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위에서 배운 유비무환

중동 크루즈 여행

by 양정회

나를 바꾸어 놓은 경험 하나를 들자면 2년 전 다녀온 크루즈 여행이다.

두바이에서 승선해 아부다비, 카타르 도하, 오만 무스카트를 거쳐 두바이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도하에서 무스카트까지 이동하는 날은 하루 종일 배에서 보내는 ‘Sea Day’였다. 나는 그 하루를 누구보다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매일 아침 여섯 시면 18층 옥외 데크에서 열 바퀴쯤 돌고 나면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배가 계속 이동하고 있어 매번 다른 배경으로 일출을 맞이했다.


배 안에서는 하루 종일 즐길 프로그램이 넘쳐났다. 수영장, 피트니 센터, 스파, 각종 댄스 클래스, 공연과 쇼까지. 나는 라틴 댄스 클래스에서 차차차를 배웠다. 한 시간 수업이 아쉬워 오후에는 17층 야외에서 진행되는 수업에도 참여했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강사의 유쾌한 제스처와 세계 각국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는 분위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날 오후 다섯 시, 우리는 드레스코드에 맞춰 준비해 간 드레스를 입고 18층 스카이워크에 모였다. 나는 어깨가 드러난 하얀 드레스를 입었다. 바람이 세게 불고 조금 추웠지만, 사진을 찍고 웃고 떠드느라 한참 동안 추위도 잊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문제는 그날 밤부터였다. 열이 오르고 기침이 계속 나왔다. 기침하느라 잠이 들다 깨기를 반복했다. 비상약으로 챙겨간 해열제와 기침약을 먹으며 버텼다. 내가 가져간 약 다 먹고 룸메이트 것까지 먹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 배는 기항지 무스카트에 도착해 있었다. 몸이 계속 안 좋았지만 약을 먹고 동료들과 함께했다. 저녁이 되자 다시 열이 나고 기침이 심해졌다. 약을 먹으면 잠시 괜찮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열이 올랐다. 기침은 깊은 바닷속에서 끌어올리는 숨처럼 힘겨웠다. 밤에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비비님과 경은씨가 우리 방으로 와 약을 챙겨주며 혹시 코로나가 아니냐고 걱정했다.


두바이에 도착한 날은 사막 사파리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숙소에 남기로 했다. 투어를 마치면 저녁 열 시가 되어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다. 모두 떠나고 방에 혼자 누워 있으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여행 일정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병원을 가야 할까, 중도 귀국을 해야 할까. 그렇다면 이 몸으로 아홉 시간이 넘는 긴 비행을 어떻게 견디나.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냥 약을 먹으며 견뎌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었다. 곤히 잠든 룸메이트를 바라보며 나도 그녀처럼 그저 한숨 깊이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돌아올 때 혹시라도 공항에서 고열이 문제 될까 봐 해열제를 계속 챙겨 먹으며 귀국했다.


한국에 돌아와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 결과를 보던 의사가 말했다.


“폐렴을 앓으셨네요. 중동 어디 다녀오셨어요?”


나는 어디서든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곯아떨어지는 사람이다. 그 일을 겪은 뒤로 여행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제는 출발 전 평소 다니던 이비인후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꼭 챙겨간다. 지난해 몰타 여행 때도 약을 준비했지만 나는 한 봉지도 먹지 않았다. 대신 함께 간 다른 친구들이 그 약을 먹었다. 이제는 준비 자체가 나를 인심 시킨다.


여행도 나이 듦에 따라 섬세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사랑하는 여행을 오랫동안 지속하기 위해서. 유비무환. 여행은 설렘만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다. 준비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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