는 다 끝났는데, 경과가 안 좋아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어.”
“올해로 몇 년째지?”
“이맘때 발견했으니까 만으로 네 해쯤 됐네.”
“벌써 그렇게 됐구나. 고생 많다.”
“고생은 무슨. 집사람이 고생이지. 나는 괜찮아.”
“그래도 긴 병에 장사 없다더니, 너도 많이 야윈 것 같다.”
“그렇게 걱정되면 적당히 마무리하고 그만 좀 끝내자.”
“얘기가 왜 또 그렇게 가냐.”
거래처가 제시한 가격에서 마진율을 고려해 15퍼센트 증액한 조건으로, 내년 1월부터 5년간 납품하기로 합의하면서 회의는 두 시간 반 만에 끝났다.
거래처 사람들이 돌아간 뒤 팀원들과 사무실에서 늦은 점심을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다 식어버린 도시락을 급히 먹어서인지 명치 쪽이 꽉 막힌 듯 답답함이 밀려왔다.
요즘 부쩍 소화도 잘되지 않고 가슴이 답답해, 시간을 내서라도 조만간 건강검진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까지 쓰러지면 정말 큰일이었다.
아내는 밝고 쾌활한 사람이었다.
운동도 좋아했고 가족의 건강을 위해 식습관에도 신경을 쓰던 사람이었다.
4년 전, 며칠 동안 소화가 되지 않는다며 병원에 갔다가 위암 진단을 받았다.
급하게 위절제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암세포가 다시 발견됐고, 주변 장기로 전이됐다.
최근에서야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마쳤지만 경과는 더 나빠졌고, 주치의의 권유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상태다.
퇴근 후 병원에 들러 아내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늘 울었다.
이제는 더는 나올 눈물도 없을 것 같은데, 오늘도 어김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