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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멀리스트 Sally Mar 16. 2023

어느 순간 나는 물건이 힘들어졌다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게 된 나의 이야기


9살 때부터 내 방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기분이 울적하거나 심난할 땐 항상 내 방에 있던 책상 서랍을 뒤집어엎었다.


​그리고는 서랍 안의 먼지를 깨끗이 훔쳐 닦아 말리는 동안 그 안에 있던 물건들을 하나씩 쳐다보았다.​

그동안 나도 알지 못했던 쓰레기도 나왔고 마음이 식은 물건들도 나왔는데 비우거나, 빨리 사용해서 없애버렸다.​ 그리고 계속 서랍 속에 보관할 것들은 애지중지 닦아서 차곡차곡 담았다. ​언제든지 책상 서랍을 열었을 땐 항상 가지런했고 깨끗해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너무나 개운했다.


​이 습관적인 행동은 마치 울적한 내 마음을 정성스레 닦고 보살피는 기분이 들었다.

​나만의 스트레스 관리법이었던 것 같다


​​이 물건 정리 행동은 계속되었다. 직장을 다니는 어른이 되어서도 휴일이 다가오면 ‘이곳을 엎고 정리해야지 ‘ 하는 생각이 들어 계획했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내 맘에 안 들면 비우고, 채우고 하는 어쨌든 내 짐만 잘 꾸리고 잘 살면 그만인 세상이었다



​​그래,

남자친구와 살기 전까지는..



​​​​남자친구와 살기 시작하면서 내 짐이 아닌 다른 1인의 짐까지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남자친구가 어련히 알아서 내가 만들어 놓은 규칙대로 정리를 잘하면 좋겠지만, 남자친구는 나를 만나기 전 다른 세상 속의 습관이 몸에 베여 있었다


​나만큼 불편을 느끼지 못하고, 나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철저한 규칙과 습관들을 아무리 일러주고 변화시켜도 내 마음에 안 드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럼에도 늘어난 집안일과 물건을 관리하고자 생활패턴에 따라 여기저기 배치해보기도 하고, 정리를 도와줄 수납용품들을 구매해서 정리했다. ​물건들이 늘어나니 계속 배치에 대한 욕심이 났다.



​이건 이쪽에 있는 게 나으려나?

여기 있는 게 최선일까?



​계속 물건 위치를 바꾸어대며 닦고 정리했다.

​​​​그리고.. 점점 짜증이 솟구쳤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자 않자 참다 참다가 남자친구한테 자꾸 짜증을 냈고 눈물이 나왔다.

아니 내가 고작 이런 집안일 때문에 물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화를 내는 거야?


​이 짜증의 원인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나에게 실망스럽기도 했다.


​내가 물건들 위에서 관리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러지 않았다. 물건들이 내 위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 어깨가 짓눌리는, 물건에 깔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순간 나는 물건이 힘들어졌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물건들을 극단적으로 없애기 시작했다. ​옷부터시작해서 가구, 전자제품, 취미용품, 책, 잡동사니까지 며칠 동안 계속 고민하며 비워나갔다. ​


정말 비움의 일상이었다. 일어나서부터 자기 전까지 비울 것을 생각했다. 한때 비울 생각이 없던 물건들도 비워졌다. 아깝거나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고,

집은 점점 더 가벼워졌다.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해서 체력소모가 상당했는데,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물건을 정리하는 육체적 고통이 아닌 정신적 고통이었다.

속이 후련하면서도 동시에 물건을 구매하고 정리하는 시간들이 후회스러웠고 한때 사랑했던 물건들도 이렇게 쉽게 떠나보내려니 마음 한편이 시려서 마음을 더 단단히 먹어야 했다.


​물건만 비우는 것이 아니었다. 물건에 대한 집착까지 비워야 했다. ​


이때 많은 미니멀리스트의 글들을 찾아보며 읽고 생각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오늘 당장 죽으면 남은 가족들이 내 짐을 치워야 한다는 말이 나를 도와주었다. 그렇다. 내 비움의 기준은 내가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이 물건이 없어서 아쉬울지부터 생각했다. ​그렇게 짐이 덜어지자 오직 나에게 집중하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내 기분은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내 주변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정리의 주체가 내가 되어 있었다. ​그러자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시끄러웠던 마음의 소리들이 한껏 조용해졌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 날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살아있음을 더욱 느끼게 했다. 물건을 비우는 일이 이토록 대단한 일이었다니 너무 놀라웠다.


​목표도 생겼다. 지금 당장이라도 여행가방 하나에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짐만 있는 것이었다. ​이제는 전에 비웠던 만큼 더 이상 크게 비워나갈 물건들이 없다. 이젠 남은 물건들이 하나하나 소중하다. 이 소중한 물건들은 오히려 듬직하게 남아서 나를 감싸주고 위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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