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나는 웬만하면 좋게좋게 하려는 편이다.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외면하지 않고, 조금 번거로워도 한 번 더 손을 뻗는다. 누군가는 그걸 착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편하다고 말한다. 나 스스로는 그냥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계산하지 않고, 미리 의심하지 않고, 가능하면 부딪히지 않는 방식. 그게 내 성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데서 시작됐다. 한 번 도와주면 두 번이 되고, 두 번은 곧 ‘원래 네가 해주는 거’가 된다. 더 불편했던 건, 그걸 지켜보던 주변에서 “너한테 부탁하면 되겠다”, “어차피 잘해주잖아” 같은 말이 가볍게 흘러나올 때였다. 그 순간, 내가 베푼 호의가 나를 설명하는 꼬리표처럼 붙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고맙다는 말보다 먼저 ‘이용 가능함’으로 분류된 기분. 호의를 베풀었을 뿐인데, 호구가 된 것 같은 묘한 불쾌감이 남았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냉정해질 수 있을까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성격을 고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어쩌면 고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 곤란해 보이면 신경이 쓰이고, 여력이 있으면 돕고 싶다. 그 마음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선을 긋는 연습’을 한다. 모든 호의가 의무가 되지 않도록, 모든 부탁에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호의가 아무에게나 주는 것보다 작아지지 않게 살고 싶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더 정성스럽게, 멀거나 무례한 사람에게는 필요한 만큼만. 이건 변심이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호의는 내 성격이지만, 선을 어디에 긋는지는 내 선택이다.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더 이상 쉽게 이용당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 차이를 배우는 중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