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귀연 판사가 피고인 윤석열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재판을 맡은 것은 기독교 작가 레이첼 헬드 에반스가 말한 ‘신자의 세례’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원칙적으로는 재세례를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괴상한 정치 성향을 내보이며 혐오 발언이나 소수자에 대한 경시를 일삼는 교회도 어떤 공동체적인 서약과 축복에 참여함으로써 불완전한 세례 예식을 완성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세례식을 통해서 신자는 믿음을 시작해야만 한다고, 세례를 주고 그 세례를 공인하는 이들의 낮은 수준과 불완전함을 이유로 세례를 취소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치 불완전한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비슷하게 지 판사가 보인 각종 구설수와 피고인에 대한 지나친 우대에도 지 판사의 1심 재판을 무효로 만들 수는 없다. 세례 예식의 초라하지만 은은한 아름다움과 달리, 이 재판은 노골적인 반감을 불러일으키며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 사회의 정치, 사법, 문화적인 지체를 상징하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의 짐작이자 집권당의 의심대로 지귀연 판사는 재판을 맡은 변호사들과 룸살롱을 간 것이 맞을까? 이것을 윤석열 정부에서 알고 있었고 약점으로 쥐고 있었기에, 윤석열이 피고인이 되고 나서도 지귀연 판사가 저자세를 보인다는 소문이 맞을까? 정확한 조사가 없었기에 이는 추정의 영역이자, 누군가에게는 음모론의 영역이지만 희대의 내란 재판을 맡은 권위 있는 판사라고 보기에는 피고인을 지나치게 예우하는 것으로 보이긴 한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을 대신 대답했던 그 장면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룸살롱 출입은 루머일 뿐이라 하더라도 재판에 참여하는 사람의 지위나 배경에 따라 판사가 달리 대우하는 건 옳은 일일까?
지귀연 판사의 경솔한 처신이나 재판 중의 ‘실수’를 차치하더라도 그의 ‘내란 우두머리’ 1심 판결은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피고인이 답해야 할 질문을 대신 대답해 줄 정도로 윤 전 대통령에게 절절맸던 그가 무려 두 번째로 무거운 형벌인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은 그 자체로 높이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두환의 내란죄에 대해 비교적 올바르게 판결한 판사도 무기징역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위해 충족해야 하는 헌법상의 객관적 요건들을 무시하고 대통령의 고유 권한과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표현하여 헌법과 실정법에 어긋나는 판단을 내린 점, ‘치밀한 계획이 없었다’는 말로 노상원 수첩과 증인들의 증언에 반하여 비상계엄이 우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왜곡된 판단을 내린 점, 일선 군에서 지시하고 행한 물리력 행사의 자제를 대통령의 지시인 것처럼 거짓된 판단을 한 점, 한 번 한 번이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란의 죄를 대통령의 전과가 없고 고령이라는 이유로 벌을 경감 할 수 있다고 본 점 등 판결문 곳곳의 논리적 오류와 문제로 인해 내려진 결과가 무기징역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귀연 판사는 곳곳에서 잘못된 판단으로 항소심에서 대통령이 알리바이로 우길만한 논리를 제공했고 내란죄에 대한 법정 최저형을 선고해 혹시 모를 가석방 가능성까지 열어주었다. 내란에 책임을 물으려는 세력에게는 무기징역을 선물로 주며 달래주고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하려는 세력에게는 윤 대통령의 생명을 법적으로 살려준 건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정의와 민주주의의 문제에서도 기계적인 정치 중립을 표방하며 어정쩡한 판결을 내리고, 사회와 시대의 맥락을 읽기보단 룸살롱과 법원을 오가며 편협한 관점만을 갈고 닦아 중요한 재판을 망친 지귀연 판사는 어찌 보면 지금의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거울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무속 신앙에 따른 사안 결정이나 룸살롱을 드나들며 얻는 희열과 같이 일탈적 행위가 주는 도파민에 취해있는 한국 사회. 그래서 정의나 연대와 같은 사회적 가치를 공부하기보다는 어떤 지식이나 교양 없이도 손쉽게 취할 수 있는 기계적인 중립으로 약자의 목소리를 지우고 그들을 손가락질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들. 어쩌면 그 모습들이 만들어낸, 그런 모습들로 살아가는 사람이 만들어낸 엉터리 판결. 그것들을 무효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시민들의 조직된 감시와 목소리, 어쩌면 반성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