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책'이라는 이름의 역설

'한 학기 한 권 읽기’라는 교육 운동이 직면한 용어의 함정에 대하여

“교수님, 온 책은 온전한 책인데... 그럼 우리가 앞으로 가르치게 될 교과서는 불완전한 책인가요?”

교단에 설 준비를 하는 예비 교사들과 ‘한 학기 한 권 읽기’ 정책을 토론하던 중이었다. 한 학생이 던진 이 뼈아픈 질문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교육 현장에서 ‘온 책’이라는 용어가 일상의 언어처럼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교하게 설계된 국가 교육과정을 학습하던 예비 교사의 눈에 그 단어가 ‘교과서의 부정’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은 사뭇 당혹스러운 발견이었다.

아이들에게 조각난 지문이 아닌 완전한 책 한 권을 쥐여주겠다는 선의(善意). 현장 교사들의 자발적인 헌신으로 일구어낸 이 자생적인 교육 운동이, 역설적으로 교육의 중심인 교과서를 ‘불완전한 조각글’로 타자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이 질문을 학생의 오해가 아닌, 우리 교육계가 직면한 ‘용어의 함정’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1.png '온전함'이라는 수사가 만들어낸 교과서와 단행본의 이분법적 대비,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창의성의 감옥’이 된 교과서, 그 선악의 구도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교과서는 ‘창의성을 죽이는 암기 덩어리’ 혹은 ‘주입식 교육의 상징’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여러 교사가 교과서를 벗어나는 것을 곧 교육적 해방이자 진보라고 믿으며, ‘교과서=나쁜 것/지루한 것’, ‘온 책=좋은 것/창의적인 것’이라는 견고한 선악 구도를 형성한다.

명백히 밝혀두건대, 우리나라의 ‘한 학기 한 권 읽기’ 운동을 이끌어온 주창자들이 처음부터 이 흐름을 미국의 총체적 언어학(Whole Language)과 결부시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이 운동은 오로지 우리 교실의 파편화된 읽기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현장 교사들이 스스로 싹 틔우고 열매 맺은, 지극히 자생적인 교육 운동이다. 나 역시 그 자발적인 에너지가 우리 교실을 변화시킨 핵심 동력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연구자의 시선으로 이 운동이 사용하는 ‘용어’의 기저를 분석하다 보면 1990년대 미국 읽기 교육계를 흔들었던 이론적 논쟁의 궤적과 닿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필자의 학술적 판단에 따르면, 당시 미국의 총체적 언어학 역시 단순히 교수법을 넘어선 하나의 ‘정치적 운동’에 가까웠다. 지지자들은 자신들을 ‘민주적이고 해방적’인 진보주의자로 규정했고, 교과서 중심의 전통적 교육을 ‘권위주의적이고 파편화된 것’으로 묘사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선점했다.

나의 지도교수였던 데이비드 라인킹(David Reinking)은 이러한 구도를 경계했다. ‘Whole(전체/온)’이라는 단어가 주는 강력한 수사적 힘에 매몰되는 순간, 교과서가 가진 정교한 교육적 설계는 ‘아이들을 가두는 틀’로 오해받고 배척당하기 때문이다.


평등주의의 역설: 누구를 위한 ‘온전함’인가

더 큰 문제는 이 운동이 표방하는 평등주의와 진보주의가 낳는 역설에 있다. ‘누구에게나 완전한 책 한 권을!’이라는 구호는 정의로워 보이지만, 현실의 교실에서 읽기 능력이 부족하거나 학습 지원이 절실한 학생들에게는 가혹한 방임이 될 수도 있다.

맥케나와 라인킹(McKenna & Reinking) 등은 총체적 언어학의 이름 아래 명시적인 기능 지도가 사라졌을 때, 가장 먼저 낙오되는 이들은 역설적으로 사회적 약자 계층의 아이들이라고 지적한다. 배경지식이 풍부하고 가정의 지원을 받는 아이들은 어떤 텍스트를 던져줘도 스스로 헤엄치지만, 읽기 전략이 부족한 부진 학생들에게는 교과서가 제공하는 단계적이고 정교한 비계(Scaffolding)가 유일한 생존 줄이기 때문이다. '온전함'이라는 낭만적인 구호가,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2.png 자유로운 독서를 지향하는 교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학습 격차가 존재할 수 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다시, 본질적인 문해력 교육으로

실제로 필자의 연구 결과, ‘한 권 읽기’의 실천이 학생들의 실제적인 ‘읽기 전략’ 사용이나 태도 형성으로 직접 연결된다는 근거는 부족했다. 완독이라는 물리적 경험과 ‘교과서를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매몰된 나머지, 정작 글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분석할지에 대한 방법론은 소홀히 다뤄진 경우가 많았다.


3.png 텍스트의 안갯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에게 교과서는 교사와 함께 정교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우리가 가르칠 교과서는 불완전한가요?”라는 예비 교사의 질문에 이제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교과서는 결코 아이들의 창의성을 가두는 감옥이나 암기 거리가 아니라고. 그것은 아이들이 텍스트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게 돕는 정교한 나침반이며, 그 나침반을 쥔 교사의 전문성이 결합될 때 비로소 아이들은 스스로 길을 찾는 법을 배운다. 교과서는 모든 아이에게 최소한의 읽기 권리를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예비 교사들이 교단에서 마주할 ‘온전함’이란, 책의 형태나 교과서 탈피라는 구호가 아니라, 학생이 텍스트와 만나 벌이는 치열한 의미 구성의 과정 그 자체여야 한다.


필자: 친절한 읽기교육 연구자 K

필자 소개: 대학에서 예비 초·중등 교사를 양성하며 독서 교육(Literacy Education)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며 입시 현장의 치열함을 경험했고, 미국에서 읽기 교육의 권위자인 데이비드 라인킹(David Reinking) 교수의 지도 아래 테크놀로지 통합 읽기 교육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문해력이 특정 신념을 증명하는 도구가 아닌, 모든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게 돕는 실질적인 해방의 도구가 되기를 꿈꾸며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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