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g it’, 기만 뒤에 숨은 고독한 사투

초중등 교실부터 대학원 세미나까지, ‘읽기 이해 부진’이 은폐되는 방식

미국 대학원 유학 시절, 세미나를 앞두고 동료들이 가볍게 던지던 “I’ll just wing it(그냥 대충 때워야지)”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사뭇 충격을 받았다. 방대한 읽기 자료를 완벽히 소화하지 못했음에도, 적당히 맥락을 짚어 유창한 영어로 토론을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깨달았다. 그 ‘Wing it’이라는 가벼운 수사 뒤에는, 텍스트의 심층에 닿지 못한 결핍을 들키지 않으려는 처절한 지적 사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원 세미나실만의 풍경이 아니다. 윌리엄 브로조(William G. Brozo, 1990)는 그의 논문『중등 교과 교실에서의 은신(Hiding out in Secondary Content Classrooms)』에서, 읽기 이해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교실에서 무능해 보이지 않기 위해 얼마나 정교한 기만 전략을 사용하는지 폭로한다. 그들은 결코 게으른 것이 아니라, 이해에 써야 할 엄청난 에너지를 ‘이해한 척 위장하는 데’ 남김없이 소진하고 있었다.


중등 교실의 ‘은신 가이드’: 읽지 못함을 숨기는 정교한 사투

브로조가 관찰한 중등 학생들의 사투는 단순히 침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텍스트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발달 단계에 맞는 정교한 은신술을 발휘한다. 우선 어떤 학생들은 교사의 레이더망에서 아예 벗어나는 수동적 저항(The Passive-Aggressive Resister)의 길을 택한다. 이들은 교사와 눈을 맞추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마치 무언가 중요한 내용을 적는 것처럼 바쁘게 펜을 움직이며 풍경의 일부가 되어 존재감을 지운다.

반면, 지적 수준이 낮다는 낙인을 피하고자 유능해 보이는 사회적 가면(Socially Competent Masking)을 쓰는 학생들도 존재한다. 이들은 텍스트의 내용은 전혀 파악하지 못했으면서도, 교사의 농담에 가장 먼저 웃거나 주변의 반응에 맞춰 적절한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 자의 리액션’을 완벽하게 수행해 낸다. 질문을 받게 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답이 입가에서 맴도는데 기억이 안 난다”는 식의 세련된 변명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또한 스스로 텍스트를 읽는 대신 타인의 독해력에 의존하는 의존적 독해(The Dependent Reader)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자신의 책은 덮어둔 채 옆 친구의 활동지를 은밀히 훔쳐보거나, 모둠 활동에서 동료가 내놓은 의견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가공하여 발표함으로써 텍스트를 직접 통과하지 않고도 과제를 해결하는 척한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읽지 못하는 무능함을 가리기 위해 차라리 문제아가 되는 주의 분산(The Class Clown/Distractor)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읽기 과제가 주어지는 순간 갑자기 농담을 하거나 돌발 행동을 하여 교실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식이다. 이들에게는 지적 수치심을 느끼느니 차라리 장난기 심한 학생으로 낙인찍히는 쪽이 견디기 쉽기 때문이다.


1.png 제미나이 생성 인포그래픽


고등 교육: 수치심이 만든 ‘끄덕임의 감옥’

이러한 ‘Wing it’의 서사는 대학 교육 이상으로 갈수록 더욱 은밀해진다. 난해한 학술 텍스트 앞에서 이해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는 것은 지적 공동체에서의 서열 하락, 혹은 축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주변에 알려 도움을 요청하지만, 문해력의 결함은 결코 공유하지 않는다. 질병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읽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함은 지적 태만이나 무능의 징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 앞에서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필기하는 모습은, 공동체에서 ‘무식자’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한 가장 외로운 사회적 생존 투쟁이다.


2.png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가면을 벗어도 안전한 교실을 위하여

나 역시 유학 시절, 이해하지 못한 텍스트를 붙들고 ‘Wing it’의 유혹과 사투하며 깨달은 바가 있다. 지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쓴 가면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감옥이 된다는 점이다. 브로조는 교사는 아이들의 ‘순응적인 리액션’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교육은 가면을 잘 쓰는 법이나 적당히 때우는 법을 가르치는 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가면을 벗고 “저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돼요”라고 말해도 안전한 ‘비위협적 환경(Non-threatening environment)’을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예비 교사들에게, 그리고 미래의 동료 연구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유창한 목소리와 세련된 고개 끄덕임 뒤에 숨겨진 외로운 사투를 읽어내 달라고 말이다. 강단은 살아남기 위해 연기하는 곳이 아니라, 부족함을 드러내며 함께 나침반을 들고 길을 찾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 친절한 읽기 교육 연구자 K

필자 소개: 대학에서 예비 초·중등 교사를 양성하며 독서 교육(Literacy Education)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며 입시 현장의 치열함을 경험했고, 미국에서 테크놀로지 통합 읽기 교육을 탐구했습니다. 대학원 세미나실의 그 무거운 침묵과 '아는 척'의 사투를 기억합니다 수많은 과독형(Hyperlexia, 過讀) 부진 아동(읽기 이해 부진 아동)이 더 이상 교실의 으슥한 곳에 '은신'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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