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돋움 Aug 30. 2024

보노보노가 주는 위로

후배가 점심시간밥숟가락을 몇 번 들다 말더니 이내 주위를 둘러보며 팔짱을 꼈다.

오늘도 짜고 건더기 없는 청국장과 이름만 나물밥인 시래기 줄거리가 희끗희끗한 맨밥이 주를 이루는 식판 이긴 하지만, 그래도 점심은 나머지 6시간의 근무를 무리 없이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임은 분명한데. 후배는 그 전투식량을 밀어내고 딴청을 피우고 있기에 이것이 전쟁 중이면 첫 빵으로 총알을 맞겠네 하는 마음으로 식판에 파묻은 시선을 거두며 후배를 바라봤다.


[너 뭐 하냐?]

[아... 뭐.. 밥 맛이 없어서]


하며 피식 웃는다. 웃는데 웃음 속에 즐거움이 없다. 얼굴엔 핏기도 없다. 눈은 어디서 한 바가지 물을 빼고 왔는지 부은 데다 벌겋기까지 하다. 이것이 또 뭔 일이 생긴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도 좀 이상했다.


[언니 사무실에 로션 있어요? 아침에 로션도 못 바르고 왔네]


하는 후배 손엔 매장용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 로션도 못 바를 만큼 바쁜데 또 아아는 굳이 매장에 가서 사 왔다는 것은. 집에서 엄청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 빨리 출근을 했고, 아아는 속에 생긴 천불을 끄기 위한 소화기 일 것이다. 짠 청국장에 숟가락을 다시 쑤셔 박다가 오늘따라 유난히 식당밥이 많이 없다는 둥 툴툴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후배는 뜸을 들여도 놓은 숟가락을 다시 들 마음이 없어 보였고, 여기서 한마디 더했다간 임시로 닫은 눈물샘이 무방비로 개방이 될 것 같은 불안감에 빨리 탈의실로 이동하기로 했다.  달달한 믹스커피를 두 잔 타와 후배 앞에 내밀었다. 마침 전에 먹던 쿠키도 있어 옆에 조용히 깔았다.


[언니,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다들 그러고 산다고 얘기를 할 것 같아서 말을 못 하겠는데. 너무 답답해서]


라며 말문을 열었다.

후배는 같은 회사 직원과 10살이 넘는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해 아이도 셋이나 나았다. 누가 봐도 행복해야 할 이 두 부부는 소통의 문제가 꾀나 심각해 보였다. 신랑은 이유 없이 (이건 후배의 기준에) 화를 내며 고성을 지르고, 툭하면 퇴직하고 너랑 떨어져서 혼자 살 거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후배가 곁에 와서 터치라도 할라치면 화들짝 놀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온갖 사람을 동의 없이 집으로 초대해 술자리를 갖고, 술자리를 파할 때는 집사람에게 각자의 집으로 데려다주라고 까지 한다고 했다. 자신을 늘 아이들과 같은 수준으로 대하고, 혼자 계신 시어머니에게도 하루에 한 번씩 꼭 전화해서 안부 묻기를 원했다.

어제저녁에도 이전 팀에서 같이 근무한 동료를 10시가 넘은 시간에 초대해 같이 맥주를 마시고, 동료는 내버려 둔 채 혼자 거실에서 잠들어 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먼저 신랑이 말을 걸었다고 했다.


[내가 어제 회식한 법카를 너한테 줬나?]

[응. 줬잖아]

[그럼 영수증도 같이 줬나?]

[다 챙겨 줬잖아. 오빠 기억 하나도 안나? 어제 동료 데리고 우리 집에 온 거는 기억나?]


