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글 쓰는데 의욕이 없구나. 인정하는 기분은 진짜 개 같았다.
우선 그놈의 돈. 적자라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을 일찍 주는 알바가 없다. 시발. 단기라서 힘 많이 드는 일이 대부분인데 급여를 한달만에 주면 어쩌자는 거야. 그럼 다른 정규직을 알아보지 뭐하러 알바를 하는데. 급여를 빠르게 지급하는 쪽은 물류센터 알바 아니면 청소 쪽인데 대개 하는 일에 비해 돈이 적다. 특히 어플리케이션으로 신청해서 진행하는 청소는. 저장강박인의 집처럼 어질러져 있는 집을 깨끗하게 치워주는데 4만원도 안 주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서 이번주엔 물류센터 알바를 갔는데 2시간 가까이 이동해서 센터에 가니까 1분 늦었다는 이유로 야간조로 편성하는 바람에 기분을 잡치고 집에 왔다. 그 뒤로 새벽에 기관을 청소하는 알바가 잡혔는데 새벽에 부르면서 급여는 2주 뒤에 주겠다길래 안 갔고. 서울에 있는 물류센터에 가야 하는 건지 염가의 급여를 받으면서 청소라도 해야 할지. 알맞은 급여 지급 속도와 급여 액수는 양립하지 않는다. 노동자를 저임금에 착취하는 방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고용 사이트에 들어가서 모종의 회사들에 이력서를 계속 제출한다.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공고를 뒤지느라 눈이 빠개질 거 같다. 택배 배송을 비롯한 서비스는 분초를 다투게 하면서 돈은 겁나 느리게 주는 악덕 고용주의 나라 코리아여. 덕분에 글 쓰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기도 했다.
두 번째는 생활 소음. 원래는 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말던 무시하고 책을 읽을 정도는 됐는데 요즘은 바이오리듬이 깨진 건지 뭔지 주변이 시끄러워지면 일의 능률이 떨어진다. 게다가 우리 부모님도 이젠 TV를 크게 켠 상태에서 유튜브를 보기 때문에 제법 더 시끄러워졌다. 나라고 유튜브 취향이 대단하게 고상한 건 아니지만 요새 부모님이 심취한 건 북한 관련된 정보를 담은 유튜브라 보는 입장에서 딱히 기분 좋은 건 아니다. 북한에 대한 자극적인 발언을 유도하고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북한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탈북민들이 정확한 사실을 전하기 어렵게 만드니까. 오죽하면 북한의 동향에 대해서는 중국이나 일본이 더 잘 안다는 말이 나오는 판이다. 정보를 전달한답시고 탈북민과 북한 사람들만 대상화하는 영상음향이 크게 들리는 게 싫어서 집에서도 바로 이어폰을 꽂는다. 반주를 하고 자꾸 밥을 찾는 아빠의 술주정도 그렇고. 노래를 틀지 않으면 조금도 집중하기 어렵다. 기껏해야 조금씩 책을 읽을 뿐이지 한 문장 한 문장을 떠올리기 어려웠고.
기존 게재글을 불호하는 문학 공모전에게도 핑계를 대고 싶어진다. 대부분의 공모전에서는 브런치나 SNS에 올린 글은 투고하지 못하게 하는데, 무엇을 우려해서 이런 금지 조항을 만든지는 알겠지만, 정작 플랫폼에 올릴만한 글을 투고용으로 쌓아두느라 플랫폼 연재 주기가 길어지는 부작용이 생긴다. 차라리 오마이뉴스가 그렇듯이 공동으로 출처를 병기하게 하는 건 어떤지.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것만큼이나 인스타그램, 블로그, 브런치와 같은 창작자의 플랫폼이 운영되는 것도 중요한데. 의욕이 안 올라와서 한글 2020을 켜고 키보드에 손만 올렸다. 나는 작가 지망생이지, 하고 되뇌는데 녹음실에 계속 앉아 있는다고 말한 켄드릭 라마가 생각났다. 켄드릭 라마가 아닌가. 드레이크인가. 아무튼 안되는데 시발 시발 하면서 해보는 건 좀 힙합 같다는 생각도 든다. 힙합에서 술과 마약에 찌든 도시를 얘기할 때, 항상 그 모습을 예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꽤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는 다르게.
내가 각종 증오범죄로 물든 한국 사회의 모습을 쓴다고 해서 그 사회를 예찬하는 게 아니듯. 요즘 진중한 사회 비판이 사라진 건 한국 사회가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증오하고 탄압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면, “이것저것 보장하라”는 식의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저것 보장하라”고 투쟁하는 사람은 없는데도. 노동자가 산재 사고로 가장 많이 죽는 나라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걸 억지라고 생각하는 모습은 어딘가 북한 같다. 탈북자들은 한국으로 내려와 자유롭게 되었지만 국가를 우상화하는 한국 사람들의 정신은 대체 어디에 묶여있을까. 국가와 경제 구조와 일터와 문화에 대한 비판을 기피하는 곳에서는 『늑대의 유혹』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설탕 범벅인 말들이 범람한다. 진지한 문학은 부커상이나 노벨상을 받지 않는 이상 알아주는 이들이 적다. 몇 번을 불평해도 모자라다. 오히려 불평의 대기 속에서 숨쉬고 일해야 할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