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학교, 입시가 모두 파탄난 우울증 자퇴생이 행복을 되찾은 방법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17살의 나이였다.
엄마에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게 그 당시 내 최선의 몸부림이었다.
매일 학교에 다녀오면 울었다. 그 많은 무리들 사이에서 매일 혼자 다니며 비참함을 느꼈다.
아침에 차를 보면 차의 바퀴에 깔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밤에 창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무형의 거대한 파도 같은 공포심이 나를 영영 삼키고 놓아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점심시간에는 화장실에서 혼자 빵을 먹었다.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어도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하루 종일 말을 한마디도 안 하는 날이 늘어 갔다.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소리가 마치 전투기의 폭격 소리처럼 고통스러웠다.
나는 홀로 동떨어진 외부인 같았다.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이었다. 거인족 행성에 떨어진 소인족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그 반의 회장이었다. 학업 성적도 나쁜 편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는 전교 1,2등을 여러 번 하기도 했다.
매일 화장실 거울에 틴트를 묻히는 화장이 진한 한 무리가 나를 싫어하기는 했다. 그 애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를 싫어하지 않았고, 오히려 학기 초에는 살갑게 지냈다.
나는 그 모든 애들에게, 심지어 나를 싫어하던 그 소위 말하는 일진 무리에게도, 지나치게 친절한 반장 흉내를 냈다.
그러다가 모든 것에 다 지쳐버렸다. 내 삶까지 놓고 싶어졌다.
나는 스스로 고립된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세상이 나를 왕따 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왕따 시킨다, 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근데 그냥 나는 우울했다. 우울해서 견딜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중학생이 되면 죽으려고 했다. 중학생이 되면 입시로 더 힘들어질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무조건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은 무심해서 나는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내가 왜 태어났을까? 왜 아직까지 살아 있을까? 매일 이런 의문을 품고 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모두가 자살에 대한 생각을 습관처럼 하고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
아무튼 결국 고집을 부려 학교에서 벗어나자마자 엄마는 나를 원망하는 티를 많이 내셨다.
나 같아도 그랬을 거다. 나 같아도 그렇게 모범생에 사고 한 번 친 적 없는 딸이 하루아침에 자퇴를 한다고 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근데 그 말은 좀 아팠다.
엄마는 유일한 엄마 인생의 희망이 사라졌다고 했다.
나는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에는 아주 약했다.
나는 그때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고, 나도 이 세상의 누구도 알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용히 사라지는 것. 아무도 모르게. 부모님께 상처를 주지 않고. 그게 내 유일한 희망이었다.
어찌 됐든 부모님의 무너진 희망이 되어버린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혼자 꿈드림 센터에 전화를 하고 직접 찾아가
상담을 받고, 점심을 지원받고, 수능 준비를 하는 겸 검정고시 시험 준비도 병행했다.
6과목 중 4과목은 만점, 아쉽게도 국어 3문제, 과학 1문제를 틀려 검정고시는 평균 97점으로 합격했다. 그 이후엔 바로 수능을 준비했다.
아직도 서울에 올라가 학원을 찾아볼 때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고등학교도 못 다니고 자퇴한 애가 뭘 할 수 있겠어.”
엄마가 그 말을 하자 불현듯 울음이 복받쳐 나와 음식점에서 부끄럽게도 엉엉 울었다.
내심 엄마의 눈초리를 겪으며, 학교에서의 상처를 다 극복하기도 전에 혼자 세상에 내던져진 그 공포심이 쌓이고 쌓였던 모양이었다.
엄마는 화를 내는 아빠와 다투다가 음식점을 나가버렸다. 나는 그때 밖으로 나가 엄마에게 계속 전화를 걸며 길거리에서 서럽게도 울었다.
- 미안해.
-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 화나게 해서 미안해.
이런 문자를 계속 보냈다. 사과를 받아야 할 판에 왜 거기서 사과를 그렇게 했는지,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아주 어릴 적 데자뷔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옛날에, 엄마가 아빠와 싸우고 잠깐 집을 나갔던 적이 있었다. 나는 어렸고, 밤이 늦은 시각이었다.
길을 막 헤매면서 아빠랑 같이 엄마를 찾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땐 정말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무서웠다.
엄마는 종종 아빠와 이혼을 생각하는 티를 냈다. 아빠와 싸우면 나에게 힘든 것들을 털어놓았다.
게다가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어릴 땐 왜인지 교통사고에 집착을 했다.
엄마나 아빠가 전화를 안 받고 늦게 오면 틀림없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것이라는 이상한 사고로 이어졌다.
그래서 혼자 집에서, 엉엉 울곤 했다.
이런 기억들이 쌓여 나는 엄마에 대한 뒤틀린 집착과 애정결핍, 두려움이 있었다.
잠시 후 도착한 엄마의 답장은 이런 내용이었다.
-화나서 나온 게 아니라, 미안해서 나온 거야. 알아서 들어갈 테니 아빠랑 먼저 집가 있어.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내가 학교에서 힘들어할 때 엄마도 같이 힘들어해 주었으니까.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 때의 엄마는 조금 원망스럽다.
이 정도는 봐줄 수 있지 않을까.
왜냐면 엄마도 그때 나를 원망했으니까.
수면제까지 사서 죽으려고 한 딸을 보고도, 그 수면제를 보고 비웃었던 엄마.
엄마에게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그때는 집에 있기가 두려웠다. 엄마를 마주칠까 봐.
사실 내 자퇴 전후에 우리 집에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많았다. 아빠의 회사가 위태로워졌고, 고부 갈등이 극심해 부모님이 자주 싸웠으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빠가 자살 시도를 몇 번이고 실제로 했으며, 성 정체성이 변했다고 통보를 하고 수술 비용을 요구했다. 이 다시 생각하기도 끔찍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집안은 완전히 파탄이 났었다.
