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살기

by 래온

나는 성격이 많이 급하다.

누가 재촉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마음이 먼저 뛰었다.

일이든 관계든 생각이든, 결론을 빨리 내야 마음이 편했다.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머릿속에 답을 정리해두어야 안심이 되는 사람. 그래서 늘 서둘렀고, 어떤 순간엔 조급함이 내 하루의 분위기를 다 결정해버리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빠름이 더 이상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빨리 판단하고 빨리 결론 내리는 방식은 언뜻 효율적이지만, 그만큼 놓치는 것도 많았다. 감정의 여유, 생각의 깊이,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방향. 뭔가를 판단하기 전에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는 법을 잊고 살아왔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느리게 살기’라는 말 한 줄이었다. 너무 단순해서, 너무 진부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단어는 요즘의 나에게 가장 절실했다. 나는 그 문장을 휴대폰 배경화면에 걸어두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열고 닫는 화면에 ‘느리게 살기’라는 문장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그 글자를 보는 순간마다 마치 숨을 한 번 고르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게으르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나에게는 더 큰 용기였다. 급하지 않게 상황을 지켜볼 여유,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듣는 인내, 감정이 흔들릴 때 그대로 휘둘리지 않고 잠시 가만히 서 있는 태도.

이런 것들은 빠르게 움직일 때는 절대 얻을 수 없다.

조급함은 나를 휘두르지만, 느림은 나를 중심에 세웠다.


그리고 깨달았다. 세상 대부분의 일은 사실 그렇게 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내가 빨리 결론 내린다고 일이 더 잘 풀리는 것도 아니고, 서둘러 고민한다고 해서 마음이 더 편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느리게 생각할 때 더 나다운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지금 바로 답을 내릴 필요 없다.’ 이 말이 나를 살렸다.


요즘 나는 마음속에 작은 습관을 하나 만들었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답답한 감정이 치밀어 올라올 때, 휴대폰을 켜서 그 문장을 다시 본다.

‘느리게 살기.’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몇 초의 멈춤이 하루를 바꾸기도 한다. 급하게 내렸을 결론 대신, 조금 더 다정하고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게 느린 사람은 아니다.

조급함은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깊게 배어있다. 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방향이니까.

이전의 나보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부드럽게 살아가려는 마음.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휴대폰을 켠다. 바탕화면의 그 문장이 나에게 조용히 말한다.


‘조급해하지 말자. 천천히 가도 충분히 닿을 수 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흔들리면서도 나아가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