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담을 미실시 하셨습니다. 상담 현황이 팀평가에 반영됨으로 오늘 오후 6시까지 건강관리실에서 상담을 완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문자를 오전 10시에 보냈다.
이후 11시에 노조 지부장이 건강관리실을 방문했다. 최대한 부드러운 표현을 쓰려고 애쓰는 듯했으나 다분히 항의성 방문이었다. 내용인즉슨 상담 현황이 평가에 들어가는 것이었으면 미리미리 직원들을 불러서 상담을 할 것이지 왜 하루 남은 오늘에 와서 이렇게 급하게 직원들을 부르느냐 열받게! 였다.
해당 팀 직원들이 아마도 단체로 노조 사무실에 방문해 열변을 토한 모양이었다.
[아니, 간호사 오늘 일정이 있는 사람도 있는데 당장 오늘까지 오라고 하면 되나! 미리미리 얘기를 해야지! 응?]
[지부장님 저는 작년 6월에 검진하고 7월에 검진 결과 나오면서부터 직원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래도 안 오셔서 일일이 직원들에게 전화했는데 전화도 받지 않으셨고요. 그것도 안돼서 각 팀 계장님과 과장님께 상담대상자 명단 모두 통보하고 방문 독려도 했습니다. 그리고, 팀 평가에 들어가는 사항은 각 팀에서 챙기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제가 오늘까지 오시라고 이야기한 것도 제 입장에선 각 팀에 굉장한 배려를 한 행동으로 생각되는데 아닌가요?]
[아. 간호사가 전에도 계속 연락을 했는데 직원들이 안 왔구나. 아.. 과장, 계장한테도 통보를 했구나...]
차분하게 따박따박 쏘아붙이자 지부장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눈치를 살피며 상황파악을 다시 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때 상담해야 할 대상자가 건강관리실로 들어섰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생기면 먼저 나서서 이야기할 사람들로 구성된 반장, 연장자, 노조 간부들이었다. 그때 건강관리실 전화기가 울렸다.
팀 서무 후배였다.
[언니, 상담대상자 보냈는데 건강관리실에 갔어요?]
이때다. 나를 꼰지른 대상자를 뒤에서 세게 후려칠 기회!
[야 너네 팀 직원들 너무한 거 아니야? 내가 상담대상자한테 한두 번 연락했어? 문자 보내고, 전화하고, 팀에 통보하고 내가 너한테 상담 대상자라고 메신저로도 몇 번이나 명단 보냈었잖아!]
[아 그렇죠. 언니. 근데 평가가 오늘까지 인지 모르고 있는 상태여서.]
[야! 너네 팀 평가는 팀에서 알아서 챙겨야지 그게 내 잘못이야? 아. 그래 내가 잘못했네. 오지랖 넓게 오늘까지 다 오라고 한 내가 잘못이네! 팀에서 평가점수를 잘 받든지 말든지 내가 무슨 상관이라고 그지? 내가 죽일 짓을 했네! 그렇다고 그걸 노조에 쪼르륵 가서 일으냐? 누구인지는 몰라도! 내가 지금까지 수도 없이 오라고 얘기한건 쏙 빼놓고 평소에 일도 안 하고 논 사람으로 정말 희한하게 몰고 가네!]
[언니... 제가 얘기한건.. 아닌데...]
[알았어 일단 끊어바.]
한마디만 더했다간 후배가 울 것 같아 일단 요기까지 하기로 하고 수화기를 내렸다. 나중에 후배에겐 심심한 사과가 필요할 것 같긴 했다. 건강관리실 안은 적막감이 맴돌았다. 그러다 반장들끼리는 '맞아, 그전에 문자랑 전화 왔었어'하며 수군거렸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조 지부장은 적잖게 당혹해하는 눈치였다.
[전화가 좀 길어졌네요. 상담은 누구 먼저 받으시겠어요?]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트를 들고 직원들을 한 분 한 분 너그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필요하다. 이 깡이란 놈이.
전 직원의 98%가 남자인 직장에 다니는 여직원으로서 더더욱 필요한 덕목이다.
그래야. 간호사는 같이 술도 안 마셔 주냐? 하는 농담을 다시 듣지 않을 수 있고, 여직원이 이런 일을 하면 쓰나 하는 보호를 빙자한 열외를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 아마도 노조에 가서 이야기하면 다른 여직원들처럼 울면서 잘못했다는 이야기나 들을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잘못 봤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미친개면 좀 어떤가? 물면 놓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그 대상은 더 이상을 더이상 가볍게 보거나, 무시하거나, 홀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