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 예약 기간을 놓쳤다는 걸 알았을 때, 마음속에서 작은 비명이 터졌다. 별것 아닌 일일 수도 있는데 이상하게 이런 일정에서 빠뜨리면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왜 이것도 제때 못 챙겨?” 하는 자책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사실 나는 늘 바쁘고, 아이들도 있고, 회사 일정도 빼곡하다. 머릿속 할 일 목록은 언제나 넘쳐흐르는데, 그 중 하나가 흘러나갔다고 해서 인생이 흔들릴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그런 사소한 것들에서 마음이 더 크게 흔들린다. 마치 내가 내 삶을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니까.
그날도 딱 그랬다. 예약 기간이 지났다는 안내를 보자마자 속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미 끝났는데 어떻게 하겠어, 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너 또 놓쳤다”는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그냥 포기해야 하나 싶었지만, 정작 포기하려니 그게 더 괴로웠다. 애들 챙기느라, 회사 일 맞추느라 정신없는 건 사실인데 그래도 이런 일정조차 놓치는 건 뭔가 억울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혹시 모르잖아. 그냥 연락 한번 해봐.”
나는 순간 멈칫했다. 이미 끝났는데 무슨 연락이냐는 생각이 먼저 올라왔지만, 친구 말이 귓가에 오래 남았다. ‘혹시 모르니까.’ 그 말은 아주 작은 기대이자,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틈과도 같았다. 나는 늘 “안 될 것 같으면 미리 포기해버리는” 버릇이 있다.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게 싫어서, 시도조차 하지 않고 스스로 문을 잠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비슷한 패턴이었다. 이미 끝난 일이라 생각하니 더 들이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이상하게도 친구 한 마디가 나를 움직였다. ‘그래, 안 되면 말고. 그냥 한 번은 해보자.’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자잘한 불안들이 머리를 들었지만, 나는 예약 사이트 고객센터에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라도 예약일자가 지났는데 예약이 가능할지 물어보는, 아주 겸손한 요청이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마 “기간이 종료되어 어렵습니다”라는 정중한 거절일 거라고 마음속에서 이미 시나리오를 그려놓았다. 이왕 기대를 낮춰야 충격도 작을 테니까.
그런데 답변은 예상 외였다.
“가능한 병원이 있다며 예약할수 있고 병원 확인 후 연락주세요.”
그 답변을 듣는 순간 기대가 생기고 예약가능 검진 병원을 바로 알아보고 예약까지 마쳤다. 예약 후 안도하며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이렇게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나? 이토록 쉽게 될 일인데 나는 왜 처음부터 스스로 포기부터 하려고 했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내 삶을 괜히 더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닐까 싶었다. ‘혹시 모르니 일단 해보자’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풀릴 수 있는 일들을, 나는 종종 마음속에서 먼저 막아버리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별로 없지만, 동시에 생각보다 훨씬 많다.
안 된다는 확률도 존재하지만, 될 수도 있는 가능성 역시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니 때때로 필요한 건 대단한 용기나 엄청난 실행력이 아니라, 아주 작은 시도 하나다. 전화 한 통, 메시지 한 줄, 문의 한번. 그 작은 행동 하나가 문을 열어주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문이 닫힐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해볼 걸’이라는 후회는 남지 않는다.
이번 경험은 내게 그런 깨달음을 줬다.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시도도, 덮어두지 말고 일단 한 번 건드려보자.
안 되면 깔끔하게 포기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되면, 이렇게 예상치 못한 기회가 다시 열린다.
그래서 나는 지금 조금 가벼워졌다.
살다 보면 놓치는 일도 생기고, 실수도 있고, 빈틈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확정되는 건 아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는 한 번 더 손을 뻗어보는 게 필요할 뿐이다.
오늘 나는 작은 시도 하나로 다시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 작은 경험이 내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단단하게 바꿔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