이 말 끝에 남편은 격분했다고 했다. 나는 네가 이래서 싫다. 나는 너랑은 못 산다. 진짜 너는 그렇게 살지 마라. 내가 퇴직만 하면 이 집을 나갈 거다. 내가 너 없이 못 살 것 같지? 나 진짜 잘 살 수 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이렇게 불쑥불쑥 자신의 존재자체를 부정해 버리는 말을 신랑이 꺼낼 때면 후배는 자기 자신이 너무 작아진다고 했다. 작아지다 작아지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다가도 이혼하고 나면 아이를 셋이나 놓고 무책임하게 아이들에게 상처 주게 될까 걱정이 앞서고 그래서 섣불리 이혼하자는 이야기도 꺼내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건 그 사람과 후배 자신이 이혼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렵고, 무섭다고 했다. 결국 그렇게 독설을 내뱉는 남편이 걱정돼 숙취해소제를 식탁에 올려두고 조용히 집을 나왔다고 했다.


사람들은 왜 화를 낼까? 어떤 부분이 누군가에게 그토록 분노를 치밀게 하는 요인이 될까? 자격지심이 강한 사람, 자존감이 낮은 사람, 살아가는 동안 부당한 대우를 많이 받은 피해의식으로 충만한 사람.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라지 못한 사람. 이유는 괭장히 많지만. 그런 이유들을 열거하는 게 후배에게 위로가 될까?


나는 힘들 때 위로다운 위로를 받아 본 적이 있던가? 경험을 비춰 뭔가 후배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데 딱히 기억에 남는 위로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힘든 일이 있을 때 나에게 깨달음을 줬던 건 누군가의 말 한마디 보다 책이었다.  


부부가 다 그런 거 아니겠냐? 진짜 피 터지게 매일 싸우는 부부도 있어!

그래도, 애들이 다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잖아. 요즘 불임도 엄청 많아.

그래, 그렇지. 힘내. 뭐. 하루이틀이냐 네 신랑이 그런 게. 나도 사는 게 힘들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위로로 포장된 신세한탄이나 꾸지람, 어떻게든 현재를 모면하게 해 보려는 비약들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힘들어 죽겠다는 상대에게 피로까지 선물할 필요가 있을까?


이래서 위로는 힘들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들어주다가. 한참만에 끝난 신세한탄이 있은 후에 마음속에 있던 말을 꺼내어 보였다.


[이거는 내 생각이야. 그냥, 내가 만약 네 남편이라면 이런 생각이었을 것 같다는 추측일 뿐이야. 그러니까 그냥 들어보고 아니다 싶음 잊어버려 알겠지?

얼마 전에 네 신랑은 뇌 질환 관련 진단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잖아. 아스피린이랑 한알이 더 있던데. 그거 먹게 되면서 나랑 건강상담할 때 엄청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 그래서 보험도 몇 개를 더 들고 그랬잖아. 그래서 아마 평소에도 뇌질환 관련된 걱정을 하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 네가 아침에 기억이 안나냐고 물었잖아. 그 부분이 촉발요인이 아니었을까 싶어. 원래 걱정하고 있던 부분인데, 네가 한 말이 현실에서 당장 일어날까 봐. 그걸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화로 표현이 된 거지. 나는 이렇게 힘들게 걱정하는 부분을 너는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냐? 뭐 그런 뜻으로. 그러면 나는 너 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은 그 반대의 뜻인 거야. 뇌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혼자 살 수 있을까?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반대로 표현되어 버린 거지. 네가 자신을 떠날까 봐. 인간은 다 약한 존재잖아. 물론, 숨은 뜻이 그렇다고 해도 너에게 대놓고 그렇게 표현하는 건 네 마음이 상하기에 충분하지. 너 많이 힘든 거 당연한 거야.]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중에서


내가 가진 것을 알려주고 싶어 화를 낸다는 내용이 공감되면서도 결국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일까에서 궁금증이 더한다. 내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내 것일까? 화를 내면 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내 것이 될까? 화를 내면 내 것을 지킬 수는 있을까? 

오늘 나는 후배를 보며 화를 넘어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건넨 위로가 위로가 될지 피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끔찍히 서로를 생각하는 부부란 것은 내가 옆에서 지켜봐도 인정되는 부분이기에 슬기롭게 이 일을 잘 해쳐 나가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기 사주까? 소주 사주까? 골라바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