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기록합니다.-1
기록이 기억이 되도록.
23년 12월 20일 오후부터 우리 집은 뭔가 꽉 막혀버린 듯 혹은 텅 비어버린 듯 그렇게 지내고 있다.
20일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응급실에 가셨단 소식을 듣고 어머니께 어서 119를 불러 가셔라 나도 곧 가겠다 말하고 나는 이십 분간 그날 꼭 봐야 할 업무를 처리하고 나섰다. 마침 오빠가 모시고 갈 수 있어 나는 여유를 부렸던 것 같은데 그때 하지 않았다면 당분간 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몰고 다시 천안으로 오기까지의 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도착하자마자 응급실에서는 종양으로 보이는 것이 발견되었고 바로 입원실로 옮겨 빠르게 진행된 많은 검사에서 대장암 말기 판정을, 간과 췌장과 폐에 전이가 된 것으로 보이고 남은 시간은 6개월, 치료가 아닌 여명을 위한 항암을 한다면 일 년 반이 남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몇 달간 입맛이 없다며 식사를 거의 못하신 아버지는 십 킬로나 빠져 근육은 고사하고 앙상한 몸에 너무도 망가져버린 폐는 합병증이 염려되는 상황이다.
아버지가 견디실 수 있을까...
병원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연말과 새해를 보냈다. 그 열흘 중 아버지가 가장 먼저 집에 오셔 하신 일은 진단서를 가지고 보훈청에 가셔 국가유공자 서류를 보강하신 것, 당장 들 병원비와 생활비를 위해 재산 일부를 급히 정리하고자 세무업무를 보신 일이다.
모두 혼자 남겨질 어머니를 위한 일...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과 일처리 하시는 것을 함께 다니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너 바쁜데 큰일이다. 네가 애써서 어쩌냐." 내가 아버지께 이 전에 가장 많이 드렸던 말이다.
아이들이 아플 때 새벽같이 병원에 가 접수를 해주실 때, 출퇴근에 아이들 등하교, 학원까지 세녀석 모두 각기 다른 곳을 보내주실 때 그때마다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바쁘신데 죄송해요, 고생해서 어째요...
그리고 그때의 아버지와 나는 또 같은 대답을 하고 있다.
"별 말을 다하네. 걱정하지 마."
아버지는 내가 아는 가장 좋은 어른이었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었다. 마흔 하나에 본 늦둥이 막내딸인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말보단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시고, 세상 누구보다 나를 믿어주시는 아버지가 안 계신 순간은 내게 있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편찮으신 날에는 주무시는 방에 귀를 대고 뒤척임이 있으신지 확인하고야 안심할 수 있었던 그 어린 나는 마흔이 넘어 중년이 된 지금도 아버지와 분리되지 못한 그런 어린 나로 남아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내가 아는 아버지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이 기억이 되고 어느 순간 잊혀 가지 않게.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