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게 된 나의 이야기
9살 때부터 내 방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기분이 울적하거나 심난할 땐 항상 내 방에 있던 책상 서랍을 뒤집어엎었다.
그리고는 서랍 안의 먼지를 깨끗이 훔쳐 닦아 말리는 동안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을 하나씩 쳐다보았다.
그동안 나도 알지 못했던 쓰레기도 나왔고 마음이 식은 물건들도 나왔는데 비우거나, 빨리 사용해서 없애버렸다. 그리고 계속 서랍 속에 보관할 것들은 애지중지 닦아서 차곡차곡 담았다. 언제든지 책상 서랍을 열었을 땐 항상 가지런했고 깨끗해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너무나 개운했다.
이 습관적인 행동은 마치 울적한 내 마음을 정성스레 닦고 보살피는 기분이 들었다.
나만의 스트레스 관리법이었던 것 같다
이 물건 정리 행동은 계속되었다. 직장을 다니는 어른이 되어서도 휴일이 다가오면 ‘이곳을 엎고 정리해야지 ‘ 하는 생각이 들어 계획했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내 맘에 안 들면 비우고, 채우고 하는 어쨌든 내 짐만 잘 꾸리고 잘 살면 그만인 세상이었다
그래,
남자친구와 살기 전까지는..
남자친구와 살기 시작하면서 내 짐이 아닌 다른 1인의 짐까지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남자친구가 어련히 알아서 내가 만들어 놓은 규칙대로 정리를 잘하면 좋겠지만, 남자친구는 나를 만나기 전 다른 세상 속의 습관이 몸에 베여 있었다
나만큼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나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철저한 규칙과 습관들을 아무리 일러주고 변화시켜도 내 마음에 안 드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럼에도 늘어난 집안일과 물건을 관리하고자 생활패턴에 따라 여기저기 배치해보기도 하고, 정리를 도와줄 수납용품들을 구매해서 정리했다. 물건들이 늘어나니 계속 배치에 대한 욕심이 났다.
이건 이쪽에 있는 게 나으려나?
여기 있는 게 최선일까?
계속 물건 위치를 바꾸어대며 닦고 정리했다.
그리고.. 점점 짜증이 솟구쳤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자 않자 참다 참다가 남자친구한테 자꾸 짜증을 냈고 눈물이 나왔다.
아니 내가 고작 이런 집안일 때문에 물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화를 내는 거야?
이 짜증의 원인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나에게 실망스럽기도 했다.
내가 물건들 위에서 관리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러지 않았다. 물건들이 내 위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 어깨가 짓눌리는, 물건에 깔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순간 나는 물건이 힘들어졌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물건들을 극단적으로 없애기 시작했다. 옷부터시작해서 가구, 전자제품, 취미용품, 책, 잡동사니까지 며칠 동안 계속 고민하며 비워나갔다.
정말 비움의 일상이었다. 일어나서부터 자기 전까지 비울 것을 생각했다. 한때 비울 생각이 없던 물건들도 비워졌다. 아깝거나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고,
집은 점점 더 가벼워졌다.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해서 체력소모가 상당했는데,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물건을 정리하는 육체적 고통이 아닌 정신적 고통이었다.
속이 후련하면서도 동시에 물건을 구매하고 정리하는 시간들이 후회스러웠고 한때 사랑했던 물건들도 이렇게 쉽게 떠나보내려니 마음 한편이 시려서 마음을 더 단단히 먹어야 했다.
물건만 비우는 것이 아니었다. 물건에 대한 집착까지 비워야 했다.
이때 많은 미니멀리스트의 글들을 찾아보며 읽고 생각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오늘 당장 죽으면 남은 가족들이 내 짐을 치워야 한다는 말이 나를 도와주었다. 그렇다. 내 비움의 기준은 내가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이 물건이 없어서 아쉬울지부터 생각했다. 그렇게 짐이 덜어지자 오직 나에게 집중하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내 기분은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내 주변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정리의 주체가 내가 되어 있었다. 그러자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시끄러웠던 마음의 소리들이 한껏 조용해졌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 날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살아있음을 더욱 느끼게 했다. 물건을 비우는 일이 이토록 대단한 일이었다니 너무 놀라웠다.
목표도 생겼다. 지금 당장이라도 여행가방 하나에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짐만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전에 비웠던 만큼 더 이상 크게 비워나갈 물건들이 없다. 이젠 남은 물건들이 하나하나 소중하다. 이 소중한 물건들은 오히려 듬직하게 남아서 나를 감싸주고 위로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