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이들이 아프다고 해서 급하게 오전 반차를 냈다. 혹시 독감은 아닐까, 밤새 마음속에서 불안이 쉬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병원 대기실에서 아이들과 기다리며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단순 감기였고 독감은 아니었다.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괜찮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루의 무게가 달라졌다.
병원을 나와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자마자, 아주 오랜만에 아무도 부르지 않는 시간이 생겼다. 정확히 세 시간 남짓.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러나 요즘의 나에게는 귀한 자유였다. 넷플릭스를 켜고 마음에 담아두기만 했던 영화 〈먼 훗날 우리〉를 틀었다. 누군가의 사랑과 시간과 선택이 천천히 흘러가는 그 영화를 보며, 나는 쉬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빨래를 개고, 분리수거를 하고, 쌓여 있던 집안일을 정리했다. 온전히 쉬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일하는 것도 아닌 그 애매한 시간 속에서 이상하게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몸은 바빴지만 생각은 조용해졌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 여운이 남았다. 오래 꺼내지 않았던 감정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감동이라는 감정은 늘 그렇듯 조용히 와서 오래 머물렀다. 오후 근무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고,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탈 버스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들어왔다. 사소한 우연 하나에도 괜히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졌다.
늘 출퇴근길에는 독서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읽어야 한다, 채워야 한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들. 그런데 오늘은 그걸 전부 내려놓았다. 음악을 틀고 창밖을 바라봤다. 흐르는 거리, 사람들, 익숙한 풍경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 시간이 이렇게 좋았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했다. 그 버스에서의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회사에 도착해 친구에게 말했다. “행복은 너무 빨리 끝나는 것 같아.” 그러자 한 친구는 행복에는 내성이 생기지만 불행에는 내성이 생기기 어렵다고 했다. 행복은 도파민의 작용이고, 도파민은 계속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한다고. 또 다른 친구는 행복은 불분명하지만 고통은 명확하다며, 누군가의 말을 빌려 “행복을 좇기보다 고통을 피하는 방식으로 살라”고 했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나는 그 말들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었다.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소한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빨리 끝난다는 걸 알면서도, 내성이 생긴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런 순간들을 자주 느끼고 싶다. 아이들이 독감이 아니라는 안도감, 영화 한 편이 남긴 여운, 집안일을 마치고 난 뒤의 개운함, 버스 창밖을 보며 음악을 듣던 짧은 평온 같은 것들.
행복은 아마 오래 붙잡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잠깐씩 스며들어 하루를 덜 버겁게 만들어주는 힘은 있다. 오늘의 나는 그 힘 덕분에 조금 덜 지쳤고,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소소한 행복을 자주자주 느끼는 쪽을 선택하고 싶다. 또 다시 느낄수 있다면 빨리 끝나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