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았던 한 달의 진짜 의미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대신 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 달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개인적인 일은 사실상 멈춘 상태였다.
사유를 붙잡고 오래 앉아 있지도 못했고,
글을 쓰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으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일도 잠시 뒤로 밀려나 있었다.
의도한 쉼이라고 말하기에는
마음 한편이 늘 분주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감각이
때때로 조바심처럼 따라붙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시간은 비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나는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던 동시에,
나의 삶이 작동하는 방식을 다시 손보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의 마음은 아주 사소한 곳에서 시작됐다.
아이와 함께 베이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거창한 목표라기보다는 좀 더 건강한 빵과 쿠키를 먹게 해주고 싶은 마음과
아이와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것이었는데,
그러려면 지금 있는 작은 에어프라이어보다는
베이킹에 적당한 오븐이 필요했는데,
막상 그것을 설치할 만한 마땅한 자리를 낼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이 집에는 하고 싶은 일을 바로 해볼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해가 다 가기 전,
집 전체가 아니라 다용도실이라도 먼저 정리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미뤄두었던 물건들을 꺼내고, 버릴 것을 버리고, 자리를 다시 잡았다.
그리고 그날, 다용도실을 정리하고 난 뒤
생각보다 훨씬 큰 개운함이 찾아왔다.
그 개운함이, 이 일을 제대로 벌이게 된 본격적인 시동이었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집 안 곳곳에 산재해 있던 아이의 물건들이었다.
아이의 물건은 늘어나고 있었지만
정작 아이가 쓰기 편한 동선으로 배치되어 있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흩어진 물건을 찾으러 아이가 집 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점점 마음에 걸렸다.
비슷한 카테고리의 물건들을 한데 모아 두고,
정리정돈을 강요하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물건을 관리하고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깔끔하고 안정된 환경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찾느라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는 집,
눈으로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방 기기와 용품들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언젠가 정리해야지 생각만 하며 미뤄왔던 것들,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쓰이지 않던 것들.
‘하는 김에’라는 말이 붙기 시작했고,
그 말은 점점 범위를 넓혀갔다.
깊고 좁은 냉동실도 그중 하나였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한눈에 보이지 않아
꺼낼 때마다 불편했고,
그 불편함은 작은 스트레스로 계속 쌓이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완하고, 정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이 일은 더 이상 부분 정리가 아니라
집 전체의 안정을 다시 잡아보는 작업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은
물건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나를 짓눌러오던
‘미해결 할 일’ 경고 알림을
하나씩 꺼보는 일이었던 것 같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집은 조용하지 않았다.
아이는 방학 중이었고,
식사와 간식, 학교 방과 후 수업 및 학원 이동과 귀가를 돌보는 일이 반복됐다.
하루의 리듬은 아이의 일정에 맞춰 끊임없이 조정되어야 했다.
그 와중에 배우자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고,
집 안에는 늘 누군가의 생활이 진행 중이었다.
정리만을 위해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대신 나는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온 짧은 공백,
식사 준비 전의 잠깐,
하루가 끝나기 직전의 남은 에너지를
조금씩 모아 이 일을 이어갔다.
재배치 작업은 생각보다 많은 두뇌운동을 요구했다.
무엇을 버릴지, 어디에 두어야 유지가 가능한지,
이 동선이 실제 생활에서 유용하게 작동할지.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계획과 수정이 오갔다.
그래서 이 일은
단순히 몸을 쓰는 정리가 아니라,
생활을 해내면서 동시에 설계를 해야 하는 작업에 가까웠다.
중간중간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사유와 구상을 멈춰두고 있다는 감각이
마음 한편에서 계속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이 일을 왜 시작했는지를 떠올리려고 했다.
집이 안정되어야
내 마음도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지금은 우회로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내가 가야 할 방향으로 돌아오게 될 거라는 생각.
그래서 나는
급히 끝내는 것보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해내는 것을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 달은 내가 가장 적게 말하고,
가장 많이 움직였던 시간이었다.
글을 쓰지 않았고,
생각을 정리해 꺼내놓지도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나는 지금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곤 했다.
.
하지만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가던 시점에서
조금 다른 느낌이 찾아왔다.
집 안에서 눈에 띄는 불편함이 줄어들자,
머릿속에서도 계속 울리던
작은 경고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미뤄두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짓눌러오던 부담들이 조용히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더 안정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노력을 했던 것이다.
이 시간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시간이 아니라,
다시 제대로 하기 위해
삶의 바탕을 고르는 과정에 가까웠다.
정리가 거의 끝나갈 즈음
집은 눈에 띄게 달라졌지만
가장 큰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물건의 자리가 정해지자
생활의 리듬도 조금씩 안정되었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맴돌던 마음도
차분히 순서를 찾기 시작했다.
아직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이 안정되면,
나 역시 조금 더 나다운 상태로 돌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난 한 달은
무언가를 미뤄둔 시간이 아니라,
다시 나의 일을 시작하기 위해
중요한 일을 해낸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정리된 공간처럼,
정리된 마음으로
다시 천천히
내가 해야 할 일들로 돌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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