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간은 원래 내 것이라는 말

by 래온

회사에는 점심시간만큼은 철저히 혼자 보내는 팀원이 있다. 밥을 먹고, 천천히 산책을 하고, 남은 시간엔 휴대폰을 보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땐 솔직히 조금 신기했다. 나는 점심시간만큼은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만 회사에서의 점심시간은, 적어도 나에게는, 관계 속에 머무는 시간에 더 가깝다.

그래서 물었다. “너의 점심시간은 온전히 너의 시간이야?”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모든 시간은 원래 제 겁니다.”

맞는 말이었다. 틀릴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어느 하나도 원래 남의 시간인 적은 없으니까. 그런데 그 대답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시간을 소유한다’는 감각보다 ‘시간을 제어한다’는 감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분명 점심시간을 갖고 있지만, 그 시간을 내가 얼마나 선택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같이 먹자는 말에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어색해질까 봐, 혼자 밥을 먹으면 이상해 보일까 봐, 혹은 그게 사회생활이라고 배워서. 그렇게 점심시간은 어느새 내가 고른 시간이 아니라 굴러가는 시간, 흘러가는 관성에 가까워진다. 혼자 밥을 먹는 일이 힘든 이유도 어쩌면 외로움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이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불안 때문일 수도 있다.

그 팀원은 혼자 있는 점심시간을 특별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쓰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시간은 원래 자기 것이라는 말을, 그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게. 누군가의 기대나 시선보다 자신의 리듬을 기준으로 시간을 배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시간보다 관계에 더 쉽게 끌려간다. 특히 회사라는 공간에서는 더 그렇다. 일하는 시간뿐 아니라 쉬는 시간마저도 분위기와 암묵적인 규칙에 맞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분명 바쁘게 살았는데 이상하게도 ‘내 시간이 없었다’는 느낌이 남는다. 사실 시간은 있었는데, 주체적으로 내 시간을 잡고 있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가끔 점심시간을 다시 생각해본다. 꼭 혼자 먹어야겠다는 결심은 아니다. 다만 함께 먹는 선택도, 혼자 보내는 선택도 모두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모든 시간은 원래 내 것이라는 말은, 시간을 혼자 쓰라는 선언이 아니라 시간을 스스로 선택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아직 완전히 내 시간을 제어하지 못한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적어도 내 시간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그리고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계속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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