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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삭제 Feb 05. 2024

변해가고 있다.

지나간다는 것은,

꽃 선물을 참 싫어했다.


오래 기억되고 간직되는 것이 선물인데, 기억에 비에 꽃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음이 핑계다.

 

정성으로 품어주는 꽃병에서도 얼마 살지 못하고 시들어 버려 그 가치가 돈에 비해 너무 짧다는 것이 이유다.


그래서 농담으로 그 돈으로 차라리 배를 채우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붉은빛, 주홍빛, 초록빛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꽃다발을 받으면 흐뭇하다.


잠깐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빛내는 그 순간이 꽃의 시간에선 영원일 것이다.


이제 흘러가는 시간의 익숙함에 나도 꽃의 조화로운 빛깔에 조금이나마 물들어 감이 어색하지 않다.



 

교복 입은 아이들을 보고 ‘저 때가 제일 좋을 때’라고 말하는 내 입이 가끔 민망하다.


그때 내가 어른들에게 들었던 말들을, 어른의 나이가 된 내가 하게 되는 순간을 마주할 때의 묘함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늘 우리는 누군가의 현재를 부러워하지만, 그들의 현재 또한 우리가 지나온 과거일 것이다.


지금 나의 현재도 다른 누군가 덧없이 흘려보낸 과거일지 모른다. 하지만 왜 그때는 알지 못하고 그렇게 놓치며 보내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좋았던 때라는 걸 마치 탄성처럼 흘리는 입이 부끄럽다.



 

길가에 늘어선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계절이 오면, 이젠 예쁘다는 말을 습관처럼 뱉는다.


지저분하게 바닥에 나뒹구는 노란색이 눈부시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지저분하게 펄럭이던 것들을 치우는 누군가의 노고가 더 신경 쓰여, 쓸데없이 나무를 심었다는 핀잔을 허공에다가 해대곤 했다. 내가 치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누렇게만 보였던 은행잎이 황금으로 빛나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다.


가을이면 온통 아름다운 색들이 잔치를 벌이는 산과 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나이에 접어든 세월에 입가에 걸리는 미소가 씁쓸하다.



 

고속도로를 한창 달리던 시선 안에 들어오는 산등성에 자유분방한 포즈를 취한 나무.

그 위를 비추는 더할 나위 없이 맑은 햇살.

차창 밖으로 시원하게 지나는 바람,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새들.


무료한 고속도로가 지루하지 않다.


음악 소리에 묻혀 운전하던 내가 언제부턴가 유리 밖 변하는 풍경에 취해 달리고 있다.


초록으로 싱그럽다가, 푸름으로 찬란하고, 오색으로 한껏 멋을 부리기도 하면서, 어느새 하얗고 고귀한 순백으로 변하는 풍경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내 눈이 이제야 정확해진 것일까.


 

지나간다는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변화에는 익숙해지지만, 그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또렷해지고, 생각은 달라진다. 그렇게 다가오는 마음은 늘 다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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