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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May 07. 2024

힙합

아주 개나 소나 다 ‘국힙원탑’이군. 민희진의 기자회견이 몇 날 며칠 화제인 건 알겠지만 ‘국힙원탑’이라는 밈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시발새끼’, ‘맞다이로 들어와’ 같이 손발이 오그라드는 비속어를 쓰면 힙합인가? 자신이 받는 의혹보다는 다른 얘기를 늘어놓고, 애꿎은 다른 걸그룹 멤버나 연습생을 언급한 문자를 공개하고, 자기 감정을 마음대로 분출하는 것이? 언제부터 욕 몇 마디하고 화내는 게 힙합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한국에서 힙합이란 고작 그 정도로나 이해되는 게 아닌가 싶다.     


모 래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맨스티어 얘기가 나왔을 때는 내가 모르는 힙합 듀오가 데뷔한 줄 알았다. ‘맨스티어 AK47’을 검색하고 나서야 ‘AK47을 맞고 사망한 외할머니’라는 정신 나간 제목의 힙합 패러디 곡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맨스티어는 요새 많이 활동하는 유튜브 기반 개그맨들의 ‘부캐’다.) 컨셉은 갱단 근처도 못 가본 한국의 소시민 ‘힙찔이’니 외할머니는 극중에서조차 총을 맞아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지만, 외할머니나 부모님 등 가족친지를 계속 운운하는 게 거슬린다. 막상 국내 힙합에서 갱 코스프레하는 래퍼를 떠올리려고 하면 잘 생각나지 않는다. 힙합이 밈 덩어리에 시적 허용이 허용된다고 보는 쪽은 극소수일 거고, 막상 종사자들조차 진짜 가짜를 끝까지 나누는 판이기 때문이다. 가사에서 끌고 다니는 차가 리스인지 아닌지도 따지는 마당에 총이라니. 차라리 본토로 넘어가서 칸예 같은 사람에게(부모가 교수고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자랐다) 흑인 게토를 좀 아냐고 물어보는 게 나을 것이다.     


어떤 쪽에서는 힙합이 저항 음악이었다고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파티 음악이었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둘 다였을 수도 있다. 한국만 하더라도 시위 장소에서 가요가 나오기도 하니까. 친구들끼리 모여있는 술자리에서 비장한 민중가요를 불러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령 둘 중 어느 하나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지금은 저항 음악으로도 파티 음악으로도 감상용 음악으로도 쓰는 마당에 기원을 따져가며 이 장르는 어떠하고, 어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느 장르나 마찬가지로 힙합에도 좋은 면이 있고 나쁜 면이 있을 것이며, 명작이 있는가 하면 쓰레기 같은 노래들도 있다.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결점까지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 어떤 진실성을 가르치는가 하면 자기 크루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힙합은 유달리 과소평가를 당하는데, 머니 스웩이나 게토 서사 같은 힙합의 클리셰가 일반 대중에게 클리셰로서 작동하지 않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제되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언어 표현에 힙합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밈화’하는 것은 보고 있기 괴롭다. 돈 자랑 안 하고 인기 자랑 안 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노래하는 자기들만의 서정이 있다는 걸 알겠지만... 돈도 안 되는 걸 하는 이들을 비웃는 놈들이 노래는 돈타령을 안 듣는다는 게 뭐 대단한 자랑인가. 최소한의 자기반성도 없이 모든 걸 이해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르는 사랑은 뭐 얼마나 깊이 있는 감정인가. 그 사람들이 힙합을 비웃는 것처럼 나도 그들의 유행가나 인생곡에 정을 주기 어렵다. 문제는 노래가 아닌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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