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온 ○○○”이라는 말이 있다. 주로 엄청난 고난을 딛고 삶의 현장에 돌아온 사람을 의미한다. 그 사람은 ‘지옥 같은’ 고통에 담금질된 사람이기 때문에 창작물에서는 독기와 패기, 지략으로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경우가 많다. “지옥에서 온”이라는 말은 꽤 감상적이고 오버하는 느낌이지만, 사실 ‘헬조선’이라는 멸칭을 지닌 한국 사회에서는 그리 나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한국 사회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지옥으로 몰고 간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 줄의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을 매장시키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 사람과 똑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한다. 이 나라의 일부 사람들은 지역마다 멸칭을 붙이고, 노동자와 여성을 특정한 프레임에 가두어 혐오한다. (그 멍청이들은 여자들이 강원도 양양에 가는 걸 싫어한다. 자기들은 성매수를 하면서 남을 불순한 망상 속에 집어넣는다.) 어린이와 청소년과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도 비하하고 조롱한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은 스스로 그렇게 악랄한지 모른다. 당연하다. 악마들은 자신의 악을 반성하지 않으니까.
라이즈 출신 솔로 아티스트 승한에게도 ‘지옥에서 온’이라는 수식을 붙일 수 있다. 엄연히 살아있는데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근조화환을 받았기 때문이다. 승한에게 근조화환을 보낸 사람들은 여러 이유를 붙여서 자신들을 정당화했다. 그가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친한 아이돌에게 속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여자친구랑 뽀뽀하는 사진이 있기 때문에. 자기들도 그 정도 이유는 약하다고 생각하기에 여자친구와 뽀뽀하는 사진을 음지의 사이트에 올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승한이 그 사진을 올렸다는 증거는 없다. 승한에 대한 신고 내역은 당연히 없다. 음지의 사이트는 사람들의 오만 가지 사진을 무단으로 가져가 올리는 만행을 항상 저지른다. 그 사진은 승한이 아이돌 연습생이 아니었으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법한, 흔한 커플 사진이었다. 이외에도 여러 정황 증거를 댈 수 있었겠지만 이미 누군가를 증오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승한이 그 모든 자잘한 논란으로 자숙을 하다가 소속사가 복귀 발표를 한 시점에, 자신들이 그룹을 지킨다고 착각한 일부 멍청이들은 승한의 복귀를 규탄하며 소속사 앞에 근조화환 테러를 벌인다. (자기들은 ‘근조화환 시위’라고 부르겠지만.) 백여 개의 근조화환에는 소속사의 이름과 센터장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를 받은 사람은 승한밖에 없었다.
마치 이 나라에서 직장 동료들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같이,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을 당하는 학생같이, 그밖에 괴로운 일을 당하는 사람들같이. 이 근조화환 테러가 케이팝 팬들을 중심으로 꽤 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오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어떤 점을 꼬투리 삼아서 폭력을 가하며 자신들이 정의를 구현했다고 믿는 폭력주의자들, 폭력과 조롱에 시달리는 피해자를 한국 사회에서 아무리 많이 보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진절머리를 내며 화를 낼 수밖에 없다. 승한을 지지하고 좋아하는 팬들은 소속사 앞에서 대면 시위를 벌였다. 거기에는 다른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 딱히 좋아하는 아이돌은 없지만 화가 나서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비가 오든 날이 궂든 근조화환 테러를 저지른 사람들을 고소하고 소속 가수를 보호하라고 외쳤다. 이런 일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사람들은 정말 (불법 계엄과 같은) 긴급한 일이 아니면 자신들의 항의 표시 수단을 점점 외부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항의 방문이나 규탄 집회를 하기보다는, 소위 ‘근조화환 시위’나 ‘트럭 시위’ 같이 비대면적인 집회·시위를 한다. 항의하는 주체가 근조화환이나 트럭으로 전가된 느낌이랄까. 물론 그렇게 하면서까지 표현할 만한 항의의 사항이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트럭 시위는 쉽게 한국을 오갈 수 없는 해외 팬들의 항의 수단으로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항의의 주체들이 점점 더 비대면의 수단을 선호한다는 점, 반대로 자신들의 항의 내용을 점점 극단화한다는 점은 서로 연동되는 것처럼 보인다. 항의를 하는 자신들의 책임을 면제하고 싶다는 욕망에 따라서 말이다.
특정 개인을 모욕하는 근조화환 테러를 벌인 사람들, 그 짓거리를 옹호하던 사람들도 승한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대면 시위를 유달리 비웃으며 대면 시위 사진을 조롱하면서도, 반대로 자신들이 근조화환 앞에서 춤을 추는 추태를 벌이던 영상이 퍼져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신들이 그 영상을 올렸는데도 말이다.) 이들의 신경질적 반응에는 자신들의 비판 의견에 개개인으로서 전혀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심리가 작용한 것 아닐까.
각설하고, 승한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근조화환 테러 규탄 집회는 승한의 연예 활동을 보장고 지지할 것, 그를 소속 그룹으로 다시 복귀시킬 것과 같은 다양한 메시지를 담으며 이어졌다. 그리고 거의 일 년 가량의 지루한 공백 끝에 승한은 올해 7월 말부터 솔로로 재데뷔를 했다. 타진요에게 시달리던 타블로와 에픽하이 멤버들이 되려 밝은 앨범으로 컴백했던 것처럼 여름에 컴백하는 승한이 청량하고 밝은 노래를 들고 올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댄서들과 함께 하는 ‘크루’ 컨셉으로 “Waste No Time”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는 초록으로 물든 나무처럼, 분수대의 물이 여름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듯이 환한 반짝임이 노래에 있을 줄은 몰랐다. 솔직히 솔로보단 그룹이 압도적으로 많은 기획사에서 내놓은 노래치고 굉장히 괜찮은 (여름) 노래가 나왔다. 더 놀라운 건 그룹 시절에는 달콤한 음색이 돋보이는 가창을 보여준 승한이 성량이나 음정, 창법에서도 꽤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승한앤소울로서 무대에 서는 승한을 보고 있자면 생각보다도 안정되고 풍성한 라이브가 주는 즐거움도 선명하다. 무엇보다도 어느 동작에서는 댄서 ‘소울이들’에게 센터를 주는 승한의 이타심이나 우정, 그리고 센터의 순간에서 자신들이 왜 댄서인지 증명하는 소울, 교홍과 장율의 실력과 기세도 이 크루의 매력이다.
케이팝의 어느 무간지옥에 있다가 돌아왔어도 전혀 구겨짐 없이 빛나는 승한, 기뻐하는 승한, 안정된 삼각 편대를 이루고 있는 승한과 소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너무 기쁘고 행복하고 완전하기에 어렴풋이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청자의 그런 슬픔을 지워낼, 이미 자신의 슬픔은 지워내고 있을 승한을 되려 기대하게 된다. 아이돌로 서는 이들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리고 다시 선 첫 번째 무대에서 자신의 색을 발하고 있으니까. 나는 사이비 평론가 놀이를 하며 비웃고 똑똑한 척 하기보다, 대단한 성취를 이뤄낸 이 사람(들)에게 기꺼이 감탄하고 싶다. 감탄하며 배우고 싶다.
* 안녕하세요. 제가 즐겨 듣는 승한앤소울의 “Waste No Time”과 이 팀의 전사에 대한 제 생각을 써보았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노력했습니다만 혹여나 제가 언급한 사건이 언급함으로 인해 트라우마로 작용한다던가, 그밖에 제 표현으로 인해 마음이 괴로우신 이 팀의 팬 분들이 계신다면 댓글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로 지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