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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May 09. 2024

짜치지 않는 방법

소위 ‘고급 취향’은 아니지만 '짜치지 않는' 방법 모음.

모두가 유튜브 개그맨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TV 개그 프로그램의 쇠퇴로 인해, 많은 개그맨들이 유튜브 플랫폼에 진출해 자신의 개그를 펼치고 있다. 방송사보다 유튜브가 검열이 덜하기 때문에, 더 자유로운 개그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은 있겠으나, 반대로 더 저열한 방식의 개그가 나오기도 쉽다. 당장 유명한 유튜브 개그 코너를 떠올려 본다면, 가장 싫어하는 운동을 골라달라든가, 선정적인 소재 찾기에만 급급하다든가, 특정한 인물들을 우스꽝스럽게 따라하며 비하하는 것들이 생각날 것이다. 개그콘서트가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개그를 지속적으로 웃음 코드로 삼았기 때문 아닌가. 유튜브 개그맨들의 흥망성쇠는 개그콘서트 개그맨들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짧다. 물론 비하 코드의 개그를 즐기지 않는다고 해도, 유튜브 개그에 대해 대단찮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무조건 그들에게 저자세를 보이라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애호를 강요하지 말자.      


한국에 유통되는 현대 일본 문학으로 문학을 판단하면 곤란하다

언젠가 한 남성 잡지에서 모 교수의 술자리 방담을 인용해 ‘한국 문학은 하루키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다른 한국 문학인들이 비닐장판의 무늬를 그리는 동안 차원이 다른 도약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렇듯 한국에서 일문학에 열성적인 일부 사람들의 팬심은 기이할 정도다. (술자리 방담 같은 말을 바로 가져오는 것처럼) 엄밀한 비평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이고, 어떨 때는 일본 문학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어떨 때는 일본 문학과 다른 경향을 보이기에 수준이 떨어진다고 하는 등 비판의 일관성도 갖추지 못했다. 비닐장판 운운하는 인상 비평은 덤. 이들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유명 일본 작가들의 작중 인물들이 가부장적이며 비대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든가, 이 작가들이 탈역사적이고 탈사회적인 서사를 전개한다는 비평은 필사적으로 외면한다. 하루키와 같은 인물들이 한국 작가들에게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굳이 무시하고 싶지는 않지만, 하루키 외에도 여러 세계 문학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 국내 문학의 역사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 유통되는’ 일본 문학이란 대개 말랑말랑한 중간 문학인 경우가 많다. 독자에게 말랑말랑, 몽글몽글, 산뜻한 기분을 주는 게 뭐가 나쁘겠냐만은, 그 기준을 모든 문학에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독자에게 어떤 감흥을 주느냐가 문학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 이불을 먼저 개야 하겠지만은

바야흐로 다시 투자와 자기 계발의 계절이 도래한 것 같고, 이 계절이 지나가려면 아직 멀어 보인다. 지금도 미라클 모닝을 한다느니, 매일 러닝을 한다느니 여러 결심이 챌린지로 공유된다. (한때 스레드가 과열된 것도 이 자기 계발 루틴에 힘입은 바가 컸다.) 성공하는 사람들에 주목하면서, 그들의 절제된 생활 방식에 관심이 가는 건 자연스러운 것 같다. 나만 하더라도 그들처럼 매일 방을 치우고 이불과 책상을 정리해야 더 명료한 정신으로 글을 쓸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는 방을 치우고 이불을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한 노동에 시달린다. 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의 주변 상황의 문제일 수도, 사회구조의 문제일 수도 있다. 자기 계발 서사가 지속하는 승자/패자의 이분법 속에 자신과 타인을 가두지 말자. 부지런히 루틴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시당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양산형 발라드는 죄가 없다하지만...

음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음악에 정답이 없다고들 한다. 종사자들조차 정답이 없다고 말하는 판에,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점수를 매기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쩌면 모든 음악이 좋은 음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음악의 ‘좋음’이 어떤 맥락에 의해서 반감된다면, 그만큼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 일반 대중이 아이돌 팬들의 극성스러움 때문에 아이돌 음악이 유치하고 요란스럽게 들린다고 말할 때, 아이돌 팬으로서 마음이 참 아프다. 나의 경우에는 멜론 차트를 수놓은 양산형 발라드를 들으면서 비슷한 마음이 된다. 내가 ‘양산형’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비슷비슷한 전개를 보이는 발라드 곡들도 자세히 들으면 변별점이 있고 감탄하게 되는 대목들이 있다. 그러나 양산형 발라드를 자기 인스타나 카톡에 배경음악으로 깔아놓는 사람들 상당수가 자신들이 선호하지 않는 힙합 같은 다른 장르를 비하하면서,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것에 심취한 무드 있는 나’ 롤플레이에 빠져 있는 걸 보고 있노라면, 발라드의 감동이 다 죽어버린다. 서로 노래의 감동을 깨버리지 말자.     


돈벌이에 혈안 된 숏츠와 릴스

나라 전체가 수련회 캠핑장 같아서 온갖 소문이 범람하는 한국이라지만, 지금은 그 루머를 가지고 돈까지 벌려고 한다는 점에서 더 막장이 된 듯하다. 인스타그램 둘러보기 탭을 보라. 확인되지도 않은 루머와 유명인 깎아내리기 릴스가 넘쳐난다. 타인에게 얻어맞은 것이 아니라면, 그에게 상처가 되는 소문을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 그 소문을 양산해서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소비해서도 안 된다.     


뉴진스 대 ○○○

뉴진스 대 르세라핌, 뉴진스 대 아일릿 등으로 대리 배틀 하지 말자. 동생, 조카뻘 되는 애들 가지고 싸우면 추할뿐더러, 한쪽이 한쪽보다 대단하게 낫지 않다. 뉴진스 대 르세라핌이든, 뉴진스 대 아일릿이든, 비슷한 수준으로 춤을 잘 추고 무대에서 반짝인다. 그리고 누가 됐든 ‘파워 라이브’를 하지는 않는다. ‘파워 라이브’가 뭔지 알고 싶다면 유튜브에 ‘천상지희’나 ‘브라운아이드걸스’를 검색하자.     


내가 춤출 수 없는 혁명도 존재한다

어려운 걸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전문가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라캉에 대해 쉽게 말하는 사람, 칸트에 대해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겠지.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를 읽어도 쉬워지지 않는 건, 이들이 어려운 것을 말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건 어렵게 전달된다. 게다가 한 해에 단 한 권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열 명 중 여섯 명인 나라에서, ‘알기 쉽게, 읽기 쉽게’를 요구하는 풍조는 너무 날로 먹으려 드는 것 아닌가. 그런 연약한 마음으로는 복잡한 세상의 복잡한 문제들을 사회 구성원으로서 해결해 나갈 수 없다. 내가 춤출 수 없게 하는,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게 하는 것들도 있다는 걸 알고 부지런히 배우고 읽자. ‘명징’, ‘직조’, ‘금일’과 같은 단어들을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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