그러니 엄마도 그때는 우울증이 극심했다. 종일 울거나 방에서 안 나오고 술만 마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에 나는 조울증으로 인해 어린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몇 번이고 힘으로 위협하던 오빠의 횡포에 질려, 피가 쏟아져 나올 때까지 면도칼로 손등을 긁었다. 그걸 오빠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나를 또 마주치면 손등이 아니라 손목에 그을 거라고.
오빠와는 지금도 연을 끊고 지내고 있다.
그 와중에도 독학재수학원에 들어가 하루에 12시간씩 매일 공부했다.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나는 정말 얼굴을 박고 공부만 했다.
6월, 9월 모의고사도 꽤 잘 나왔었다. 1,2등급이 많았고 논술 학원에서의 논술 성적도 괜찮았다.
나는 내가 부모님이 원하던 최상위권 학교를 가는 것만이 우리 집이 재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필사적이었다.
애써 밝은 척을 하기도 했다. 솔직히 학원에서 성적이 잘 안 나올 때도 있었고 매일 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에게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근데 진짜 내 인생의 최대 고비는 여기였다.
첫 번째 수능이 망해버렸다.
한 문제 차이로 무척 만족스럽게 봤던 논술의 최저도 맞추지 못했다.
이 때는 수능 실패로 인한 괴로움에 힘들어하다가, 그걸 잊어 보고자 그동안 좋아했던 웹툰 학원을 다니며 웹툰 원고 2화를 완성하고 웹소설도 10화 정도 완성해 냅다 투고를 했다. 당연히 다 실패였다. 그때는 불안정한 상황에 실패가 잇따르자 진짜 내 인생이 망한 것 같아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건 내가 한 선택 중에 손에 꼽게 잘한 선택이었다. 그 덕에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알게 되었으니.
그 후 또 몇 달간 괴로워하며 혼자 공부하다가, 다음 해 본 수능은 더 심하게 망해 결국 성적에 맞춰서 학교를 낮춰 들어갔다.
노력이 보상받지 못했다. 비참하고 침울했다..라는 말로 표현이 다 안 될 만큼 괴로웠다.
내 인생이 끝난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수능이 끝난 뒤 이주도 되지 않아 바로 공무원 시험공부에 돌입했다. 그때는 뭔가 집중할 거라도 없으면 진짜 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뭐라도 미친 듯이 해야 했다. 그래서 아침 9시에 스터디카페에 가서 10시까지 공무원 시험공부를 미친 듯이 했다. 대학은 가망이 없다. 스펙도 이제 가망 없다. 공무원만이 살길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막상 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나의 세상이 변했다.
사실 나는 글 쓰고,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해 그쪽 계열에서 유명한 학교를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명문대, 인서울 대학교가 아니었기에 절망감과 열등감이 그득그득했던 나였다.
그럼에도 이곳에 오니 온통 내가 좋아하는 것들 천지였다. 수업 시간에 지루한 고전 시가를 외우는 게 아니라 이야기의 구조를 배우고 과제로는 글을 쓰고 만화를 그려 제출했다.
너무 재미있었다. 2년 넘게 히키코모리처럼 사람과 대화도 잘 안 하고 공부만 했던 나였기에 사람이 가득한 도서관이나 강의실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엇보다 소속이랄 게 2년 동안 없었고 모든 입시 정보를 혼자 찾아가며 책임을 져야 했던 나에게 학교, 학과라는 소속은 안정감을 주었다.
내 인생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이왕 시작한 거, 6개월밖에 안 남았지만 끝까지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를 가는 날 외의 모든 날은 매일 10시간씩 스터디카페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결국 합격하지는 못했지만, 평균 92점이라는 합격에 가까운 훌륭한 점수를 받아 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냥 전부 실패였다. 학교도, 입시도, 만화나 글 투고도, 공무원시험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며 나는 새로운 풍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풍경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 온 뒤 1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뼈 빠지게 공부와 과제를 하고 있다. 강박이 아직까지 남아서 그런 걸까.
하지만 이제는 스터디카페나 학원이 아니라 시립도서관에 와서 창문을 바라보며 책도 읽고 공부도 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실 여유도 생겼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고 있다. 그중 하나인 글을 쌓아두기만 하다가, 이렇게 세상 밖에 조금씩 풀어 보기 시작했다.
학원과 학교에서 배운 웹툰 기술은 인스타툰을 운영하며 사용하고 있다. 아직 하꼬에다 몇 개 올리지도 않았지만… 여유가 생기면 꼭 꾸준히 올릴 생각이다.
학교에서 농구 수업을 했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내가 골도 생각보다 잘 넣는 것을 보며 내가 나 스스로를 너무 무시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고 싶었지만 몸매가 부끄러워 용기 내지 못했던 수영도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 다닌다.
학교에서 비대면 상담도 받는다. 상담 중 자꾸만 의도치 않게 엉엉 눈물이 나와서 민망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대인기피증이 심해서 가게에 들어가 주문도 못 했는데, 이제는 조금 긴장은 하지만 잘한다.
근데 여전히 친구는 없다. 하지만 크게 불편하지도 않다. 대학에서는 다들 혼자 다니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혼자 지내는 게 편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 학교에서는 혼자 다니는 걸 모두가 이상하게 바라봐 나 스스로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 정말 괜찮다.
술을 마시거나 놀러 다니거나, sns를 하는 시간에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내 내면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가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한다.
나는 매일 조금씩 건강해지고 있다.
매일 조금씩 행복해지고 있다.
가정이 무너지고, 학교가 무너지고, 입시가 실패했을 때,
정말 내 인생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내가 내 삶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내 삶의 그 무엇도 나를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